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둔형 최작가 Mar 15. 2022

낭만적 일상, 선택 그리고 현실

2022. 연습#4.(220310)

  「성체가 된 멍게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평생을 보낸다」


  낭만적이지 않아? 평생을 하나의 바위에 붙어서 살아간다는 게 멋지네. 하나의 터전, 하나의 상대, 단 하나의 삶. 순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단순하고 명확하잖아.


  난 오히려 정적으로 보였다. 관계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듯 보이기도 했고, 뇌가 없는 멍게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삶을 원한다. 하나의 터전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상대만을 통해 이뤄지는 유일하고 안온한 삶 같은 거 말이다. 안정적인 삶을 부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도 충분히 안정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삶을 즐기고 싶다. 풍파에 깎이고, 잘려 나가는 나무보단, 누웠다 다시 일어서는 풀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이다.


  그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처음으로 건네었던 말은 “적어도 굶기진 않겠네”였다. 우리 부모님 세대나 할법한 말을 나보다도 앳되 보이는 그녀가 하니까. 당황스러웠다. 물론 동시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뼈가 담긴 몇 마디 말로 간단하게, 단순하고 또 명료하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멍게에는 뇌가 없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바닷속에 부유하는 플랑크톤을 걸러내며 생존한다」     


  그녀는 나에게 의지했다.  또한 그녀에게 의지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없다. 당연하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나의 듬직한 면이 좋아서,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나도 좋다고 했다. 나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이와 정말.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평안할 수밖에, 더불어 행복할 수밖에 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가끔씩, 우리는 뭘까. 삶은 무엇일까. 같이 영원히 답이 나오지 않을 듯한 질문으로 서로의 존재와 가치관을 확인하곤 했다. 매번 안정적인 삶이 최고라고 말하는 그녀가,  나쁘지 않았다. 안정. 그땐 몰랐다. 그녀와 . 그러니까 우리 관계가 안정되기 위해선 우리를 제외한 모든 관계와  모든 행동이 격렬하게 투쟁적이어야 했음을 몰랐다.


  안정.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적인 노력의 결과. 그녀와의 만남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독특한 말투와 행동이 귀여웠고, 그녀가 그랬듯이 나도 그녀에게 내 미래를 맡겨도 좋겠다고 매일같이 다짐했다. 그래서 버텼다. 야근이 있어도, 외근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는 출장까지 버티고 버텼다.


  「멍게에도 뇌가 있었다. 성체가 되기 전, 멍게에는 뇌뿐만 아니라 신경, 척삭, 후각과 시각, 심지어 지느러미도 있었다. 자신의 터전을 찾고 나면, 뇌와 신경과 척삭, 후각, 시각, 지느러미까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기관을 소화시켜 버린다」     


  관계는 원만했다. 심지어 함께 있을 때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물론 함께 있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공허했다. 한정된 행복의 총량을 덧없이 날려버리는  아닐까 하며 조급해지기도 했다. 업무는 예전보다  바빴고, 보다 힘겨웠다. 그래도 그녀와 함께할 평생을. 그토록 막연한 평생을 기대하면, 그래서 버틸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의 관계는 고통을 양분으로 삼기 시작했다. 나의 육체와 정신과 체력이 고통스러워할수록,  많이 힘들어질수록, 우리가 함께하는 기쁨,  황홀하고 행복한 동행의 기간이 평생에 가까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고통은 그녀와 나의 관계, 우리의 행복에 비례해져 갔다.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 멍게는 오로지. 단 하나의 바위에 달라붙어 남은 여생을 보낸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몰려올지언정,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포식자가 급격하게 늘어났을지언정, 자신이 한 번 선택한 바위를 결코 떠날 수 없다. 행복을 기대한 선택이 언제나 옳진 않겠지만 선택의 번복은 불가능하다」


  고통의 세월로 나이 들어가며, “굶기지 않겠다 그녀의 주문이 서서히 풀려갈  즈음.  바쁘고, 더욱 늘어지는 노동시간의  사이에서, 관계의 역학에 대해 생각해  여유가 생겼. 이젠 ‘이런 점이 있어서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말보단 이것저것  따져봤는데 ‘이런 부분이 없어서너랑은  오랫동안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편이 에 든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낭만은 현실로 구현되고, 실익을 따진 현실만이 ‘낭만이라는 이상을 품을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우리는 낭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약아지고, 더욱더 계산적으로 행동함이 마땅하다.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 예전에 비해 한 없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그녀의 주문에 걸린 , 이제는 기꺼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노동시간을 꾸역꾸역 채워갔다. “굶기지 않기 위해서



  안녕하세요. 글로벌 토픽입니다. 오늘은 「“금슬 좋은 알바트로스”, 기후 변화로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영국의 학술지에 실린 최신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수온이 따뜻해지면서 더 오래, 더 먼 곳으로 사냥을 가야 했고, 이에 따라 번식기에 맞춰 돌아오지 못해 새로운 짝을 찾게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연구진들은 수온 변화 등의 이유로 먹이를 잘 물어오지 못한 수컷을 탓하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부부 비난 가설’을 제시하면서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였다는군요. 네 다음 소식은......

이전 08화 망각과 열망의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