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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Feb 25. 2021

잃지 않아야 하지만

2021. 연습#2.(210225)_그림.시선

  오늘도 그녀를 만났다. 꿈이라고 인지하면서도 꿈의 한가운데에선 현실이 하찮다. 그래서일까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선택을 꿈속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저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동안 내 꿈에 등장하는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던가. 하는 ‘비상식’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행동들 말이다.


  그 사람을 본지 벌써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다시 나의 꿈에 나타났다. 아니. 어쩌면 내 꿈의 다른 칸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내가 상상해 낸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녀와는 꼭 1년 만의 재회였다. 여전히 그녀는 나의 아내였으며, 만나지 못한 시간이 무색하게, 딱 1년 전, 마지막 만남의 다음 상황이 이어졌다.


"잘 지냈어요?" 


어색한 말 한마디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다소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럼요”


  나의 시간만 1년이 흘렀다. 그녀와의 시간은 1년 전 그날에 연결되어있고, 그녀가 기억하는 나는 1년 전의 내가 아닌, 어제의 나를 기억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1년 같은 하루를 보낸 그녀와 나. 애틋함 보단 당혹스러움이 더 크다. 그렇게 재회한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아마 확실하진 않지만, 내일도 꿈속에서 만나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작년처럼. 그렇게 추억과 사연과 정과 믿음과 신뢰를 쌓았던 경험처럼, 올해도 역시나 새로운 추억과 구구절절한 사연, 연인의 정과 신뢰, 믿음을 쌓아가겠지.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언제 다시 흐트러져 사라질지 모르는. 나만 알 고 있는 나의 연인.


  며칠이 지났고, 나의 바람처럼 우린 많은 추억을 켜켜이 쌓아갔다. '사랑한다' 같이 상투적인 표현으론 그녀와 나의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한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몇 번이나 '사랑한다’며 외치고, 소곤대기도 하며, 가끔 울먹였다. 사랑한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엔 표현적인 ‘사랑’을 뛰어넘는 고귀함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네가 없으면 난 살 수 없어. 같은 천박스러움을 넘어 존중한다. 신뢰한다. 당신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같이 보다 고차원적이고 정신, 정서적 연결에 대한 찬사에 가깝다. 그녀와 나의 관계가 주는 애절함 때문에 손과 발이 저리고 가끔 심장이. 아니 폐가 한 없이 팽창해 터져 버릴 듯 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 만약 꿈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꿈이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없이 안정적이면서도 한시도 불안하지 않은 적 없는 우리의 관계가. 또 한 번. 중단되어 버렸다. 모자란 상상력의 문제일까. 욕심이 과해서일까. 아니면 나조차도 모르게 그녀에 대한 고귀한 사랑의 감정을 천박한 ‘필요’의 방으로 분류했던 건 아닐까. 


  그녀가 사라져서야 내 고귀한 감정이 꽤나 일방적이었음을, 한 없이 이기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제만 해도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는데. 오늘의 꿈엔 그녀가 없다.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빠진다. 스스로의 질책이 심해질수록 그토록 애타게 원했던 그녀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지워져 간다. 그녀를 떠올리는 행위는 노력으로 닿을 수 없는 목표이거나, 노력했기 때문에 닿지 못한 결과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완전히 잊힐 그녀의 기억에 대한 얇은 끈을 놓쳐선 안된다.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 중에 힘을 빼지 못하면 가장 큰 힘을 낼 수 없다는 말처럼, 난 그녀를 떠올리려 애쓰면서도. 그녀에 대한 생각과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랑과 애타는 그리움은 행복과 동의어가 될 수 없다. 함께해서 행복했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없었고, 항상 잠들길 원했다. 일 년 만에 재회한 그녀가 반가웠고, 그리웠고, 온몸의 장기가 저릿하도록 사랑했다.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난 올해도 그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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