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을 이제서야 깨닫다

by 함오늘




오늘의 주제인 '기록'에 대해 다루어 보기 전에 먼저 퇴사 후 한 달간 겪었던 다이나믹한 심경 변화부터 서술해 보고자 한다.


1주차: 마냥 행복한 구간

월요일이 좋아진다. 왜냐? 남들 다 일할 때 나는 놀 수 있거든! 주말은 싫어. 왜? 나만 놀아야 되니까. 이러한 생각들로 하루하루 눈뜨는 게 행복하고,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생각 없이 아무거나 해도 괜찮은 나날들이었다.


2주차: 여전히 행복한데 뭔가 찜찜한 상태

오늘은 뭐 하지? 들뜬 마음이 들지만 내심 뭔가 찜찜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뭔가를 잊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 같은.... 에라, 모르겠다. 일단 그냥 놀아! 왜? 즐겁잖아. 난 자유잖아.


3~4주차: 행복 끝, 불행 시작

즐거웠던 미끄럼틀 놀이 시간은 끝나고, 즉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달리던 시간들은 다 지나가고 이제 오르막만 남았다. 하루하루 눈뜨는 게 두려웠다. 왜냐하면 현실 속 불안이 어느새 가늠도 못 할 정도로 불쑥 커진 채 내 앞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불안한 적이 있었을까? 나 뭐 해 먹고 살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고 싶은데. 근데 이거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머릿속이 온통 시끄러웠다.


퇴사 전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긴 했어도 이 정도로 불안이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갇혀 있는 굴레가 싫어서 일단 그 밖으로 뛰쳐나오긴 했는데, 그 다음은 무엇을 할지 몰라 제자리만 방방 뛰는 꼴이었다. 쳇바퀴가 싫어서 벗어났는데, 다시 쳇바퀴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나 싶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멋없다. 하지만 그게 현재의 나였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어서, 이제는 내가 행복한 길을 걷고 싶어서 회사라는 조직을 뛰쳐나왔는데 이 다음 발걸음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떼야 할지 몰라 일시정지 상태가 되고 말았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여태껏 일정한 간격으로 선이 잘 그어진 줄눈 노트를 쓰다가 갑작스레 새하얗고 아무 무늬도 없는 백지를 마주한 느낌. 엄청난 자유도에서 오는 압박감. 그래서 차라리 줄눈 노트를 다시 책상 위에 놓고 정해진 대로 글자를 써내려 가고 싶은 마음.


사회가 정해 놓은 루트대로만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루트 밖을 벗어나 있자니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사회적 시선도 두려웠고,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어도 그 일을 통해 벌어먹고 살려면 어느 정도의 전문적 실력은 갖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남은 것 같아 무력감이 찾아왔다.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씩 내면 속에 자리잡고 움트기 시작하더니 눈뜰 새도 없이 나무 한 그루만큼의 크기로 우뚝 자라났다. 나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시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온갖 고민과 걱정들이 내 머릿속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누가 나에게 인생 매뉴얼을 던져 주었으면 좋겠고, 든든하게 곁을 지켜 주는 조력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찌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불안한 와중에도 나를 위한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다 찾은 방법이 바로 '기록'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써 오던 일기장 외에 기록할 것을 하나씩 늘렸다. 매일 내가 느끼는 감정, 감정을 배제하고 순전히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열거하는 것, 식단과 운동 일지, 러닝 훈련 기록 등등 조금씩 사소한 것들을 기록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모여 꽤 많은 양의 인생 데이터가 쌓였다.


기록한 것들을 쭉 돌이켜보는 것만 하더라도 삶에 대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내가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고, 무기력함에 빠져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기록을 하나하나 시작하고 나니 그간 거쳐온 시간들이 시각화되어 눈앞에 보이면서 '내가 마냥 헛되이 시간을 쓴 것은 아니었구나.', '나 자신을 위해 그래도 조금의 노력은 하고 있구나.'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삶에 대한 만족감과 안도감이 커졌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서툴게나마 나만의 선을 삐뚤빼뚤 긋고, 나다운 것들로 채워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을 '게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도 게임처럼 레벨업 수치가 눈에 보이고, 퀘스트를 깰 떄마다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그렇게 막연하게만 생각해 왔는데, 인생을 게임처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록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거의 30kg 가까이 빼고 3년이 지난 뒤에도 요요 없이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거둔 이유도 기록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어플이나 템플릿을 쓸 생각도 없이 무작정 엑셀을 켜서 한 달치 일정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마다 빈 칸에 그날 먹은 음식과 했던 운동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 밑에는 간단한 소감도 적혀 있다. 오늘은 건강하게 먹었다. 행복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자. 등등. 격주마다 목표 체중을 적어 두어 점검하는 그래프도 만들었다. 엉성하게나마 만들어 놓은 그 일지가 나를 건강한 삶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내 삶을 기록해 나가다 보면 이처럼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향을 정해 놓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불안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그 치열함 속에서 나조차 모르는 새에 조금씩 불안을 걷어내고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성장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챕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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