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Jul 06. 2020

1979년 12월 17일

오늘은 12월 5일이다.    


그리고 큰일 났다.    


“1979년 12월 17일? 그러니까 그날이 무슨 날이지? 너희 아버님 돌아가신 날이었던가?”    


“오빠 바보야?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럼 1990년생인 내가 어떻게 태어나!”     


당연한 말이다. 내가 말을 해놓고서도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 그런데도 이리 사랑스러운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일단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생각해둬.”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잔뜩 화가 난 채 돌아가 버렸다.    


-진짜 무슨 날이지? 정말 모르겠는데….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해 보았다.    


-어디 보자…. 1979년 12월 17일… 일단 월요일.    


당연히 월요일을 잊어버렸다는 것으로 그녀가 이렇게 화가 날 리는 없을 것이다.    


-...롯데백화점 서울 본점 개점일…. 그 외에는 딱히 뭐가 없네.    


검색 범위를 12월 17일로 늘려보았다.    


-음…. 그래…. <로마정복> 아니고, <베토벤 생일>… 도 아닐 거고, <라이트 형제 비행> 일리가 없지. <투탕카멘의 묘 발굴>, <심슨 가족 첫 방영>, <아바타 개봉>… 쓸모없네. 국내에선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 국내 사건 사고들을 검색해보았다.    


-1963년에 박정희 대한민국의 제5대 대통령 취임… 2011년 김정일 사망, 플스4 발매… 별거 아닌 특정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별일이 다 있었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컴퓨터를 뒤로하고 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젠장. 라이터를 또 두고 나왔네.    


한숨만 나왔다. 큰일이다. 이번에 이 날짜의 의미를 모른다면 나는 정말로 차일지도 모른다.    


1979년 12월 17일? 아무래도 인터넷 검색으로 나올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 이러한 상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조력자가 내게는 한 명 있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카톡앱을 켰다.    


[미래 처남, 잘 있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 1자가 금방 사라졌다.     


그녀의 동생은 2년 전에 군대를 제대하고 작년에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학비를 벌어 이제 막 복학한 대학생인데, 아직 깨어있나 보다.    


[넵~ 미래의 매형님. 저 지금 한겜 돌고 있어요. 형님도 접속하시게요?]    


[아, 바쁘구나. 아냐아냐, 그럼 게임 끝나면 연락 좀 줘]    


1은 사라졌지만, 답장이 오지 않은 채 약 20분 정도 지나더니 바로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매형?”    


“어휴~ 처남~. 나 좀 살려줘.”    


“아니 또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 저희 누나랑 왜 사귀셔서 저를 이렇게 힘들게... 전에도 제가 도망가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나는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래도… 사랑하니까.”    


“아, 됐고요.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에요?”    


“처남 혹시 1979년 12월 17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네? 언제라고요?”    


“1979년 12월 17일. 혹시 돌아가신 아버님이랑 어머님 결혼기념일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야?”    


“1979년 12월 17일요? 무슨 날이지? 아, 참고로 저희 부모님 결혼기념일은 기억하기 쉬워요. 5월 8일이에요. 어버이날.”    


“그래? 그럼 도대체 그날이 무슨 날이지? 집안 행사나 경사가 있는 날은 아니고? 누나랑 관련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1979년이면 우리 누나도 저도 아직 태어나기 한~참 전인데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그렇지?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 후로도 우리는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앓듯이 고민했으나 딱히 뾰족하게 ‘이거다!’ 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무슨 힌트라도 있으면 좀 부탁해~! 그리고 처남 통장으로 용돈 좀 넣었으니 너무 학식만 먹지 말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 좀 사 먹어~.”    


“어익후~! 형님. 감사합니다! 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과 주전부리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카톡이 왔다.    


[형님, 누나한테 맞아가면서 캐 보니 아무래도 저희 쪽 날짜나 기념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중한 정보 고오맙네! 앞으로도 더욱 정보를 캐내 주게나!]    


[ㅇㅋ요]    


1979년 12월 17일. D-DAY는 이번 주 토요일. 앞으로 4일 남았다.    





그리고 3일 후 그날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 결혼기념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러니까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거지.    


On Kawara <Monday, Dec. 17, 197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