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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열두시 Feb 10. 2016

언제부터 였을까 '질문'

날아다니는 생각을 붙잡고, 기억을 되살리게 만드는 주문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두려움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감독을 꿈꾸던 친구와 겨울바다를 보기 위해 무작정 밤 버스에 올랐던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르게 뭍에 닿으려 노력하는 밤바다 앞에 나란히 앉아, 친구는 내게 가장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꿈을 잃는 게 아니냐'는 친구의 대답에, 나는 '생각이 정체되는 것'이라는 말을 힘겹게 뱉어냈다. 며칠 동안 진전이 없는, 출발선에 그대로 멈춰있는 자신의 생각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를까봐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땐 오래 머물지 않고 흘러갔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몇 달 뒤 그 생각은 바뀌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화를 막기 위해 특별히 쓰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전미 히트 차트 같은 걸 찾아 들으며 애를 쓰는 것. 그렇게 생각이 늙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만의  '노화방지법'이라는 것이었다. 





2016년 겨울, 상수동 어느 카페의 다락방





생각이 늙는다는 것과, 제 자리에 머무른다는 것
이 둘이 더해져 만들어진 두려움은 무섭도록
빠르게 나를 파고들었다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것들


나의 생각을 늙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방법을 떠올려 봤지만 내게 맞는 방법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2011년, 창업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큰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내겐 하루키의 '전미 히트 차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그 찰나의 순간 '낯선 실패' 중

자신 있게 도전했던 창업이었고, 쉽지 않은 길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기에 실패라는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폐업신고 이후 '실패했다'라는 사실은 나를 점점 갉아먹기 시작했고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수없이 재생되는 '만약에'라는 가정이었다. 처음에는 이 '낯선 실패'에 대한 아쉬움에 한 번씩 튀어나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횟수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지난 창업을 기억하고 묵혀둔다면, 가장 먼저 따라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창업을 마무리 한 뒤 얼마 동안은 '실패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통해 왜 실패했고, 같은 상황을 다시 겪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을 통해 '실패'의 기억은 '실패를 통한 배움'의 기억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잊고 싶었던 기억에서 왜 실패했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질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2015년 가울, 문래창작촌의 어느 골목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열쇠이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갈 수 있는 연결고리







늙지 않는 생각을 위해 시작한 '질문'


낯선 실패를 값진 경험으로 바꿔준 '질문'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스스로 저장해놓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하고 가공할 방법이 필요하다. 내게는 그 방법이 '질문'이었고 날아다니는 생각과 기억들을 붙잡을 수 있게 늘 도와주었다. 어제의 이야기를 가져올 수도 있고, 내일의 이야기를 그려볼 수도 있으며 뜻밖의 순간들을 묶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전과 다른 답을 찾고 정리하는 것이 뒤따라야 하며 때론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2015년 가을, 문래동의 어느 갤러리






매번, 다시 해도 정해진 모습으로 완성되는 퍼즐이 아니라
방법에 따라 달리 완성되는 레고 블록(block)과 같은 것
우리에게 질문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언제부터 였을까 '흑백'에서, 성급하게 더해진 색을 빼내어 다시 칠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한 적이 있다. 흑백이라는 시작점을 통해 기존에 정해진 것이 아닌, 자신만의 색과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미 완성 되었다는 생각 대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 번씩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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