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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Sep 27. 2021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나?

2021. 연습#5.(210924)

“도대체 이번이 몇 번 째야, 엄마가 이런 거 묻히고 다니지 말랬지!”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도, 군중의 혼란도, 고막도, 아이의 눈물샘도 순간적으로 찢어 갈겼다.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나’라고 옆에 앉았던 여자가 생각했다.     


  이어 엄마는 묵직하고, 능숙하게 아이의 마스크와 상의와 하의를 털었다. 금세 희뿌옇게 부풀어 시선까지 흐려진다. 뿌연 먼지 뒤에 서 있던 남자는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나’라고 중얼대며 불평의 눈빛을 보낸다.

   

  먼지는 생각보다 오래 공기 중에 머물더니 이윽고 기침이 이어진다. 아주머니, 또 다른 엄마와 아이, 중얼거리던 남자도 따라서 기침을 터트린다. 쳐다보는 사람들. 호통을 준비하는 아저씨, 그리고 멈추지 않는 기침. 모두가 동시에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는 눈치다.


  불쾌하고 불편하다 불안해진 열차 안에는 말 소리를 죽인 채 기척만 남았다. 숨소리와 좀 더 긴 한숨, '사각'하고 비닐 재질의 옷들이 스치는 기척, 여전히 훌쩍이는 아이와, 나풀거리는 희뿌연 먼지, 그 속에 섞여 떠다니는 숨-방울까지도, 모두가 주체가 되어 생각한다.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나’하고.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여전히 ‘그런 사람’이 많다. 불쾌하고 착잡하지만 참는다. 싸울 순 없으니까. 타협을 했다. 부조리에 눈을 감고, 불평의 소리에 귀를 닫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참을만했다.


  매캐하면서 알싸한 냄새도, 위협적으로 눈알을 노리는 선단(先端)도, 피부를 타오르게 만드는 뜨거운 열기도. 타협하니 참을만했다. 그럼에도 입을 꽁꽁 틀어막고 살아야 하는 요즘은, 타협의, 마음속 평온이 무너질 만큼 답답하다.     


  비릿함을 좋아했다. 미지근하고 끈적하다면 더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좋지만, 마스크로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생활해야 하니까, 그때처럼 즐길 순 없다는 게 아쉽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내 친구들도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긴 마찬가지다.     


  자유로웠다. 게다가 나의 삶은 꽤나 능동적이었다. 하고 싶은걸 했고, 먹고 싶은 건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날 위했고, 나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난 생태계에서 가장 최상의 포식자가 되었다. 나에 대한 존경은 경외, 두려움에 가까웠다.




  지하철엔 아직도 기침하는 사람, 아이에게 꾸중하는 엄마와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여자와 남자, 드르륵 캐리어를 끌어다 팔토시를 꺼내어 드는 상인,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나’하고 찡그리는 청년, 꼭 필요했다며 두 세트를 주문하는 할머니, 한 세트를 건네 받고 기분 좋은 할아버지까지. 이질적인 인물과 장면이 순서 없이 뒤엉킨 현재에 난, 더 이상 존경과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입과 코를 마스크로 틀어막고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 생계를 포기해야 함이 모순적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원인 모를 피부발진이 온 나라에 퍼졌을 때도 얼굴 전체를 기저귀 천으로 둘러 싸매고 다녔었다. 피부에 닿으면 바로 발진이 옮겨 붙는 탓에 친구 몇몇은 꽤나 오랫동안 고생했다. 게다가 결핵 때문에, 페스트 때문에, 말라리아 때문에 목숨을 잃은 친구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참을 멍하게 있었는데, 싸늘하게 한산해진 분위기에 정신을 차렸다. 팔토시를 팔던, 사던, 선물처럼 건네받아 좋아하던 사람들이 사라졌고, 불쾌함의 시작이었던 아이 엄마와 더불어 신경을 날카롭게 찌르던 가시들이 전부 사라졌다.만, ‘갑작스러운 평온’은 역시나 불편했다.     


  갑작스레 퍼진 질병으로, 갑자기 맞닥뜨린 생명의 위협으로, 그렇게 급박하게 다신, 절대로, 살아있는 인간의 목덜미를 물어뜯지 않기로 결심했다. 찐득하고 뜨듯하며, 비릿하지만 먹어야만 하는 액체는 동물이나 헌혈처럼 이미 다른 방식으로 추출된 피만 마시기로 했다.      


  생존을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로 살아 있는 인간을 물어뜯는 ‘운명적 살육’이 예전부터 못마땅했기에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결정이었지만, 이러한 결정은 대체로 평온을 위함에 가까웠다. 그때부턴 다른 사람의 피부에, 목덜미에 입을 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손끝 하나 스치지 않는다. 이로써 강박이나 결벽에 가까운 단절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고, 그때 이후로 ‘갑작스러운 평온’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었다. 함께 신처럼 추앙받던 이들도 날 괴짜라 했다가, 비난하기도 했고, 다시금 생각해 보라며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결심을 따랐다. 결과적으로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운명적 살육’이 불가능한 세상이 도래했다. 내 결정이 옳았다. 하지만 내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의 동료가, 나와 같은 종족이 세상에 남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당연하게 여겼던 살육이나, 당연한 듯 증폭되던 소음, 기침이나 대화까지, 모든 관계와 접촉이 불쾌해져 가고 있다. 게다가 모든 상황이 급격하게 정돈되며 엄습하는 ‘평온’을 불편해하는 나를 보며 혹자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요즘에도 저런 사람이 있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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