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불안 위를 달리다

불안을 등에 업은 채 내달리며

by 함오늘





나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퇴사 후에 찾은 취미, 그것은 바로 러닝이다. 여태 자신 있게 '이것이 저의 취미예요!'라고 말할 것이 마땅히 없었다. 그림 그리기, 글쓰기, 음악 감상, 노래 부르기 정도? 이렇게 나열하자니 꽤 많은 것 같기는 한데 뭐랄까, 소홀한 순간이 많았기에 무엇 하나 취미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기가 괜스레 찔렸다.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OO 씨,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굉장히 뿌듯한 표정으로 '러닝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러닝과 단단히 사랑에 빠진 요즘이다.


퇴사 후 생긴 수많은 선택지 중에 '왜' 하필 러닝이었는지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재작년부터였나. 러닝 붐이 한창 일었을 때에도 내 마음은 시큰둥했다. 달리기? 어릴 적부터 정말 끔찍이도 싫어하던 스포츠였다. 학창 시절 체력 측정 혹은 수행 평가를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 정도로 내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1분도 내리 못 뛰고 금방 헉헉거리기도 했고, 속도도 느렸다. 난 평발이라 그래. 달리기를 싫어할 이유를 찾아서 쉽게 미워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 달리지 못해서 안달이라니 참 신기하다. 마치 초딩 입맛에서 어른 입맛으로 변화한 스스로를 자각하는 느낌이랄까? 요즘 부쩍 구황작물과 떡이 좋아졌으니까.


그랬던 내가 점점 러닝이라는 키워드에 가까워진 시기는 아마 작년 가을쯤부터였던 것 같다. 퇴근 후면 항상 배터리가 방전된 채 살고 있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데.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도저히 힘을 내지 못했다. 운동해야 하는데, 자기개발 해야 하는데. 그저 입에 달고 있을 뿐, 행동에 옮겨도 꾸준히 가질 못했다. 동기부여가 도저히 되지 않고, 스스로를 방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오래된 배터리, 오토파일럿 상태로 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을 푹 자도 피곤하고, 건강하게 나름 챙겨 먹어도 피곤하고.... 쉴 때조차 마음 편히 못 쉬고 마치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있는 상태와 같았다.


체력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자각하던 시기에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건강 관련 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 하나가 러닝이었다. 러닝의 신체적·정신적 장점을 설명하는 영상과 러닝을 하며 인생이 달라졌다는 사람들의 인터뷰, 러닝을 적극 권장하는 연예인과 의사까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기를 하면 정말 인생이 달라지나? 인생의 결핍을 커다랗게 느끼고 있던 나는 그들의 말이 믿고 싶어졌다. 달리기가 주는 혜택들을 나도 누리고 싶었다.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싶었고,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는 정신을 강화하고 싶었다.



낙동강을 따라 러닝을 하기 시작했다. 러닝을 시작한 시기와 벚꽃 개화 시기가 겹쳐서 첫 일주일 동안은 달리면서 원 없이 아름다운 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러닝 어플의 음성 코칭에 따라 1분 걷고, 2분 뛰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했다. 집을 나설 때에도 그랬다. 옷장 속에 파묻혀 있던 운동복을 꺼내 입고 현관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나왔다. 첫날 운동 난이도가 쉬워서 그런지 별로 힘들지도 않고,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적은 시간이지만 달리고 난 뒤에 생기는 느낌도 좋았다. 잠에 취해 있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 몸이 나에게 '주인님,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느낌? 그간 내가 얼마나 물 먹은 솜 상태로 살았는지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현재까지 두 달 차 초보 러너가 되었다. 스스로를 당당히 러너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경력이 쌓였다. 물론 그 앞에 '초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겠지만.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완벽주의와 자기 불신 탓이 컸다. 이거 해서 뭐 하겠어? 부정적인 속삭임이 귓가에 들려올 때면 그걸 쉽사리 물리치지 못하고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러닝만큼은 달랐다.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랬다. 달리면서 점점 좋아지는 체력과 성취감에 쉽게 러닝을 놓을 수 없었다. 밤낮으로 러닝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도 일쑤였다.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잘 뛸 수 있을까? 나도 러닝을 더 사랑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러닝은 뇌와 정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사실 내가 가장 기대했던 효과가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멘탈이 약하다고 생각하기에 인생의 여러 역경을 잘 헤쳐나갈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싶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달 안에 긍정적인 효과가 생겼냐고 묻는다면 글쎼, 드라마틱한 효과는 사실 느끼지 못했다. 서서히 변화하고 있기에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달리는 동안만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퇴사 후 하루하루 점점 더 커져 가는 불안에게 쫓기던 나는 합법적으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것도 일종의 회피일까?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달리는 동안만큼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온전히 달리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불안이 나를 찾아올 때면 이 녀석의 얼굴을 밀어내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뛴다. 오로지 다리의 움직임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만 집중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불안, 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머릿속의 시끄러운 소음이 잦아드는 느낌, 어지러운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숨 쉴 틈과 뛸 공간이 있다는 느낌.


어느 순간부터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내달리는 순간이 잦아졌지만 현실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 어쩌면 현실 도피가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의 미래와 주변 시선에 대해 온갖 불안과 걱정을 끌어안고 있고,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한다'는 사실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러닝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아마 불안에 휩싸인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체력이 좋아질 나를 생각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해졌다. 자기 불신이 익숙했던 내가 어느새 스스로를 믿고 긍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 행위를 그만둘 수 있을까?


러닝을 잘해서 뭐 할 건데? 또다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걸로 벌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해서 뭐 하게? 불안이라는 녀석이 말했다. 당장 미래를 생각해야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네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있을 때야, 지금? 마음을 쿡쿡 찌르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도 달렸다. 1분도 못 뛰던 나는 어느새 20분은 내리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30분을 뛰고, 1시간을 뛰어서 10k 마라톤을 참가해 보는 것이 나의 첫 목표가 되었다. 장비도 그럴싸한 게 없어 아직 두꺼운 골덴 모자를 쓰고 러닝 코스를 내달린다. 그래, 러닝을 잘해서 사회적으로 근사한 성과를 낼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우선 달리는 동안 내가 살 것 같잖아. 드디어 스스로를 잘 보살피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잖아.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잖아. 그렇게 불안에게 말을 건넸다.


언젠가 내가 다시 회사라는 집단에 들어가 쳇바퀴를 굴리게 된다면 러닝을 지속하지 못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되기도 했다. 꾸준히 해서 더 성장하고 싶은데 내 시간이 많이 없을 것 같아 벌써부터 지레 우울해지기도 했다. 괜한 걱정일까? 정말로 내가 러닝을 사랑한다면 그 속에서도 꾸준히 지속할 방법을 찾게 되겠지.


어떻게 보면 러닝은 나에게 있어서 달리는 도피처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작은 희망을 품어 보게 된다. 불안을 등에 업은 채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점점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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