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연습#1.(210128)
희뿌연 연기와 함께 등장한 한 사내가 나에게 물었다.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나의 소원은 지난 일들이 기억나지 않길 바랍니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연기가 허공에 흩뿌려지며 그가 사라졌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엄청난 시련이나 고통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30대 중반을 넘기다 보니 생겼던 소소한 고통이나 짜증 났던 일들이 문득 떠올랐던 순간들이 조금 불편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엔 이런 고통도 한결 나아졌다. 아마 나이가 먹으면서 머리가 나빠지거나, 몇 가지 불쾌했던 사건들은 잊혔거나, 아니면 그냥 지금은 버틸만했던 고통 정도였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씩 배꼽부터 뜨겁게 올라오는 부끄러움이나 분노, 아쉬움 같은 게 여전히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서 괴롭힐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난 꿈속에서 만난 낯선 그에게 기억을 떠올릴 수 없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햇볕이 내 이불 위에 연결된 후였다. 아내와 이번 달부터 세 살이 된 아들은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고, 나는 바닥에 이불을 대강 덮어놓고 네 발로 방을 기어나갔다. 텁텁한 입을 헹구고 싶어 생수 뚜껑을 비튼다. 손가락에 힘이 없다. 이것도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며 생긴 새로운 신체의 변화 중 하나다. 손가락 힘뿐만 아니라 시력도 나빠졌고, 반사 신경도 둔해졌다. 무엇보다 생각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마 지난 일들의 기억이 흐릿하다고 느끼는 점도 아마 이 때문일지 모른다. 다행히도 손에 든 핸드폰을 찾거나, 바지를 입지 않고 출근한다거나 하는 부끄러운 추억을 만들 정도는 아니다. 아직까진 괜찮다. 아마도.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자가용을 탄다. 아파트의 주차공간은 항상 부족하다. 최신식의 아파트에서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나에게 아파트는 부족하고 좁은 주차장과 그보다 좁은 집과 더욱더 작은 내 방 정도로 압축되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좁고, 좁고, 좁아지는 과정이 점입가경이고, 습관처럼 모든 게 최대한으로 좁아져야만 안정된 기분이 든다. 반대로 넓어지고, 넓어져가고, 더 큰 세상으로 한 발짝. 내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행위다. 안다. 나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넓어지거나 좁아지거나, 어떤 일도 주저해선 안된다. 그게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선 배 나온 남자의 운명이겠거니 한다. 주로 이런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뜬금없지만 이번 주부터는 출근길에 ‘명상’을 한다. “고요하고 생각을 멈출 수 있는 곳에서 명상을 시작해 보세요”라는 광고에 끌렸다. 명상을 권유하는데 광고라니. 게다가 “정기 결제를 하시면 더 체계적인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갸우뚱하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몇 년 사이에 자극적인 광고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렇다고 ‘명상’에 결제라니. 또 그걸 듣기 위해 결제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 주도 잊고 싶은 추억거리 하나를 더 만들어 버렸다. 며 명상을 시작한다.
운전 중에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익숙한 길이고, 운전은 눈과 귀와 손과 발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이다. 그러니까. 결국엔 눈, 귀, 손, 발의 움직임은 동일하면서도 다르단 말이다. 초행길에선 그들이 직접 나서는 반면에, 익숙해진 출퇴근길은 신경세포가 내 자의식을 대신해 운전을 해준다. 그래서 멍하니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 명상을 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마시고, 내쉬고를 반복하면. 앞 유리에 김이 뿌옇게 서린다.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 1월인데도 날씨는 영상권이다. 그래도 김은 서린다. 날씨가 풀렸어도 여전히 겨울이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시야가 점점 가려진다. 상관없다. 운전은 신경세포가 해주고, 난 그들의 해주는 자동차에 몸만 실려 있으니까. 들이마시고, 내쉬고.
전염병이 돌고 있다. 7번째 환자가 나왔다고 언론은 들썩인다. 광우병이었나. 이런 기억도 가물거린다. 정부에선 실체가 없다고 했던가. 아니 실체가 있어도 몇십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고 했던가. 아무튼 핵심은 뼈 있는 미국산 소고기가 문제였다. FTA도 문제였고, 그 당시 정권도 문제였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도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했다. 행여나 병에 걸리면 어쩔까 하는 불안함보단,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거리로 나섰던 젊은이들의 대부분이 ‘먹거리 안전성’보단 나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았을까.
정치인들은 전염병으로 지지율을 높아지길 바라고, 언론은 자신들이 주목받기를 원한다. 글자만 보면 무척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행복해 보이는 ‘소셜 미디어’에서도 궤변을 끊이지 않는 이들도 어쩌면 관심을 위해 전염병을 이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전 세계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염병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중이다. 확실히 미국산 쇠고기랑은 차원이 다른 위기감인데, 고조된 위협만큼이나 격앙된 표현과 혐오가 넘쳐흘러 난다. 아참. 들이마시고, 내쉬고.
사람들이 말하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관심이 있었다. 건강이나 행복 말고, 결국엔 돈을 많이 버는 비법 같은 거 말이다. 떡볶이를 팔아서 강남의 빌딩을 산 식당 주인의 비법,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회사원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끌렸다.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로 시작한 이른바 ‘사회생활’이 ‘돈이 있어야 사는 맛이 난다’ 거나, ‘돈을 벌기 위해 더 오래 건강히 살아야 한다’ 정도로 변화되었다. 서른 중반이 넘어서며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아까 말했지만, 명상에도 돈이 필요하다. 지금 운전을 하는 중에도, 차를 움직이는 세포, 하나하나에도 모두 돈돈돈. 돈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만.
들이마시고, 내쉬고. 결국엔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가 원망스러울 때도 간혹 있다. 예를 들어 이십 대에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놨더라면 난 지금 걱정이 없을 텐데 같은 생각 말이다. 이런 생각을 잊고 싶다. 과거의 실수와 더불어 내 잘못된 판단, 결정의 순간을 잊고 싶다. 추억과 기억을 잊기 위해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무료로 제공하는 명상은 대략 삼십 초 정도면 끝난다. 난 유료 고객. 지나치게 길다는 느낌이 들 때 즈음 명상이 끝났고, 우연히. 회사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
대부분 우리 회사의 동료들은 과묵한 편이다. 이윽고 나는 다시 말을 건다.
“어제는 늦게 들어가셨어요?”
“아니요”
그래,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냉소함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이가 좋던 애인이 갑자기 변심했을 때, 친하다고 생각한 동료가 갑자기 쌀쌀맞게 대할 때, 난 어김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민망함과 당혹스러움에 당장이라도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수 없이 반복된 민망함에 요즘은 무던해졌다. 정확히는 무뎌지려고 노력 중이다. 상황을 피하기보단 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박아 버린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민망함이 가실 때까지 깊숙이 박힌 몸을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동안 겪을 수밖에 없었던 냉소와 민망함의 순간들이 모두 잊히면 좋겠다. 진심으로.
다시 희뿌연 연기가 의자에 박혀있는 날 푸근히 감싼 듯 피어오른다.
“너의 소원은 이뤄졌느냐?”
“아니요, 아직도 떠오르는 기억이 너무나 많습니다.”
“너의 소원은 이미 이뤄졌으니, 다음 소원을 말해 보거라.”
“이봐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니까요. ‘모든’ 기억이 잊혔으면 좋겠다고요”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내는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시작했다.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고. 운전은 세포의 반응에 불과하다. 손과 발과 눈과 귀는 세포의 반응으로 ‘작동’하기만 하면 된다. 자의식이나 의지는 불필요하다. 난 세포의 반응으로 움직이는 차에 탔고, 움직여지고 있다.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고. 아니. 왜 내가 숨을 쉬는 걸까.
날 둘러싼 수많은 덩어리들이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적어도 위협적이진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난 마음을 놓지만. 낯선 상황과 생전 처음 보는 생명체들의 호의에 당혹스럽다. 숨고 싶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호흡이 중요해요, 호흡이”
또렷하진 않지만 굵은 소리를 가진 형체가 나에게 말했다. 나를 조롱하는 듯하지만, 여전히 위협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더 숨고 싶어 졌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반복하세요, 반복.”
몰아치는 강요와 나를 둘러싼 미지의 생명체들 속에서 강제로 숨을 쉬고 있다. 숨을 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 난 숨만 쉬고 있다. 흐읍. 하아.
“좀 괜찮아요?”
이전과는 다른 가는 목소리, 다른 생명체가 말을 걸어온다. 이윽고 두텁게 느껴지는 물컹한 조직들이 내 몸 사이에 스며들더니, 강력한 힘에 이끌려 일으켜진다. 위협이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파악했지만,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내가 꼿꼿이 서있는 상태가 되니, 웅성거림이 가시고 또렷한 목소리가 날 향하기 시작했다. 알아듣기 힘들다. 딱딱한 물체에 올려졌고, 난 그보다 딱딱한 곳에 다시 엎어졌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