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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Nov 26. 2021

우리가 마스크로 서로를 마주할 때

2021. 연습#9.(211126)

Portrait of a young girl with a mask (1886), Jean François Portaels

  마스크를 쓴 지 벌써 3년째다. 불편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팽팽한 줄이 귓등을 파고들어 고통스럽다. 최근에는 귓 등에 딱딱하고 노르스름한 굳은살이 하얀 와이셔츠만큼이나 ‘비즈니스 맨’들의 상징으로 떠오를 지경이다. 사람을 상대한다면, 마스크, 특히 두텁고 비말도, 공기도, 미세먼지도 다 차단해주는 마스크의 착용이 필수인 시대란 말이다.


  요 며칠 사이에 내 귓등에도 굳은살이 박이나 싶더니만, 오히려 깊게 파인 골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데 손끝의 촉감과 귓등의 알싸한 고통이 느껴졌다. 소독약을 뿌렸더니 알싸한 알코올 내음과 함께 얼얼한 정도로 귓등이 따가웠다. 이제 괜찮아질 거야. 곧 굳은살이 박일 거야. 그럼 더 아프지 않을 거야.


  요즘에 영업사원들 사이에선 고객에게 괜찮은 마스크를 선물하는 게 새롭게 유행하는 세일즈 포인트라고 했다. 여기서 괜찮다는 말은 가볍고, 날숨이 편하며, 모든 외부의 공기를 막아줌과 동시에 썼을 때 아름답기까지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수준의 마스크를 준다면 적게는 몇십에서 많게는 몇 천까지의 거래가 쉽게 성사된다고 하니, 영업사원들이 마스크에 꽤 많은 돈을 지출할 법한 일이다.


  귓등엔 볼록한 굳은살 대신에 더 깊은 골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귓등에 굳은살이 생겼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영업을 직업으로 삼는 서너 명은 자랑하듯이, 뭔가라도 이뤄냈다는 듯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내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벌어진 틈 사이로 매일같이 피가 흘렀고, 쉽사리 아물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도, 곧. 괜찮아질 거야. 노르스름하고 도톰한 굳은살이 꼭. 생길 거야.


  획기적인 마스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마스크의 효과로 호흡기 질환, 감기, 심지어 장염과 콜레라, 놀랍게도 충치 환자까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에서 상식의 틀을 깨는 새로운 마스크의 등장은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번 마스크는 입을 막고 귀에 걸치던 얇은 줄을 두터운 마개로 대체했다. 그러니까 예전 마스크가 입과 코를 가린다면, 이번에 나온 마스크는 입과 코와 양쪽 귀까지 가린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인간의 입과 코를 막으며 발생한 변화만큼이나 양쪽 귀를 막으면서 생겨날 변화 또한 기대된다.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고통이 사라지리라 스스로를 다독였던 며칠이었다. 그토록 바랬던 굳은살은 박이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통증은 덜했다. 귓등, 정확히 귀와 머리를 연결하는 부위는 더욱 깊게 파였고, 희한하게도 상처가 아물진 않았다. 획기적인 마스크. 저런 상품이 애초부터 있었다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아마.


  선풍적인 인기였다. 아무래도 광고의 힘이 컸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입과 코와 귀를 막고 다닌다. 우스꽝스럽지만 ‘유행’이니까 다들 그러려니 한다. 마스크로 얼굴을 억지로 가린 뒤로 아름다움을 대하는 기준이 바뀌었다. 한때 입 꼬리가 위쪽으로 향하는 모양이 미남이나 미녀의 기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입꼬리 따위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핵심은 눈꼬리, 눈동자의 색이나 눈썹 모양, 전반적인 주름의 모양이 미용분야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드디어 아물었다. 몇 주나 고통스럽게 생 살을 드러냈던 귓등, 귀와 머리 사이, 연한 부위가 다행히 아물었다. 얼얼하다가도 뜨거워지고, 따갑고 살갗을 에는 듯한 고통이 사라짐에 감사했다. 노랗고 볼록한, 어떤 줄을 얹혀 놓든 간에 절대 통증을 느끼지 못할 만한 강력한 굳은살. 이를 얻진 못했지만 고통이 덜해졌음에 묘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가 굳은살이 박였다고 자랑하던 지인이 나에게 ‘획기적인 마스크’를 건넸다. 귀한 물건이라고 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했을 때, 누군가는 마스크로 폭리를 취했고, 또 대부분의 누군가들은 폭리를 취함에도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구매했었다. ‘획기적인 마스크’도 그렇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기업인’ 코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요즘 대표님의 ‘획기적인 마스크’로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획기적인 마스크’를 제2의 반도체, 스마트폰이라고 하더군요”     


  “아휴, 과찬이십니다. 지금까지 한 1조 원 정도 매출이 발생했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1조요? 이런 성공이 있기까지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짐작도 안되네요”     


  “고생 많았죠, 원래는 안면 근육 운동기구를 만들었어요. 위로 솟아서 웃는 입꼬리를 만들어주는 제품 말이에요. 그 날두가 광고했던 그런 거예요. 근데 이게 코로나가 터지고, 다들 마스크를 쓰면서, 하루아침에 주문이 뚝 끊겼어요. 말 그대로 밥줄이 끊긴 거죠. 먹고 살기가 막막해졌는데 저만 힘든 것도 아니더라고요. 다른 회사 영업사원들은 우리 회사가 망한지도 모르고 우리한테 영업을 하러 왔더라고요. 힘들어 보였어요. 매우. 귓등에, 그 귀랑 머리랑 이어지는 연한 살에, 딱딱하고 노랗게 굳은살이 박여있더라고요. ‘유레카’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은 분명히 아플 텐데도 참고 있는 거 같았으니까, 그걸 해결해주자는 거였어요.”     


  “아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획기적인 마스크’인 거군요?”     


  “맞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획기적인 마스크’가 그렇게 등장했습니다. 마스크를 개발하고, 시제품 나오자마자 그때 영업사원한테 써보라고 했죠. 상당히 놀라더라고요. 귀가 편하대요. 게다가 따뜻하고, 소음도 적당히 걸러지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심지어 가상현실에 캐릭터에도 ‘획기적인 마스크’는 선풍적인 인기였다. 전국적인 품귀현상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적으로도 ‘획기적인 마스크’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미 유사품을 만드는 업체가 국내에만 100개도 넘었다. 귀가 편하다거나 소음이 걸러진다는 광고, 무엇보다 돈이 된다는 이유에서 똑같은. 아니 원조 ‘획기적인 마스크’를 보완했다는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긴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대량으로 마스크를 구매하고, 비싸게 되파는 리셀러가 성행했다. 간혹 어떤 이들은 “1회 사용”, “10회 미만 사용” 같은 말을 붙여가며, 중고 제품을 내놓았고, 예상과는 다르게 그런 제품까지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이른바 ‘획기적인 마스크’ 대란이었다.


  이땐 나도 귀가 아프지 않은 ‘획기적인 마스크’를 수 십장 정도 쌓아놨을 시점이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원조 사장님은 또다시 부도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유사품이 무분별하게 늘어났고, 리셀러가 너무 심한 폭리를 취한 탓에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스크를 통한 미의 기준 또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오늘의 ‘건강한 삶, 행복한 삶’에서는 마스크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마스크’, 정말 건강에 도움을 주는 걸까요?”     


  “네, 오늘 주제 ‘마스크’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입과 코를 마스크로 막고 생활한 지가 벌써 4년째가 되어갑니다. 작년에 선풍적인 인기였죠, ‘획기적인 마스크’가 등장하면서 귀까지 막기 시작했고요. 놀라운 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감기 환자가 약 80%, 충치는 50%, 이명은 90%, 우울증도 80% 이상 줄어들었어요. 세상에 존재했던 어떤 의약품도 해내지 못한 성과입니다. 마스크가 건강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놀랍네요, ‘막으면 건강해진다’ 뭐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박사님?”      


  “네 정확합니다. 막으면 막을수록 건강해지는 거예요. 귀를 막으니까 우울증 환자가 줄고, 우리가 더 행복해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인과관계를 콕찝어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마스크와 질병, 나아가서 우리의 생활이나 삶에 큰 연관성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와 정말 대단합니다. 앞으로 ‘마스크’는 어떤 식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순전히 제 사견이지만, 외부에 노출된 기관을 더 넓고, 더 탄탄히 막아주는 방식으로 ‘마스크’가 진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건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요”     


  “정말 가능성 있는 말씀이시네요. 박사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박사의 말처럼, 마스크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기관을 막기 시작했다. 처음에 입과 코, 그다음은 귀, 이어서 눈과 이마, 두피, 목덜미까지 덮혀지는 면적이 넓어졌다. 사람들은 눈에 띌정도로 건강해졌고, 경쾌해졌다. ‘마스크’가 꽤나 유망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모순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K-뷰티라고 한때 잘 나갔던 화장품 산업은 휘청거렸고, 의사들의 최고 인기 분야였던 피부과, 성형외과를 지망하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안면 인식은 쓸모 없어졌고 음성 인식만 더 발전했다. 무엇보다 합계 출산율이 0.3명 수준으로 폭락했다. 다음의 세상을 책임질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마스크’로 얼굴을 뒤덮은 뒤에 태어난 이들의 일부는 마스크를 피부에 이식하는 시술도 받는다는 소문까지도 돌았다. 이젠 ‘마스크’ 없이는 아주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극도로 암울한 미래, 일부 영역을 제외하곤 대다수의 사람들이 건강해졌고, 정서적으로도 크게 안정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적은 갈등과 가장 많은 이타심이 공존하는 사회로 진화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철저하고, 원초적인 개인주의가 완성된 세상이라고도 표현했다.


  딱딱하게 부풀어 올랐던 투명한 노란색 굳은살처럼. ‘마스크’를 선물하던, ‘획기적인 마스크’ 성공에 들떴던, ‘마스크’가 건강의 필수품이 되리라 예견했던 이들의 표정처럼, 우리가 마주한 현재와 현실은 암울한 미래와는 달리 무척 희망찼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고, 어둠이 내리기 전 가장 밝고 뜨거운 태양을 마주함과 같은 맥락이다.


  모두가 얼굴을 가리고 다닌 초기엔 영화에서라도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조차 구경할 수 없다. 가족 사이도 서로의 맨얼굴을 보지 못한다. 형태, 색상, 기능적으로 차이가 있는 ‘마스크’를 인간의 머리, 얼굴로 인지한다. 여전히 새로운 ‘마스크’는 꽤나 센세이션 한 가십이 된다. 다음 세대가 없는 미래, 더 이상 희망이 없지만 우리에겐 건강과 행복을 지켜주는 ‘마스크’가 있다. 여전히 나의 귀와 머리 사이에 깊게 파인 골이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딱딱했고, 두터우며, 노오란. 아니 누르스름했던, 무엇보다 아픔을 막아주던 굳은살이 부럽지 않아 졌다. 꼭 나아지지 않아도, 나에겐 ‘마스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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