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지언 Jul 05. 2020

아름다운 공작부인

나는 눈이 보이질 않는다. 어렸을 적 심한 열병을 앓은 이후로 내 시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나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으로 되면 인간은 자존감을 무저갱의 한구석에 처박아두게 된다.    


다행히 나는 공작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런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고, 시각을 제외한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이용한 다양한 공부를 시켜주셨다. 덕분에 나는 최소한의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공작 가문에 큰 흠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께선 나를 한적한 시골의 별장으로 요양 보내게 되었다. 이것이 부모님께 마음의 짐으로 남으셨는지 매달 큰돈을 보내주셨다.    


-죄송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무척 행복합니다.    


나의 편지에 부모님께선 많이 안심하신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무척 행복하게 지냈다.     


나의 취미는 맑은 날 정원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정확하게는 ‘듣는’ 것이지만.-     


이는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극도로 편안해지는 취미이다. 


아마 내게 시각이 있어 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취미를 도와주는 한 사람의 여성이 있다. 내가 듣고 싶은 책을 읽어주는 나의 독서 파트너.    


그녀는 이 지역 근방 어느 영세한 귀족의 딸이라고 하였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났고, 그녀의 목소리는 늘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보이지는 않지만,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생각한다.    


그녀의 목소리로 책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 상황, 그 기분이 무척 좋았다.    


책을 읽고 난 후 그녀와 함께 나누는 토론도 무척 즐거웠다.    


내가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녀의 지식수준은 여타 여성들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청혼하였다.    


“저 같은 사람은 공자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혹시 내가 못 생겨서 그런 것일까?’    


나는 내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타르타로스 밑바닥에 깔린 내 자존감은 이런 상상까지 들게 하는구나.    


그 후로 몇 번의 구애가 이어졌는지 셀 수도 없었다. 하지만 끈질긴 나의 구애에 결국 그녀도 응답해주었다.    


“…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난 기쁨이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와 결혼식은 작고 조촐하게 열렸다. 부모님께선 직접 오시진 못했지만, 축하금을 크게 보내주셨다.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그날 밤 그녀가 나에게 안길 때 나는 그녀의 얼굴과 몸,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손끝으로 본 그녀는 역시나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상한 점은 그렇게 나와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침실에서만큼은 목소리를 억누르고 아무런 말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밤마다 우리 침실에서는 오직 육체의 대화만 진행될 뿐이었다.    


* * *    


그리고 그녀와 결혼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20년간 그녀는 나의 수족이 되어주었고 나의 모든 편의를 돌봐주었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     


나는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아내 몰래 은퇴한 궁정화가를 불러 그녀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그리고 그녀를 화가가 있는 방으로 몰래 데려갔다.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거요.”    


“무슨 선물일까요?”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갑자기 실내가 조용해졌다. 의아했다.    


“여보, 당신을 위해 내가 유명한 화가 선생을 불렀소. 화가 선생, 어떤가? 내 아내는. 무척 아름답지 않은가? 이 모습을 화폭에 담아주게.”    


화가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왜지? 내 아내의 미모에 넋을 잃은 것일까?    


“…네, 공작부인께서는 정말 무척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이런 분은 정말 처음 그려봅니다.”    


그래. 역시 내 아내는 화가도 인정할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다.        


MASSYS, Quentin <The Ugly Duchess>


이전 02화 The Stolen Kiss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