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치거나 힘든 순간과 같이 부정적인 상황 뒤에 이 말을 붙이면 거의 무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낼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무력해지는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말이기에 생각날 때마다 가끔 꺼내 쓰는 말이다. 억지 긍정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힘을 주는 말이니까.
그런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나도 역시 예외가 없었는지 이 말을 아예 잊고 살 때가 더러 있다. 부정적인 상황에 한껏 매몰되어 땅을 파고 있는 시기. 그러다가 자연스레 정신을 차리고 또 그 말을 꺼내어 보는 시기가 반복되는데, 요즘이 그러한 때다.
먼지가 소복하게 덮인 단어 위를 손바닥으로 쓱 털어내고 다시 마음속에 꺼내어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퇴사 이후 짧았던 해방감은 뒤로하고, 불쑥 찾아온 불안과 함께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일을 그만두면 당장은 불안하겠지만 그런 건 모르겠고, 미래의 나 자신이 알아서 잘해 주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 자신과 불안의 폭풍에 한껏 휩쓸린 채 산발이 되어 버린 현재의 내 모습이 교차된다.
내가 이렇게 변덕스러운 사람인지도, 선택을 내리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사람인지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답게 살 것인지, 현실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두 마리 토끼를 둘 다 잡아 보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머릿속에 선택지는 이것저것 떠오르는데 무엇 하나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었다. 생각도, 걱정도 모두 산더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당연하게 겪는 과정은 아닐까?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처음, 퇴사도 당연히 처음. 인생 2회 차가 아닌 이상 이 모든 것에 대해 미리 대비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천방지축 우당탕탕이어도 더는 할 말이 없는 거다. 처음이니까.
나라는 인간은 그랬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좋은 말들을 새겨 놓아도 실전에서는 말짱 도루묵이고, 직접 부딪히고 깨져 봐야 가슴으로 깨닫고 조금씩 배워 나가는 사람이었다.
이번 퇴사를 통해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억울하지만 항상 절대적 진리로 다가왔던 것이 하나 있다.
아파야 성장한다.
아프기는 죽기만큼 싫은데 실컷 앓고 나면 그제야 지난날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아, 내가 그 기간을 거치면서 성장했구나. 어둡고 짙고 아팠던 만큼 성장은 비례했다. 왜 굳이 아파야 하는 건데? 허공에 대고 따져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아픔을 뚫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아픔 속에서 좌절하고 무릎 꿇고 웅크렸던 시간이 존재했지만 어찌 되었건 어둠 속에서 직접 두 발로 걸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성장해 있다.
이번도 예외는 없을 거라고 본다. 비록 불안에 얻어맞고 있는 나날이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분명 지금보다 더욱 성장해 있는 내가 존재할 테니 말이다.
불안 속에서도 조금씩 나 자신을 보살피는 법을 배워 나갔고, 오랫동안 해소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스스로를 불행의 쳇바퀴 안에 빠뜨려 잠시 퇴색된 시간을 가졌지만 퇴사 후 모처럼 생긴 여유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과 만나게 되는 소중한 경험도 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또 어떨지는 그 누구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시간들을 밟아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