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매몰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by 함오늘






퇴사 후 시간적 여유가 찾아오게 되면서 많은 걸 되돌아보았다. 나의 인생, 나의 관계, 현 위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처음에는 마냥 인생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좀 편하게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끙끙거리면서 버티듯 살아야 할까?


6년의 동굴 생활 끝에 드디어 취업과 독립이라는 두 목표를 달성했건만,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게 다 잘 풀릴 줄 알았건만.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리며 나는 또 다른 숙제들을 품에 껴안게 되었다. 제발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속에 있게 해 달라고 빌었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에너지를 어디다 써야 할지 몰라 답답했던 그 시절의 나.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온갖 새로운 것들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


텅 비어 있던 공간을 꾹꾹 채워 왔으니 이제는 다시 한번 비워 내야 할 때가 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을 무릅쓰고도 퇴사를 선택했다. 겨우 취업을 이루어 냈고, 또래보다 많이 뒤처져 나이만 먹은 사회초년생 입장으로서 1년 반이면 꽤 많이 버텼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회사를 다니며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그중 내가 주로 겪었던 감정은 좌절과 우울이었다. 왜 그랬을까? 여유가 생긴 지금, 지난날들을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회생활을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수많은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부지런히 나의 알을 깨부수어야 했다. 부딪히고 깨지고 아파해야 단단한 알껍질을 부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장에는 반드시 아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프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야만 했다.


실수를 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쓴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었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싫은 소리를 듣게 되다니. 수치심도 들었고, 자존심도 상했다. 훌훌 털어 버리고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면 될 일인데, 그때는 그냥 모든 게 다 억울했고 부끄럽고 힘들었다.


다른 팀원 중 유난히 실수가 잦은 직원이 보였다. 그 직원과 나의 커다란 차이점이 있었다. 그는 실수를 해도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고, 나는 끝없는 땅굴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을까? 어쩌면 내가 이 상황을 대하는 시각이 아픔의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은연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눌렀다. 그냥, 내 탓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들이 너무한 거라고 생각했다. 신입이 실수 좀 할 수 있지, 그거 가지고 사무실에서 쩌렁쩌렁 무안 주고 너무한 거 아니야? 좀 곱게 얘기할 수도 있는데 진짜 너무한다. 일 못하면 사람도 아닌가? 난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나의 방어벽을 점점 두껍게 쌓아 올렸다.


여기서 내 탓을 해 버리면 나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열심히 외부 탓을 했다. 팀원이 문제고, 일이 문제고, 회사가 문제라고. 일도 손에 안 맞고, 사람도 안 맞고... 그냥 이곳은 최악이라고. 그저 생활을 위해 버텨야 하는 곳이라고. 그렇게 굳게 낙인을 찍어 버렸다.


그래서 1년 반 내내 참 많이 힘들었다. 출퇴근을 할 때마다 무거운 짐을 가슴에 얹고 다니는 것 같았다. 주말이면 출근할 생각에 두려워 펑펑 울기도 했고, 퇴근길에도 울었고, 자다가 깬 적도 있다. 회사가 너무 두려워서. 오늘은 쓴소리 안 듣고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싶은데. 아, 결국 또 싫은 소리를 들어 버렸구나.


내 탓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하게 되고야 말았다. 내가 어쩌면 사회성이 부족한 것 아닐까? 늦은 나이에 또래에 비해 많이 부족한 것 아닐까? 나는 무능력한 사람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너무 괴로웠다. 괴로운 걸 알면서도 멈추어지지 않았다.


퇴근 후의 시간은 그냥 없는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으니까 다른 건 할 힘이 없어. 자기개발, 운동, 건강관리 등등 머릿속에 많이 떠올랐지만 결국 나는 스마트폰에 정신을 내맡긴 채 침대 위에 늘어져 있었다. 평일은 참고 버티며 어떻게든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이며, 주말은 번개처럼 왔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았다.


누군가 말했다. 그렇게 하기 싫은 걸 꾸역꾸역 하며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고. 나에게 그 말이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1년만 채우자. 딱 1년만 다니는 거야. 그러면 앞으로 몇 달만 더 다니면 돼. 스스로 되뇌면서 하루하루 시간 까먹기를 하는 내 모습은 어쩌면 짙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회사를 다니라고 강요한 적 없다. 사실 힘들어도 버티는 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누군가 억지로 시킨 것처럼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찬 채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어느새 나다움도 잃어버린 채 말이다.


그래서 그 '나다움'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나 그동안 너무 많이 힘들었으니까. 힘들어서 결국 이렇게 크게 탈이 나 버렸으니까. 그래서 앞으로의 생활이 두려워도 지금의 나를 위해 난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해야겠어.


그렇게 겨우 얻어낸 시간적 여유로 지난날의 내 회사 생활을 돌아보게 된 거다. 그리고 애써 외면해 왔던 그 사실. 어쩌면 내가 이토록 힘들었던 건 나의 시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오랫동안 우울을 끌어안고 살아왔던 사람이고, 회피적인 경향이 강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6년의 은둔 생활을 끝낸 후 제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본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하드코어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 속에서 만약 내가 부지런히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끌어올렸더라면,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더라면. 그런 뒤늦은 생각을 해 본다.


그래, 내가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꾸준히 북돋워 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조금씩 채워 나갔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회사 생활이 조금 더 잘 풀렸을지도.


그런데 이런 생각도 폭풍이 다 지나고 나서야 든다는 게 조금 억울할 뿐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긍정이 아니라 부정으로 우울하게 회사 생활을 보내야 했던 나를 어리석다고 탓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회고해 보는 것이랄까.


퇴사 이후 뜻밖의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이 상황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고 가끔씩 자각하며 빠져나오려 노력한다. 최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이름도 '뇌가 NO라고 속삭일 때'이다. 나는 뇌과학에 관심이 많은데, 이 책의 제목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부정적 잠재의식에 맞서는 긍정의 뇌과학. 딱 나에게 필요한 책 아닌가?

그런 생각에 바로 휙 집어왔다.


부정에 빠지는 스스로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왕 나답게 살기로 결심한 거,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도 앞으로는 점차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했다. 물론 억지 긍정 같은 건 할 생각도 없지만... 어찌 되었건 명랑한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렇게 차분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마냥 차분한 어린이가 어디 있을까? 해맑게 열심히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점점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에 녹아들며 '점잖은 어른'의 가면을 쓰는 것일 뿐.


퇴사가 나에게 엄청난 불안을 안겨다 주긴 했어도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안겨다 주는 것 같다. 퇴사 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더라면 나의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깊게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었을까? 글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허둥지둥거리며 한 상황에 매몰되어 있었겠지.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시간이 아닐까?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상황에 매몰되어 고통받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다정한 시간들로 잠시나마 평온하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05화나다운 건 과연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