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떠밀려 구직사이트를 뒤적이다 下

우당탕탕 불안 적응기

by 함오늘



전편과 이어집니다.

07화 불안에 떠밀려 구직사이트를 뒤적이다 上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회사 건물이 생각보다 크고 깔끔하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했던 전 직장과 달리 구내식당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사원증을 매고 매일 출퇴근하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글쎄, 딱히 특별한 기분이 있을까. 막상 건물 앞에 서니 긴장감이 들었지만 그것에 압도되지는 않았다.


절실함의 부재 때문일까. 붙어도 그만, 안 붙어도 그만. 경험 삼아 인생의 퀘스트 하나를 깨 본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스스로가 제법 배짱 있게 느껴졌다. 그동안 그렇게 불안에 떨었으면서.


면접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팀장이 될 사람과 일대일로 대면해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무 테스트를 1시간 조금 넘게 봤다. 그런 다음 또 30분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면접관과 이야기를 나눌 때쯤에는 체력이 급속도로 하락하는 느낌에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피곤해 보인다는 말이 돌아와 오전에 러닝을 하고 와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사실 러닝 탓만은 아니고, 실무 테스트를 치르는 동안 이전 직장의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고, 톱니바퀴 돌아가는 듯한 사무실의 분위기에 압도된 탓이 컸다고 생각한다.


바로 다음 주에 나와 줄 수 있냐는 질문에 어물쩡거리다 시간을 조금 주시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또한 절실함의 부재 때문이었다. 당장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면접을 보러 와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역설적인 마음을 계속 품고 있자 면접관도 어렴풋이 이런 내 상태를 느낀 것 같았다.


그럼 내부적으로 회의를 해 보고, 다음 주 중에 연락을 줄 것이며 만약 합격할 시 2주 뒤에 출근하는 것이 어떠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그러겠다고 했다. 2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건물 밖을 나와 시간을 확인하니 뭐 했다고 2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무슨 면접에 이만큼의 시간을 쓰냐. 졸릴 만도 했지. 저질 체력이 원인일 수도 있는데 애꿎은 면접 시간을 탓해 본다.


어쩐지 녹초가 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더 쉬고 싶은데, 불안이라는 녀석에게 쫓겨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쳇바퀴 도는 삶이 싫어 일단 빠져나왔는데, 부지런히 바퀴를 돌리던 발이 가만히 멈추어 있는 것이 허전해 견딜 수 없어 또다시 쳇바퀴를 찾는 모습이라니. 정말,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나다움'은 과연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또다시 쳇바퀴 속에 뛰어들게 된다면 가까스로 힘을 내고 있는 나 자신이 또 퇴색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사실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은 회사를 다니면서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하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나다운 것'을 조금씩 개발해 나가면 되는데, 그냥, 그렇게 하기가 지레 겁이 나고 두려웠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래서 혼자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족쇄를 차듯이 억지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까? 사회생활 진짜 쉽지 않다. 한탄인지 어리광인지 모를 생각에 머리를 싸매는 시간이 며칠 이어졌다. 아마 러닝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미쳐 버리고 말았을 거다.


연락을 준다던 그날이 되었다. 연락이 오지 않기를 기다리다가도, 이 기회가 아니면 또 막막한 미래를 살아내야 할 걱정에 괜스레 폰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규칙적인 진동이 울린다. 면접을 보았던 회사의 번호다. 여보세요? 나름 싹싹하게 받는 목소리 안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묻어 있다. 합격이다. 미리 협의한 대로 2주 뒤에 출근할 수 있냐는 물음에 아주 찰나의 순간 망설임이 오가다 가능하다는 답변을 남겼다.


이로써 백수 탈출이다. 이제 나에게 2주라는 시간은 그저 막연한 불안 속에서 벌벌 떨어야 하는 시간이 아닌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시간, 그리고 나를 재정비할 시간이 되었다.


후우, 그래. 당장은 불안하지만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나다운 삶의 방향성을 천천히 찾아보자. 그래, 그래. 머리로는 옳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고, 가슴속에는 '아직 난 일하고 싶지 않아'라는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야. 어찌 되었든 결정했잖아. 마음을 굳게 먹어. 가슴속 외침을 애써 꾹 눌렀다.


그 후 2주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새 직장이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꽤 멀어 이사를 고민하다 실제로 그 근처의 부동산을 몇 군데 찾아다니기도 했고, 새 업무에 잘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공적인 출근을 했냐고?


아니다.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약속된 2주가 끝날 무렵,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금요일날 회사로 연락을 했다. 죄송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출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변덕을 부려도 이런 변덕이 있을까 싶겠지만, 약속된 출근일이 다가올수록 이런저런 생각이 찾아왔다. 내가 출퇴근 왕복 3시간을 매일 견딜 수 있을까? 나를 잃어 버리지 않고 새 직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애초에 굳게 선 결심도 아니었기에 작은 걱정에도 쉽게 흔들리는 마음 상태였다.


사실 모든 게 다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냥, 아직은 직장에 다닐 준비가 안 되었을 수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더 쉬고 싶었다. 사회적 시선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그동안 지쳤던 나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순간의 불안에 쫓겨서 허둥지둥 결정을 내렸던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몹시도 갈팡질팡했던 마음이지만, 다시 직장에 다니겠다고 결정을 내렸음에도 자꾸만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용기를 내어서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동안 올라오는 모든 불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이제는 더 이상 휩쓸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자 무겁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출근을 하지 못한다는 전화를 마친 후, 그제야 조금의 미소가 입가에 띄워졌다. 잘한 결정인지에 대한 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잘한 결정으로 만들어 나갈 내가 있을 뿐. 그 미소에는 옅은 불안이 아직 자리하고 있었지만 후련함도 함께 묻어 있었다.


이제는 불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껴안아 보기로 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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