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고 싶어. 비록 그림 속에서만이라도. ”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 전날, 그녀는 나에게 뜬금없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림이 아니더라도 아주 예뻐.”
“피~. 남친이 해주는 이야기는 예의상 듣기 좋은 소리로밖에는 안 들리네요. 뭐!”
“남친이 화가인데도? 미(美)를 창조해내는 사람의 눈을 못 믿겠다는 거야? 나는 아름답지 않은 건 내 주변에 두질 않는다고.”
“아이고, 화가 선생님이 말도 잘해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나에게 혀를 내밀었다.
“정말이라니까, 그러네….”
“객관성이 떨어지잖아~!”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저 그녀를 보고 웃을 뿐이다.
“아무튼 내일은 예쁘게 입어야겠다. 이 칙칙한 옷들은 전부 벗어버리고, 밝고 화사한 색으로 옷을 입어야겠어. 음… 나는 노란색이랑 파란색을 좋아하니까, 노랑 파랑 위주로 코디해야겠다!”
“그러면 노란색이랑 파란색을 많이 가지고 와야겠네.”
“…그리고 비비크림도 잔뜩 발라서 얼굴도 좀 화사한 분위기를 내야겠고, 입술은 조금 진한 색으로 발라야겠어. 요새 입술 색이 좀 생기가 돌지 않는 것 같아서말이지.”
“그래그래, 나쁘지 않겠네.”
“그리고 오빠가 선물해준 촌스러운 왕방울 진주 귀걸이도 해야겠어! 아니 자기 입으로 미를 창조해내느니 어쩌니 하면서 어디서 그런 무식한 귀걸이를 구해왔는지 몰라.”
“아니, 왜인지 너한테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지….”
“나 처음 봤을 때 무슨 미러볼 가지고 온 줄? 푸하하.”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생기가 돌았다.
나를 놀리며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이렇게 밝게 웃는 모습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상대방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광대가 되기를 자처하나 보다.
한참을 웃던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지만 가발은 쓰지 않을 거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담고 싶어. 그게 나야. 그리고 내가 살아온 흔적이야.”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숨이 딸리는지 기침을 했다.
몇 차례 이어진 기침에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도 기침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헛구역질과 더불어 각혈하였다.
기침 때문에 눈에 눈물이 맺힌 강한 얼굴을 하고 스스로 다짐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이따위에 질까 봐? 나는 이길 거야! 절대 지지 않아!”
독기가 어린 듯한 그녀의 말.
나는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리고 간호사를 불러 그녀에게 진통제 투약을 부탁하였다.
그녀는 조금씩 잠들어갔다.
“내일…, 나 예쁘게 그려줘야 해?”
“당연하지. 마음 푹 놓고 일단 편히 자.”
그녀가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화구들을 챙겼다.
암 4기. 이미 몸 여기저기에 전이되어 온갖 항암치료를 받아 온몸의 체모가 전부 빠져버린 그녀.
하지만 그림 속의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울 것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그릴 것이다.
내 그림 속에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