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짧은생각#3.(211130)
사람들에게 내 존재가 잊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확률은 반반이다. 잊히거나, 잊히지 않거나. 만약 잊힘이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은 기억이 사라지길 바랬다. 도려낸 듯이 아주 말끔하게 그들의 기억에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기를. 그들의 기억과 또 다른 기억을 잊는 과정에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면서 생기는 공백으로 인한 이질감 없이, 기억과 또 다른 기억이 매끈하게 이어지길 바랬다. 행여나 기억의 공백을 쫓다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도록 '말끔한 거세'가 이뤄지길 바랬다. 그렇게 된다면 좀 자유로울 수 있겠지.
울컥하고 올라오는 부끄러움의 기억부터,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 나아가 만나지 말아야 했던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 속에 끼어있는 나의 추억, 그들에 의한 나의 기억, 또, 누군가는 가질 수 있는 나를 향한 원망이나 분노까지. 나의 잊힘은 비단 나를 위함과 더불어 ‘나’로 인해 벌어진 고통을 삭제하고, 모두가 평안을 찾기 위한 바람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모두에게 잊힌다면, 그토록 무거웠던 내 존재가 인간관계의 빗을 청산하고 가벼이 날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를 둘러싼, 혹은 나의 언행이 원인이 된 ‘미련’이나 ‘후회’는 나라는 존재를 속박하는 족쇄가 되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과거의 족쇄는 과거의 시간에 귀속되어 있다. 지금 당장, 어떠한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노력으로 풀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내 존재의 자유는 과거에 귀속되고, 그때부터 난 어떻게든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잊히길 바랬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과거에 묶여있는 내 존재는 현재, 또 미래에도. 그 과거를 지나친 순간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잊히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대해 말을 꺼냈다. 내 고민에 대해, 과거의 속박에 묶여 자유로울 수 없는 내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 본인도 잊히길 바란 적이 있다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했었고, 잊힘으로써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바랬다고 했다. 묘한 동질감이 기쁨으로, 흥미로움으로 번져갈 때 즈음, ‘잊힘’이라는 갈망은 오히려 잊히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한 부정은 가장 강한 긍정에 가깝다는 말처럼, 잊고 싶지 않고, 잊히지 않기 위해. 그런 바람이 내 존재의 잊힘이라는 갈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십 년 가까이 된 핸드폰 번호, 이젠 삼십 년이 가까워진 이메일 주소, 심지어 평생의 기간 동안이나 나를 대표하는 이름까지. 잊히길 바란다는 존재의 흔적엔 변함이 없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의 흔적이 스쳤을 때, 미약하게나마 추억의 떨림을 느끼도록. 문득, 아. 하고 그날의 실수도 추억으로 포장되어 떠올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나의 흔적을 남겼던 걸까.
‘미련’, ‘후회’, 간혹 ‘죄책감’과 ‘부끄러움’, ‘미안함’, 간혹 ‘설렘’, ‘떨림’, 그리고 ‘고통’. 과거를 복귀하며 문득, 울컥, 날 잡아 삼키는 감정은 추억일까. 그때의 내가 잊힌다면, 아니 그 당시가 사라진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잊히면 자유로울까.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난 행복할 수 있을까.
잊힘에 대한 강박은 내 존재와 존재를 구성하는 과거, 이로써 묵직해진 무게감의 존재에 대해 성찰했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의 말’을 잊고 싶지 않은 나란 존재는, 누군가의 기억으로 구성된 나란 존재는 오늘도 잊히길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