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불안 적응기
퇴사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무렵, 나는 그동안 미뤄 왔던 피부과 방문을 하기로 했다. 어깨에 아주 오래 전부터 빨간 혹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혹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면서 때로는 잠을 깨울 만큼 날카로운 통증을 안겨다 주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뭘까? 원인을 밝히고 제거하고 싶지만 왜인지 병원을 가기로 결심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막연히 두려운 곳, 그곳이 바로 병원이었다.
어쩌면 더 오래 미룰 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시간이 생겼으니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혹이 점점 더 커져서 어깨를 넓게 뒤덮을 거라는 생각이 스치면 눈앞이 캄캄했다. 큰 마음먹고 간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치료 비용을 듣는데... 아니, 이게 맞나? 피부과 방문은 생전 처음이라 레이저 치료에 이렇게 큰 비용이 들어가는지 몰랐다.
평소 소비 습관이 그다지 대범하지 않아서 5만 원 이상만 넘어가도 며칠을 고민했다. 이걸 정말 사도 되는지,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지. 그런데 치료 비용이 백만 단위다. 망설이다 '나중에 올게요'를 뱉었을 법도 한데, 오늘이 아니면 할인가 적용이 안 된다는 제법 장사꾼 같은 직원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몇 년을 미루다 큰 마음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쉽게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인지 나는 덜컥 치료비를 결제하고 말았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제대로 치료받는 거니까 괜찮아. 이렇게 부지런히 되뇌어 봐도 한 번에 큰 비용을 지출해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지금 당장 일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고정 지출은 매 달마다 훅훅 빠져나갈 텐데. 어쨌거나 내 손으로 결정을 내린 일인데 마치 돈을 삥 뜯긴 것마냥 울상이었다.
앞서 말했던 그 빨간 혹의 정체는 켈로이드 피부라고 한다. 이 피부를 지닌 사람은 상처가 생겼을 때 아주 유의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처가 비정상적으로 아물어서 겉으로 융기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융기만 하면 다행인데 통증과 함께 점점 부위가 넓어져서 문제였다. 완치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고, 그냥 평생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나를 괴롭히던 녀석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아내니 속은 시원하다마는.... 안 그래도 미래가 걱정돼 막막하던 시점에 덜컥 큰 지출을 하고 나니 머릿속이 더더욱 캄캄하고 불안해졌다.
퇴사 전 분명히 예상했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면 재정 상황 때문에 불안해지는 시점이 오겠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몸소 겪고 나니 미칠 지경이었다. 매달 고정 지출이 나가는 것 정도만 예상했지, 이렇게 병원비로 훅 큰돈이 나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한 부분이라 더 타격이 컸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지출로 인해 당장 생계가 뒤흔들리는 상황은 아니지만, 평소 워낙 짠순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몹시 큰일인 것처럼 다가왔다.
이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큰 지출을 해야 할 때가 분명히 생길 텐데, 지금 미리 예방 주사를 맞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쓰린 속이 그나마 조금은 달래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불안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었다.
이래서 무대책 퇴사를 말리는 건가? 한창 퇴사를 고민하던 시점, 무서운 알고리즘 녀석이 어떻게 알고는 온통 퇴사 관련 콘텐츠만 보여 주던 때가 있었다. 무대책 퇴사는 절대 하지 말고, 환승 이직을 하거나 대비책은 어느 정도 마련하고 회사를 그만두라는 조언이 담긴 콘텐츠들이 보였다. 틀린 말이 전혀 아니다. 아주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안이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 따르기 싫었다.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더 버텨. 여기서 더 못 해.
일단 살고 보자,라는 마인드로 퇴사를 결심하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든 잘 풀리겠지, 하며 제법 속 편한 생각으로 하루하루 퇴사일을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미리 대책을 세우지 못한 대가로 아주 작은 바람이 불어와도 폭풍을 만난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릴 내 모습을?
우습게도 나는 병원을 다녀온 그날, 집으로 돌아와 구직사이트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곳에 입사 지원을 했다. 혹시나 몰라 미리 스크랩해 둔 곳이었다. 쫓기듯 지원서를 낸 후 마음이 편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이곳에 지원하면 무조건 백 퍼센트 붙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배짱도 좋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 왔다. 강하게.
그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지원을 해 놓고도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꼴이라니. 정말... 주체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우스운 꼴이었다. 무언가 등 떠밀리듯 연쇄적으로 결정을 내리고는 있지만 그곳에 자기 주도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학습이라도 받은 것마냥 '사회적 기준'이라는 것에 맞추어 결정하는 것이 숨쉬듯 자연스러웠다. 사실 그 '사회적 기준'조차도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낸 잣대인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래야 해. 비난받지 않으려면, 눈밖에 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해.
나는 어찌 되었건 백수가 되었고, 마냥 편하게 놀 수 있는 나이도, 상황도 아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으니 스스로 결정을 내리면서도 마치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듯한 느낌에 울상 짓기 십상이었다. 진짜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꾸역꾸역 버텨야 하는 건데. 또다시 쉽게 외부 탓을 했다.
이런저런 혼란을 겪으면서도 나는 걸려온 전화에 긍정의 답변을 남겼다. 당장 내일도 면접을 볼 수 있다고. 더 쉬고 싶다는 절망적 외침과 불안의 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