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불안은 패키지일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by 함오늘







처음 퇴사에 관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날이 떠오른다.


진정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나는, 막상 온전한 자유를 갖게 되자 미친 듯한 불안과 마주했다. 광활한 백지를 마주하고 선 느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마냥 두 손 놓고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공책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노트북 화면에는 하얀 메모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공책에도 역시나 새하얀 백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부터 써내려 가야 할까?


무턱대고 '2025 목표'를 적었다. 신년 계획을 세울 분위기는 지나 버린 3월이었는데 말이다. 막연하게 지금 시점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았다. 좋아하는 일 찾기, 월 얼마 이상 벌기, 운동 꾸준히 하기, 나다움 찾기 등등. 적다 보니 매 목표마다 공통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너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 느껴져 무력함이 들었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세부 단위까지 쪼개어야 한다는데, 그 단계를 가기 전부터 나는 덜컥 막혀 버렸다.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했지만 정작 '나'는 누구지?라는 물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며칠을 끙끙 앓으며 도서관이든 카페든 내 방 책상 앞이든 앉아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생각했다. 그러자 슬그머니 몇 가지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나의 이야기로 콘텐츠 만들기'였다. 나다운 것으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 생각을 하니 당장은 막연하더라도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글을 써야겠다. 한때 어설프게나마 작가의 꿈도 꿔 보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했으니 이 점을 살려서 다시 글을 써 보아야겠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지도 거의 1년이 흘러 있었다. 여태껏 간헐적으로 글을 쓰다 맥이 빠져 관두었던 적이 많으니 이번에는 꾸준함을 목표로 써 보자. 나다운 것들을 조금씩 써내려 가 보자.


그렇게 '퇴사'에 관한 브런치북 연재를 처음 구상하게 되었다. 게으르고 끈기 없던 나에게는 꽤나 큰 챌린지였다. 내가 매주 총 10화 분량의 글을 연재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였지만 나를 믿고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단 저지르면 그 뒤의 일은 그때그때의 내가 수습하겠지, 라는 팔자 좋은 마인드였다.


일상에 거대하게 생긴 빈 공간을 어설프게나마 나다운 것으로 유의미하게 채워 나가는 것 같아 매 화 연재를 하는 동안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첫 화였던 '도비 이즈 프리'를 읽으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퇴사를 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써내려 간 것 같아 멋쩍어서 그렇다. 내 탓은 아주 조금 있고, 못된 회사 때문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북의 제목인 '퇴사와 불안은 패키지인가요'를 지었던 시점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졌었다. 마지막 화에는 불안을 멋지게 극복한 나 자신을 상상하면서 '퇴사와 불안은 꼭 패키지는 아니야'라고 쿨하게 외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마지막 화를 맞이한 시점에서 그 모습이 실현되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을 말하자면, 퇴사와 불안은 패키지가 맞는 것 같다. 물론 세상에 정답은 없기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불안이라는 녀석이 등 뒤에 아주 찰싹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을 꼭 극복 대상으로 보아야 할까 싶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불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주한 상황이 크든 작든 말이다. 불안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잘 흘려보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때로는 불편한 동침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 조금씩 인생의 굴곡을 배워 나가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10화를 연재하는 동안 솔직한 심경을 가감 없이 써내려 가기도 했고, 때로는 '불안에 맞서는 나'를 그럴싸하게 잘 포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번 나의 시간들을 기록해 나가면서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내가 '퇴사'라는 키워드에 너무 얽매여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인생에 있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나름 중대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인 것마냥 부풀려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인생 첫 퇴사'라는 테마에 집중해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필요 이상 불안을 부풀린 것은 아니었는지.


여러 생각이 교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 이후 가진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값진 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취미인 러닝을 시작하게 되면서 체력뿐만 아니라 단단한 멘탈을 다져 나가는 중이고, 인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고 목표를 재정립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할 테고, 혹은 퇴사 후 많은 생각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에피소드를 겪어 나갈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불안에 휩쓸리고 있다면 그 시간 속에서도 반드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불안한 만큼 성장은 멈추지 않으니까 말이다.


퇴사 이후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직? 아니면 여태 걸어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길? 그 무엇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딱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어떤 시간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할 '나'라는 것이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워 나가는 게, 그게 인생이라는 걸 깨닫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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