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러너가 맞닥뜨린 첫 번째 관문
러닝을 시작한 이후로 두 달 내내 쭈욱 달리는 행위가 재미있어 아마 이대로 평생 달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애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운동복을 척척 갈아입고 공원으로 향하는 나 자신이 제법 자랑스러웠다. 정말 기특하잖아. 아주 오랜만에 나 자신이 순수하게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꾸준히 달리고 있는 내 모습과 사랑에 빠졌달까.
그렇게 몸도 마음도 스퍼트를 내어 열심히 달리던 도중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부상도 아니고, 중대사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달리는 게 예전만큼 신나지 않달까. 러닝 권태기였다.
러닝을 향한 열정이 절정에 달할 때쯤,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로 개인 신기록을 세우며 뿌듯함에 가득 차 있을 때였다. 러닝을 끝내고 삼겹살과 냉면으로 영양 보충도 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무리한 탓이었는지 몸이 피로해졌고, 이런저런 상황으로 몸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자 하나둘씩 건강 습관이 무너졌다.
직접 건강식을 해 먹는 순간보다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을 시켜 먹게 되고, 피곤한데도 잠을 미루었다. 잠을 미루자 음식이 당기고, 또 나쁜 음식들을 찾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아주 사소한 핑계들이 켜켜이 쌓여 가며 러닝이 썩 유쾌한 일로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그 사소한 핑계들을 말해 보자면, 이전과 달리 통통하게 불어난 뱃살로 인해 평소 잘 입던 운동복이 조금 타이트해졌다. 그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운동복을 입기 싫었다. 달리려면 운동복을 입어야 하는데 말이다.
불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몸이 무거워지고, 그로 인해 마음가짐도 전보다 처지게 되자 '오늘만 러닝 미룰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그전까지만 해도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일단 나가서 뛰자는 마인드였는데 말이다.
러닝 권태기가 찾아왔다고 해서 정말로 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러닝 시작 이후로 여태 3일 이상 쉰 적이 없다. 꾀부리고 싶은 마음이 한껏 들어도 여태 쌓아온 나의 체력과 멘탈이 아까워 달리는 행위를 그만둘 수 없었다.
권태기는 정말 여러 방면에서 찾아오는 녀석인 것 같다. 운동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삶에서도. 어쩌면 권태기는 무언가를 해내는 과정 중에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관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권태기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 길은 그냥 그대로 닫혀 버리게 되는 거고, 극복하게 된다면 계속해서 가고자 하는 길을 쭉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예전의 나를 돌이켜 보자면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 그냥 그 자리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하던 것을 곧장 멈추어 버렸던 것 같다. 그래서 꾸준함의 미덕도 몰랐고, 끈기가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보다 나름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지 끈기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깨달았기에 러닝 권태기가 찾아온다 한들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냥, 권태기라는 녀석이 찾아왔구나, 정도.
아마 이 권태로운 시기를 극복해 계속 달리게 된다면, 나도 어쩌면 이제 더는 햇병아리 러너가 아닌 중수 러너쯤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즐거운 상상도 해 본다.
오늘은 3일가량 쉬었다가 오랜만에 뛰는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몸이 무겁고, 속도가 제대로 잘 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몸도 마음도 힘든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뛰고자 하는 내가 있으니까.
그러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