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인이 이렇게 말헀던 걸 기억한다.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그래서 그 우울이라는 녀석을 없애기 위해서는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를 하든,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든 부지런히 움직여서 흘려보내야 한다고. 나는 그 말에 머리로는 수긍했다. 가슴으로는 와닿지 않아서 그렇지.
나는 따뜻한 물에 샤워하는 걸 좋아한다. 한여름에도 따뜻한 샤워는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고 멍하게 서 있는 그 순간만큼은 몸도 마음도 함께 나른해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 계속 이렇게 멍하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홈트 영상을 하나 골라 재생한다. 열심히 따라 한다. 30분 이내의 운동을 마치고 나면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이 좋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다음 날도 꾸준하게 이어나갈 생각이 들지 않아 좌절한다. 아, 운동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만 강박적인 생각을 되풀이한다.
나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난 가만히 머무르기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라고.
원체 나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로 살아왔다. 그래서 더위에 강했다. 물론 어느샌가부터 강렬한 폭염이 덮쳐 와서 '여름 좋아 인간'이었던 나도 이제는 더위가 무섭지만 말이다. 똑같은 운동을 해도, 찜질방을 가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비교적 뽀송한 상태였다.
뭐, 좋을 수는 있다. 찝찝하지도 않고, 계속 흐르는 땀을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땀을 흘리는 것은 곧 몸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한다는 의미인데, 그것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일부러라도 땀을 흘릴 수 있게 반신욕이나 운동이 필요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실천하려니 '꾸준히'가 안 됐다. 해야 하는데,라는 강박적 굴레에 빠져 그런 생각을 품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만 일으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장기간 물 먹은 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눈두덩이에는 큰 돌이,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얹어진 것만 같았다.
오래되어 방전된 배터리. 충전기를 수액 맞듯이 항상 꽂고 있어야 하는 상태. 그렇게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현 상황에 무기력하게 순응했다. 그러다 퇴사를 하고 그토록 머릿속으로만 바라던 러닝을 실천하고 나니 그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억지로라도 땀을 흘려야 하는 사람이 맞았구나.
러닝을 시작한 첫날, 겨우 1분을 뛰면서도 뇌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듯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만 같고, 마치 물속을 걷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1분 뛰고, 2분 걷기를 5번 반복한 후 운동을 마치고 나자 몸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머릿속이 맑아졌다고 표현해야 할까? 여태껏 취한 듯이 물에 푹 잠겨 있던 몸과 정신이 아주 조금 물기를 걷어낸 듯한 느낌.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린 이후로 매번 러닝을 마칠 때마다 똑같은 느낌을 기대하게 되었다. 러닝은 매번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1분에서 이제 곧 1시간을 내리뛸 수 있는 체력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매번 러닝을 통해 느낀다. 러닝은 물기를 가득 머금은 내 몸을 손빨래하듯 쭈욱 짜 준다고. 최근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오랜 기간을 뛴 적이 있다. 그 시간 동안은 힘들었지만 달리기를 멈추자마자 온몸에 피가 확 돌면서 몸이 뽀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습기가 걷히는 느낌. 나도 모르게 집 가는 길에 미소가 번졌다. 아, 역시 오늘도 달리길 잘했다.
길 가다 혼자 웃으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머리에 스쳐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러닝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말을 속으로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 더 경쾌해졌다.
문득 몇 년 전, 그러니까, 5년 전쯤 한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있던 내가 생각난다. 창가에 이마를 기대어 먹구름이 낀 눈으로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하나의 생각에 잠겼다. 내 인생이 평생 우울할 것이라는 예감. 막연하게 그럴 것 같다, 가 아니라 거의 확신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아마 평생 우울하겠지? 그 정도로 우울의 끝을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어떠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우울 속을 헤매면서 먹먹함 속에 잠겨 있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예상이나 해 보았을까? 내가 달리기를 하며 우울을 조금씩 털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엇이든 고이면 썩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지런히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우울이라는 것을 머금은 채 축축하게 살아왔다. 스펀지처럼 꾹 짜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먹먹하게 살아왔는지도, 앞으로 뽀송하게 살아갈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지도.
러닝은 날씨로 비유하자면 마치 초여름 같다. 실제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러닝은 늘 마음속에 싱그럽게 초여름 햇살처럼 자리하며 축축했던 내 마음을 뽀송하게 감싸 주고 달래 준다.
그렇기에 더더욱 앞으로도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달리면 달릴수록 내가 평생 러닝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만 커져간다.
점점 날씨가 더워져 간다. 여름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아마 올여름도 지난날들이 그랬듯 엄청난 폭염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물론 아직 한여름 러닝의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해 호기롭게 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사계절 상관없이 꾸준히 뛰다 보면 그 언젠가 나도 짱짱한 배터리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물 먹은 솜이 아니라 가벼운 깃털처럼 사뿐하게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을까?
그 무엇 하나 장담할 수는 없지만 혹여나 내가 다시 물에 잠긴다 해도 이전처럼 큰 걱정은 없다. 이제 그 물기를 털어내는 방법쯤은 알고 있으니까. 먹먹함 속에서 나를 구해낼 방법 하나쯤은 손에 쥐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