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비 이즈 프리"

퇴사라는 선택을 하다

by 함오늘





퇴사했다. 나도 드디어 자유와 해방을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도비는 마침내 꼬질꼬질한 양말을 손에 얻은 채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Dobby is free!" 도비는 자유예요! 그 도비가 지금의 나다.


퇴사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회사가 내 삶에 차지하는 비중은 몹시 컸다. 하루가 24시간이라면 그중 8시간 동안 회사에 머무르게 된다. 하루의 1/3을 회사에 소비하는 셈이다. 남은 16시간 중 8시간은 자는 시간이다. 적정 권장 수면 시간이 7~8시간인 것을 기준으로 하자면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1/3만큼의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일까? 혹여나 집과 회사까지의 거리가 멀다면 출퇴근시간만으로 보통 1시간,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챙겨 먹고 씻다 보면 어영부영 또 1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칼퇴할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야근을 하다 보면 1~2시간쯤? 그럼 나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4시간? 그마저도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아야 알차게 소비할 수 있는 거고, 현실 속의 나는 출근-일-퇴근 루트를 착실하게 밟은 후 너덜너덜해진 채 침대에 누워 있기 십상이었다.


이러한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풀 창구도 없었다.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말은 왜 이렇게 짧은지. 평일 내내 찌뿌둥하게 구겨져 있던 내 몸을 반듯하게 펼 새도 없이 일요일이라는 녀석은 찾아오고, 밤이 될수록 다가올 월요일이 두려워 편하게 잠들지도 못했다.


내가 이토록 회사생활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삶과 일의 균형, 워라밸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퇴근 후 강의를 듣고, 운동도 하면서 자기개발 해 나가는 삶. 거기다 음식도 건강하게 챙겨 먹고 7~8시간은 자는 반듯한 삶.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내 몸은 오래되어 방전된 배터리처럼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기 싫어했고, 하기로 한 결심했던 일들을 마음 한편에 싹 다 뒤로 미뤄 버렸다. 주말도 마찬가지였다. 평일보다는 비교적 넉넉히 시간이 주어졌지만 피로가 쌓인 몸은 늦잠을 원했고, 그렇게 찌뿌둥하게 일어나 점심을 먹다 보면 회의감이 든다. 뭐 했다고 벌써 12시냐. 회사가 두려운 이유 두 번째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따라오기 마련이라는데 직장도 예외는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직장 상사와 나의 성향이 맞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피드백을 수없이 받아야 하는데, 짜증이 섞이고 날이 선 상사의 말투를 고분고분 듣고 있을 그릇이 못 되었다. 그렇다고 반기를 들었냐? 아니다. 속에서는 화가 끓어올랐지만 뭐 어쩔 수 있나. <네. 알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사 생활 동안 가장 많이 뱉었던 말 TOP5로 대응하는 수밖에. 세 번째는 나의 미성숙함이었다. 나는 이 분야에 있어서 신입이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나는 공백기가 꽤 길었다. 6년, 동굴 속에 웅크린 채 은둔하던 시기를 지나 드디어 취직과 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루게 된 나는 사회로 뛰어들자마자 가혹한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다. 실수도 잦았고 처세술도 부족했다.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간인가?라고 생각이 들 때면 자괴감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세상 모두가 나에게 친절했으면 좋겠는데. 왜, 왜?! 이런 철부지 같은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업무가 손에 익지 않은 데다 주어지는 할당량도 많아 입사 초반부터 대략 반년 동안은 밤 8~9시 퇴근은 기본이었고, 어떤 날은 밤 11시까지 회사에 남아 설움을 삼켜 가며 모니터와 눈싸움을 했다. 야근 수당도 주지 않는데, 열정페이도 이런 열정페이가 없었다. 네 번째로는 일. 하는 일이 나와 맞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업무 비중의 1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90%는 단순 반복 작업인데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일이었다. 사람이 힘들어도 일이 괜찮으면 다닐 만하고,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괜찮으면 다닐 만하다는데. 나는 사람과 일, 둘 다 처참히 망해 버렸으니 서서히 고장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취업만 하면 모든 게 술술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새 스스로 족쇄를 찬 채 퀭한 좀비가 되어 있었다.


진작 그만뒀어야 했나 싶지만 이래저래 힘들어도 꾸역꾸역 버텨 온 이유가 있었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낙오자로 점 찍히고 싶지 않아서. 괜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일지도 몰랐다. 나는 또래에 비해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더는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 악물고 버텼다. 그 누구도 나를 한심한 루저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찬 셈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힘들다고 그만두면 그다음에는 뭘 할 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주위에서 널 뭘로 볼 것 같아? 무겁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퇴사를 결심한 이유? 몸이 아파서였다. 작년 말부터 조금씩 고장 나던 내 몸은 연초에 제대로 탈이 나 버렸다. 유행하는 독감에 덜컥 걸려 버린 나는 이어서 폐렴까지 걸려 거의 3주간을 골골 앓았다. 특히 제일 아팠던 기간에는 일주일 간 병가를 내고 침대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열과 기침 속에 시달렸다. 설 연휴 기간이었는데 가족들과 떡국 한 그릇도 먹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근데 그 와중에 우스운 생각은 '더 아프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회사에 가지 않으니까. 입사 초반부터 지금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쉼 없이 달려왔던 나는 강제로 주어진 이 휴가가 반가웠다. 그래서 이대로 몸이 낫지 않아 영원히 회사에 가지 않았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출근을 하면서 교통사고가 나 회사에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면 강력한 퇴사 시그널이라는데, 어지간히 시달렸나 보다 싶었다. 아픈 이유가 모두 회사 때문인 것만 같았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정신 차려 보니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멧돼지를 보면 생존을 위해 편도체가 활성되는 과거 인간의 뇌를 그대로 물려받은 현대인은 직장 상사라는 멧돼지와 하루의 대부분을 좁은 공간에서 같이 머무르는 환경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 모든 게 회사 때문이다. 그렇게 치부하고 싶어졌다. 몸이 아프니까 서글펐고, 면역력이 떨어진 몸과 피폐해진 내 마음을 바라보자 스스로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토록 나 자신을 방치해 왔을까?


병가를 낸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여기까지 왔으며, 여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떤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회사를 다니며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던 나날들과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했던 날들이 교차했다. 퇴사가 답일까?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현재 내 몸과 마음 상태를 보았을 때는 퇴사하는 게 정답이지만 무작정 퇴사해 버린다고 해서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퇴사를 하고 난 후 재정적인 상황이나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떳떳하게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해야 했다. 퇴사를 선택하고 앞으로 주어질 새로운 변화들을 용감하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 직장에 계속 남아 경력을 쌓아나가고 그 속에서 강인해져 나갈 것인지. 결국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더 이상 이렇게 아프고 싶지 않았고,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었다. 당장 대책도 없고 뚜렷한 미래도 그려지지 않지만 현재의 나를 살리고 싶었다.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회색빛으로 퇴색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누군가는 이런 나를 비난할 수도 있다. 사회인으로서 당연히 겪게 될 일인데 너무 나약한 것 아니냐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발 물러서기로 결정했다. 나답게,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 살고 싶어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회사로 복귀한 첫날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퇴사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1달 반. 이 기간 동안 미래에 대해 차차 생각해 나가야지,라고 생각하며 지금 당장 드는 불안을 미래의 나에게 맡겼다. 잘한 결정일까? 글쎄. 일단 해방감부터 제대로 느껴 보자. 나는 그 자리에서 하동으로 가는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했다. 날짜는 퇴사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래, 우선 낯선 여행지에서 그동안의 나날들을 차분히 돌아보자. 오랜만에 떠나게 될 혼자 여행을 생각하면서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퇴사를 기념하며 직접 그린 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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