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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Sep 10. 2021

무감각하게 떠올린 추억의 단편

2021. 연습#4.(210910)

파닥거렸다.


비늘이 뽑혀 주변이 번쩍거릴 만큼 거칠게 몸을 뒤틀었다.     


  ‘탁’ 소리에 추두둑 몸을 털어내던 숭어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죽었겠지?’ 무의식적이고 별다른 감정 없는 물음이 떠올랐다. 다시 곱씹으니 무감각하게 떠올린 물음이 가진 섬뜩한 의미에 놀랬다. ‘쓱’하고 포 떠진 숭어는 이제 더 이상 파닥이던, 푸득, 추두둑 소리 내며 비늘을 털어내던 생명이 아니다. 무감각한 살점이자 식재료일 뿐, 삶의 의미가 순간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방수가 되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파란 앞치마, 또 새파란 장화를 신은 주인장이 뻘건 고무장갑에 꽤나 둔탁해 보이는 칼을 손에 쥔 채로 말했다.

      

  “두툼하게 썰어드릴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듯싶어,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을까’ 싶다. 나의 대답 이후, 물고기 모양의 볼록한 스티로폼 위에 무채를 깔고, 두툼한 회가 올려졌다. 그 위를 커다란 랩으로 빳빳하게 덮어놓으며 주인장은 스스로 ‘작업’이라 불렀던 일련의 행위를 끝냈다. 뜰채에 갇혀 파닥이던, 저울의 바늘이 요동쳤던 혼란 속에서 분명히 얼마라고 말했었던 거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오만 원 남짓이었던가. 주인장은 맛있게 드시라는 말과 동시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또 한 번 무의식적인 물음이 떠올랐지만, 무시했다.     


  집에 오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생각했다. 거침없던 주인장의 작업과 파닥이던 생명이 무동(無動)의 살점으로 변화했던 과정과 일련의 과정에 무감각한 질문을 던지던 스스로의 감상에 대한 고민이었다. 난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일까.     


  그녀가 ‘잘 살아’라고 했다. 아니. ‘잘 지내’ 였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나 없이도 ‘잘 지내나 보자 이 녀석아’. 같은 뉘앙스로, 다시 말해 저주에 가까운 축복이었다. 속내를 알아차리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그때도. 지금처럼 무덤덤했다. 나의 의뢰, 주인장의 의지처럼 회는 정말 두터웠다. 웬만한 횟집의 두 세 점, 아니 거의 다섯 점에 가까워 보이는 한 점의 회를 우물거리며 기뻐했다. 촉감이, 식감이, 심지어 맛까지 좋다고 느꼈다. 거친 손으로 정갈히 잘려 무채 위에 차곡히 쌓인 살점을 우물거리며, 다시 또 생각한다.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뺨을 맞았던가. 잘 지내라는 말을 듣고 생각에 빠지는 중이었다. 서서히 감상에 젖어야 하는가. 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 말이다. 그러다 번쩍했다. 뭔가를 깨달았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시선이 찰나의 순간, 하얗게 빛났다. 뺨을 맞았을까. 아니 확실하다. 맞았다. 맞을 이유가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내 뺨의 아픔은 당연했고, 분노 따위 일지 않았다. 그토록 무감각했던 내가 지금 좋은 식감과 맛으로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다.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이런 내가 그녀의 뜻처럼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익숙함에 무뎌졌을까. 감정 없음에, 관계나 자극에서 뭔가를 느낄 수 없음에 당황했다.      


  다시 한 점. 우드득 거칠게 살점이 갈리듯 잘려 바스러진다. 맛있다. 그녀도 회를 좋아했었지 아마. 추억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몇몇 장면만. 순간만 기억에 남았다. 무뎌진 감정처럼, 기억이나 추억도 둔탁해진 걸까. 다시 또 한 점. 꾸두득. 꾸득. 또 한 번 또 맛있다고 느꼈다.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결국 둔해진다. 무뎌짐의 과정은 습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같다. 어쩌면 능숙함이 무감각의 원인일지도, 설렘이나 감정의 기억은 낯섦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지금도. 회는 맛있고, 문득 떠오른 생각의 무감각함을 느꼈다.


  붉어진 뺨을 비비면서 버스에 올랐었다. ‘번쩍’과 ‘버스’의 중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별 상관없다. 야경과 덜컹거림과 습하면서도 싸늘한 기운이 스치던 초가을의 그날이 기억난다. 그때도 회를 먹었던가. 그녀와 함께였던 걸까 술을 마셨었나. 싶다. 역시나 기억나지 않고,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느낀다.


  지난 일, 문득 떠오른 생각을 지나치는 상황, 무감각의 인지와 감정에 대한 해석이 뒤엉킨다. 난 또 무엇을 잊고 살고 있을까. 난 그녀의 거짓된 축복처럼 정말, 잘 지내고 있을까.


  아. 뺨을 때린 그녀가, 회를 좋아했던 그녀와, 잘 살아달라고 했던 그녀의 그녀였을까. 기억, 추억의 '푸드득' 생동감이 사라지자 의미가 또 한 번 더, 무감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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