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파이팅 넘치는 가상 코치가 있다
주말 동안 신나게 놀고 먹었으니 오늘은 좀 뛰어 볼까?
이틀 내내 과식한 탓인지 찌뿌둥한 몸이지만 3일 이상 쉬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오늘은 LSD 트레이닝이 끌렸다. 여기서 LSD란 'Long Slow Distance'의 약자로, 장시간 동안 느린 속도로 뛰는 훈련을 뜻한다.
속도에 신경쓰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뛰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40분짜리 훈련을 택했다. 러닝을 시작하면서부터 여태껏 '런데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다양한 훈련을 거쳐 왔다. 1분 뛰고, 2분 걷는 병아리 코스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30분 인터벌 훈련까지 모두 런데이와 함께해 왔다.
러닝 어플을 켜고 달리면 좋은 점은 나의 운동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얼마큼의 거리를 달렸는지 측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응원을 해 주거나 건강 정보에 대해 알려주는 가상 코치의 목소리가 꾸준히 들린다는 것이다.
힘들어서 몸이 퍼지려고 할 때쯤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힘내세요!', '할 수 있습니다!'라며 쉽게 포기하지 않게끔 해 준다. 이 어플을 쓰는 러너가 꽤 다수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가상 코치의 별명이 무엇인지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런총각.
런데이를 켜고 달리고 있자면 마치 등 뒤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을 겸비한 맑은 눈의 건장한 청년이 계속해서 따라오는 것 같아서 그러한 별명이 생긴 것 같다.
이제 그 런총각이랑 함께 달린 지도 세 달차. 여태껏 엄청난 양의 응원을 받았기에 오늘도 큰 감흥 없이 어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LSD 훈련을 시작하기 전, 원하는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 러닝에서 '페이스'라는 단어는 보통 1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오늘은 천천히 뛰어 보기로 했으니까 7분~7분 30초 페이스로 뛰어야겠다. 설정을 마친 뒤 신나는 음악을 틀고 늘 익숙한 주로 위를 한 걸음씩 달리기 시작했다.
저녁 7시가 다 되어 가는 무렵, 공원은 노을빛에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적당한 초여름 공기에 기분 좋게 뛰고 있었는데 뜻밖의 목소리와 마주했다.
이제껏 '잘하고 있어요!'라며 무한 칭찬을 던지던 런총각이 갑자기 굉장히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여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너무 느립니다! 속도를 올려 주세요!'
어라, 그래? 내가 너무 느리게 뛰나 싶어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그런데 주말 과식의 영향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는지 평소라면 가볍게 뛸 페이스에도 몸이 무거웠다.
아, 이 이상 빠르게 뛰는 건 안 돼.
무리해서 오버페이스를 뛰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요즘이기에 런총각의 말을 무시하고 내 몸이 허용하는 속도로 계속 뛰었다.
아니, 그런데 달리는 40분 동안 체감상 5분마다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느립니다!' 모르겠고, 나는 오늘 빨리 뛸 여력이 안 된다고! 속으로 혼자 외쳐 봐도 멈추어 서서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 이상 반복되는 목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반쯤 달릴 쯤에는 '그래, 나 느리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체념한 채 열심히 오늘의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남은 시간을 달렸다.
만약 러닝 초보 시절의 나라면(지금도 초보지만 햇병아리 티는 많이 벗었다) 어플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조급해져 빠르게 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절대로 몸이 허락하는 정도 이상의 속도를 내어서는 안 된다고.
최근 주말을 맞이해 처음으로 30분만에 5km를 뛰었다. 평소라면 40분이 넘게 소요되었을 텐데, 개인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뿌듯함을 안고 잠에 들었는데, 문제는 그 주 내내 무리한 탓인지 몸이 엄청나게 피로했다는 것이다.
몸이 피로해지니 도미노처럼 여태 잘 지켜 왔던 일상이 무너졌다. 나는 오래된 다이어트 경력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데, 몸이 피곤하자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되었다. 게다가 수면 패턴에도 영향을 끼쳐 일주일 내내 고생했다.
사실 면밀하게 분석해 보았을 때 무리한 러닝이 원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결론을 그렇게 내렸다. 러닝 때문일 거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러닝을 할 때 속도와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걷기 수준의 느린 달리기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건강과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니 조급해하지 말라는 몇몇 조언을 들었다.
몸소 체험해 본 결과,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이제는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몸의 컨디션에 맞게 현명하게 뛰는 것 또한 노련한 러너가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최근 들어 그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던 잔소리를 실컷 들은 하루였지만 또 하나의 러닝 요령을 깨달은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러닝을 시작하고 싶거나 혼자 뛰기 심심한 사람들에게 런총각의 잔소리를 추천하고 싶다. 듣고 있다 보면 아주 가끔은 약오르기도 하지만 꽤나 큰 힘이 되어 준다. 유용한 정보도 주고, 매번 운동 기록을 할 수 있으니 동기부여 또한 덤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런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