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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러닝은 날파리와의 사투다

by 함오늘






내가 러닝을 시작한 계절은 늦겨울과 초봄 사이. 그때까지만 해도 서늘한 공기가 나의 러닝에 있어 유일한 방해꾼이었다. 하지만 러닝을 거듭하며 추위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지금, 또 다른 방해꾼이 생기고 말았다.


점점 여름 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요즘 시기에 나의 주로에는 새로운 녀석들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하나둘씩 보이던 녀석들이 날이 풀리면 풀릴수록 우후죽순 늘어나 한 발 한 발 내딛는 족족 바로 코앞에 알짱거리며 나를 엄청나게 환대해 주었다. 이 인간 또 왔다. 선크림 향기 좋네!라고 말하는 듯한 이 밉상 친구들의 정체는 바로 날파리다. 아니, 하루살이인가? 뭐,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다 한 번씩 날파리 무리들이 득실득실거릴 때면 기겁하는 감탄사 한 번 내뱉어 주고 손을 휙 젓거나 고개를 흔들어 주면 금세 시야가 깨끗해졌다. 그런데 여름의 향기가 더욱 짙어진 6월이 다가오자 이 녀석들의 기세가 제법 매서워졌다.


일단 녀석들의 개체 수가 말이 안 되게 늘어난다. 특정 스폿에만 머물러 있다기보다 그냥 주로에 날파리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기 자리에서 얌전히 나풀거리고 있으면 말도 안 한다. 계속 눈앞에 어지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끈질기게 따라온다. 이게 정말 엄청난 압박감을 준다. 눈 한 번 잘못 깜빡이면 눈으로 들어올 것 같고, 호흡 한 번 거칠게 쉬었다가는 뜻하지 않은 단백질 섭취를 원 없이 할 것만 같았다.


아, 이래서 고글을 쓰는 건가?


러닝도 욕심을 내고자 하면 은근히 비용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장비에 그다지 큰 투자를 안 하고 싶었던 나는 최소한의 필수 아이템만 구비하고 있었다.


일단 러닝벨트. 스마트워치가 없는 나로서는 기록용으로 러닝 어플을 켜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담을 러닝벨트는 필수다. 쿨토시와 쿨마스크. 다가올 여름철 러닝을 대비해서 미리 사 둔 두 아이템을 요즘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특히 쿨마스크는 뜻하지 않게 날파리를 섭취하는 것을 방지해 주어서 특히 고마운 아이템이다.


사실 쿨마스크를 끼면 답답해서 벗고 뛰다가 날파리가 목젖에 그대로 꽂힌 경험을 한 것은 비밀이다. 뱉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오지 않은 녀석을 억지로 꿀꺽 삼킨 경험은 정말 아찔했다.


러닝에 재미를 붙인 나는 오랫동안 이 운동을 이어 나가고 싶었기에 미리 여름철 러닝에 대해 예습해 두었다. 그중 날파리의 습격에 미리 대비하라고 알려 주던 목소리들이 생각났다. 고글은 단지 자외선과 바람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날파리 녀석들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알았다.


실제로 바이크를 타거나 러닝을 하다가 날파리가 눈에 들어가 다래끼에 걸린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그 정도인가? 싶었던 나는 몸소 부딪히고 나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정도라는 것을.


결국은 오랫동안 장바구니에만 보관해 두었던 고글을 구매하고 말았다. 사실 고글을 끼는 이유 중에 하나가 달리기를 하면서 못생겨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도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 터라 단순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그런 사치는 부리고 싶지 않았는데, 고글은 필수템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아직 겨울 러닝을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여름 러닝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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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이하며 고글뿐만 아니라 새롭게 구매한 다른 아이템들도 있다. 러닝벨트와 모자. 어? 러닝벨트는 앞서 언급한 것 아니었나?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여름에는 수분 보충이 필수적이라 물통을 꽂고 달릴 수 있는 벨트가 필요했다. 애초부터 물통 수납이 가능한 벨트를 샀더라면 이중 지출은 하지 않았어도 됐겠지만 후회는 없다. 러닝에 있어서 투자를 아끼지는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모자는 메쉬 소재의 구멍이 송송 뚫린 것으로 하나 장만했다. 그동안은 스포츠용이 아닌 캐주얼한 골덴 모자를 쓰고 달렸었는데,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두피에 땀과 열기가 맺히며 통풍이 잘 되지 않으니 트러블이 잦아졌다. 그렇다고 아예 모자를 벗고 달리기에는 피부에 따갑게 내리쬐는 자외선을 용납할 수 없어 새롭게 여름용으로 하나 구비했다.


사실은 이왕 새로 장만하는 거 유명 브랜드 것으로 알아볼까 싶어 백화점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 식겁했다. 무슨 모자가 하나에 7만 원이 넘어? 평소 스포츠 용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가격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꽤 충격적인 숫자로 다가와 그대로 살포시 진열대에 모자를 다시 내려놓았다. 다음에 보자. 내가 정말 러닝에 더욱더 진심이었을 때 말이야. 속으로 조용한 작별 인사를 건넨 후 매장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오래된 운동복과 운동화를 착용하고 무작정 힙색을 덜렁덜렁 맨 채 달리던 시절에 비해 이제는 이런저런 장비를 구입한 탓인지 꽤나 러너의 모양새를 갖춘 것 같다.


선거로 인해 휴일을 맞이하여 오늘 처음 새 고글을 개시했지만 아쉽게도(?) 날파리가 나타나 주지는 않았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그런가? 오늘은 그냥 넘어가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쭉 지속될 여름철 야외 러닝 동안 날파리로부터 확실하게 나를 보호해 줄 고글의 성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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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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