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퇴사를 결심하고,
'나'답게 살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부던히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회사 생활이 나를 갉아 먹고 있다 판단하고 퇴사 결정을 내린 후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무엇인가에 종속되어 원하지 않는 일에 나의 시간과 체력을 바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다 하나의 답을 내렸다.
나답게 살기.
명쾌하면서도 아주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파고들어 보니 결코 쉬운 해답이 아니었다. 그럼 '나'답다는 것은 과연 뭐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꽤 진지한 고민 끝에 나름의 또 다른 답을 내렸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것을 누리며,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쓸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꾸역꾸역 하지 않고, 순수하게 열정을 발휘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하루하루 착실히 일구어 가는 삶.
꽤나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 삶을 누리려면 돈이 많아야 할 것 같고, 목표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어마어마할 것 같아서 지레 겁을 먹고 제자리에 발이 얼어붙을 정도의 이상적인 삶이다.
하지만 당장 도달할 수 없고 비현실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이상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생각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말이다. 난 뭘 좋아하더라? 아, 그래.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그래서 코인노래방을 일주일에 3번 정도 간 적도 있지. 또... 그래, 난 향기 나는 것들을 좋아해. 향초, 향수, 디퓨저, 인센스 등등. 좋은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져.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글쓰는 것도 좋아해. 좋은 실력을 지닌 건 아니지만 하고 있으면 막 뿌듯해져. 또, 유쾌한 농담을 좋아해. 그래서 남이 웃어 줄 때가 제일 짜릿해. 기타 등등.
이렇게 내 안에 자리한 작은 씨앗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나다운 삶'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도구들을 발견했다. 그 다음은 이것들을 어떻게 풍성한 나무로 자라게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조향사 자격증을 따 볼까? 유튜브를 시작해 볼까? 다시 글을 써 볼까? 혼자 방 안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자니 집중이 되지 않아 평일 대부분은 집 근처 도서관으로 발도장을 찍었다.
<인생 계획>
거창한 타이틀을 백지 위에 떡 하니 써 놓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다움'을 잃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하게나마 백지를 채워 나가다 보니 마냥 시간을 허투루 쓴 게 아니었는지 대충 삶의 윤곽선이 잡혔다. 나다운 것을 통해 가치 창출하기. 이것을 메인 목표로 두고, 부수적인 목표들 중에 당장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글쓰기.
다시 글을 써 보면 어떨까 싶었다.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고 난 후, 기쁜 마음으로 글 몇 개를 끄적여 나가다 꾸준함이 부족해 몇 달을 쉬었다. 오랫동안 쉰 탓에 브런치에서 나를 찾는 알람이 와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어쩌면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그런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마음에 피어오르는 말을 그대로 백지 위에 옮겨 적으면 되는데, 그것이 어려워서, 내가 가진 문장들이 초라해 보여서, 그래서 움츠리고 말았었다.
이제 겨우 삶에서 조금의 숨 쉴 틈이 주어지자 그제서야 글을 쓸 마음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동안 내가 나를 너무 잊고 살았나 보다. 일상이 힘들고 고되다는 핑계로 나 자신을 방치하며 살아왔는데. 아, 맞다. 그랬었지. 글을 쓰는 동안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었지. 나의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었지.
퇴사 후에 한없이 크게 찾아오는 불안 외에도 다른 손님이 존재하고 있었나 보다. 여유. 불안과 여유가 공존할 수 있는 단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두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앞으로의 미래가 한없이 불안하면서도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함께 생긴 것이다.
그 여유와 함께 다시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나다움을 느낀다. 나의 문장은 오롯이 나만 쓸 수 있는 것이니까. 이외에도 나를 나답게 유지해 주는 수단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앞선 연재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러닝'이다. 러닝은 나의 멘탈과 체력을 동시에 강화해 준 아주 고마운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나다움을 찾는 여정 속의 수많은 목표와 수단을 이곳에 전부 풀어낼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하나하나 시도해 볼 예정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나다움'은 허상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나다움을 열심히 좇고 있는 나에게 그런 건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사람을 원망해야 할까? 그 말에 낙담해야 할까? 글쎄,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사실 덕분에 희망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어차피 의미도 정답도 없는 인생, 내가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그려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나다움을 좇는 것이 무모해 보일지라도 일단 발걸음을 앞으로 계속 옮기려고 한다. 사실 이 여정 속에 나 자신에 대한 굳은 확신이라든지 미래에 대한 무한 긍정 따위는 없다.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어찌 되었든 삶의 방향을 정해 두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내가 나의 인생을 살아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