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Aug 05. 2020

어떤 초상화

“거, 왜. 화가 양반 알고 있잖은가?”    


“멋지게 그려달라는 거죠?”    


“멋있게 그리는 것도 좋긴 한데, 초상화가 날 닮은 구석이 없으면 되겠나? 그래도 날 그대로 그려주면 좋겠네만.”    


“어떻게, 원하시는 형태가 있으신가요?”    


“일단 내가 키가 좀 작고 몸이 좀 후덕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내 키와 몸이 드러나지 않게 앉은 모습이 좋을 것 같네.”    


“네, 요즘 유행도 다 앉아서 그리는 게 대세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그리고 또, 내가 얼굴이 그렇게 특출나게 잘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오른쪽 눈은 좀 칭찬을 들었네. 내 오른쪽 눈을 좀 확실하게 그려주게.”    


“네, 오른쪽 눈 말이지요?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왼쪽은 숱이 좀 부족하지만, 오른쪽은 그래도 좀 숱이 남아있다네. 이걸 좀 살려주면 좋겠네.”    


“네, 다행히 오른쪽 눈과 같이 오른쪽 머리 부분이라서 처리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잘 부탁하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마 결과물을 보시면 크게 만족하실 겁니다. 이제 밑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잠시 움직이지 마시고 앉아 계십시오.”    


* * *    


며칠 후 화가는 그림을 의뢰인 앞으로 가지고 왔다.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어디, 어디 한 번 보게나.”    


의뢰인은 화가가 가져온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크게 웃으며 작품에 만족했다.   


Tiziano Vecellio, <Portrait of Cardinal Filippo Archinto>


이전 15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