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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 회고록 Feb 12. 2024

제주도 수용대 생활

할아버지 회고록 17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제주도 수용대 생활



 제1연대 제1대대 본디 이곳은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라 소본부와 연대본부 그리고 대대본부는 석조건물인데 중대는 24인용 천막에 수용하였다. 천막하나에 1개 소대가 수용했는데 50명씩 수용하는데 한쪽에 선임하사의 잠자리가 넓게 차지하고 반대편에 총가가 있다. 나머지 공간에 한쪽에 25명씩 50명의 잠자리다. 어떻게 잘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중대단위로 입소식을 하는데 먼저 피복과 개인장비가 지급되었다. 국산작업복 한벌과 러닝셔츠와 팬티 한 장씩 양말 한 켤레 모자와 운동화가 피복의 전부였다. 입소식을 마치고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제식훈련으로 시작됐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밥이 너무 적다. 식기도 없고 수저도 없다. 반합뚜껑에 밥을 싹 깎아서 담아주고 밥 위에 콩자반 몇 개 아니면 새우젓 조금 놔준다. 나무젓가락은 이미 수용대에서 만들어 논 것이 있어 이용할 수 있었다. 한쪽에서 식사당번이 밥을 담아 릴레이식으로 전달하는데 재수가 좋으면 겉뚜껑밥을 차지하고 재수가 없을 때는 속뚜껑밥을 먹게 된다. 50명이라 밥을 50개 담아야 맞는데 모자란다. 중간에서 감추는 것이다. 당번은 그것을 감안해서 여분을 담는다. 아침식사는 꼭두새벽인 2시에 배식한다. 자다 말고 팬티차림에 누은자리에서 앉아 식사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도로 눕는다. 왜 그렇게 그 시간에 식사를 시키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이해를 못 하겠다. 그리고 6시에 기상나팔이 울리면 기상하고 천막 앞에 집합, 일조점호를 취한다. 변소, 세면장 바쁘다. 변소는 늦게 가면 만원이라 줄을 서야 한다. 변기는 미군들이 만들었는지 판자로 좌변기로 만들어져 불결해서 앉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변기 위에다 발을 올려놓고 용변을 봐야 한다. 세면장에 가면 수도시설이 되어있어 사용하게끔 되어있는데 물이 적어 세수를 할 수가 없다. 차례대로 수통에 물을 하나씩 받는다. 그것으로 양치 세수하고 하루종일의 식수가 된다. 그 당시에는 수도 급수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제한된 급수다. 아침에 잠깐 나왔다가 끊긴다. 그것도 제1연대만 혜택을 볼 수 있었지 다른 연대는 그나마도 없다. 훈련 나가서 소 발자국에 고여있는 물을 마신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훈련병들이 이질에 걸려 심하면 적리에 걸려 고생하기도 한다. 한 번은 내가 적리에 걸렸다. 팬티에 똥이 묻었는데 하나뿐이니 빨아 입어야 하는데 물이 없어 취사장에 가서 배수로에 흘러나오는 구정물로 빨아 그대로 입을 수밖에 없다.


 훈련장은 야외가 있어 시간마다 뛰어야 한다. 교장과 교장 간의 거리가 멀다. 땀에 젖고 먼지와 땀에 옷이 범벅이 돼버린다. 제주도는 일기가 불순하다. 여름이라 비가 자주 내리는데 비만 내렸다 하면 길이 수렁이 되고 비만 그치면 금방 먼지로 뒤덮는다. 교장에서 교장으로 이동하다 보면 가끔 고추밭을 지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고추밭은 결딴난다. 풋고추를 국에다 잘라 넣어 먹기도 하고 새우젓에 찍어먹기도 한다. 영내에 P.X가 있는데 봉급 가지고 칫솔 하나 사면 남는 돈이 없다. 칫솔이라야 나무에다 돼지털 박은 것 금방 못쓰게 된다. 치약은 튜브식으로 되어있는데 날이 춥거나 하면 얼어서 물만 쭉쭉 나올 뿐이다. 칫솔로만 닦든지 아니면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만다. 여름에는 열대성 기압으로 태풍이 많다. 내가 훈련기간 태풍을 만났다.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고 훈련을 받을 수가 없어 대피했다. 일부는 비행장 격납고에 일부는 석조건물에 우리는 모슬포에 있는 신축 중인 학교건물에 대피했다. 일주일간을 대피했다가 태풍이 지나가 천막을 다시 세우고 훈련이 다시 시작됐다. 훈련과목 중에 독도법 교육에 야간실습이 있다. 9월의 초 이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 야간훈련받기에는 좋았다. 서너 명씩 조를 편성, 나침반 하나씩을 가지고 목표지점을 찾아간다. 숨겨놓은 것을 찾아온다. 그런데 주위가 밭이라 밭을 밟고 목표물을 향해가는데 가다가 보면 고구마밭이 대개가 있다. 일부로 진로를 그렇게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배고픈데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우선 캐서 먹는다. 시간이 없으니 씻거나 닦을 사이도 없다. 풀밭에 문질러 흙만 털고 먹는다. 먹으면서 가면서 하다가 시간이 되면 호각소리가 난다. 시간이 됐으니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라는 신호다. 먹으면서 되돌아 뛰어간다.


 집합해서 인원점검이 끝나고 손바닥과 입술검사를 한다. 고구마를 캐 먹지 않았다고 변명하지만 손바닥을 전등으로 비추어보면 새까맣게 고구마 진이 묻어 금방 탄로 난다. 지휘봉으로 손바닥 몇 대 맞는다. 그것으로 끝난다. 조교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과겠지만 우리는 훈련기간 중 단 한 번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배가 고팠던 때의 한 추억이 되겠지. 일요일은 휴무다. 그날은 세탁하는 날이다. 세탁비누를 나누어 주는데 한 장을 십 등분으로 잘라 나누어 주는데 어떻게 그 적은 것으로 옷을 다 빨 수가 있을까. 작업복에다 내의 모자까지 군대의 보급은 정량이란 없다. 상부에서는 책정된 정량을 지급하게 되어있지만 지급 과정에서 손실 아닌 손실로 개인에게 정량이 지급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먹는 것 입는 것 기타 소모품 어쨌거나 신병은 군소리 한마디 못하고 주는 것이 정량이라 생각하고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무반의 덮는 모포를 중대기간병이 팔아먹고 망실했다고 우리의 봉급을 공제 변상시키곤 한다.


 쾌청한날 세탁하러 나가면 기분이 좋다. 우리는 부대에서 가까운 바닷가 모슬포로 나간다. 상수도 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바닷물로 빤다. 옷 여벌이 없어 모래사장이나 바윗돌에 널어놓고 목욕을 하고 맨몸으로 놀다 보면 마른다. 그곳 바닷가에 유일하게 우물 하나가 있다. 썰물 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우물이 나오는데 그때를 이용, 주민들은 빨래도 하고 식수도 길러간다. 물맛이 참 좋다. 실컷 마신다. 옷을 바닷물에 빠니 염분기가 있어 찝찔하다. 거기에다 일주일간 땀에 젖으니 온통 소금발이 하얗다. 그러한 가운데 날이 가고 또 가니 훈련이 끝나는 날이 왔다. 본래 훈련기간이 8주인데 태풍으로 한주일 대피한 기간이 있어 9주일이 됐다. 9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전훈련을 마치고 씻을 사이도 없이 집합시켰다. 물론 씻을 물도 없었지만 중대장이 나와 수료식이랄까 훈시가 있었다. 그리고 서무병의 호명이 있었다. 호명된 병사는 대기해 있던 트럭에 태우고 출발했다. 그런데 나는 호명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남은 인원 중에서 또 호명을 하는데 자대보충병이란다. 모두가 육지로 가기를 갈망했다. 일기가 불순하고 물도 귀한 곳, 훈련소에 남고자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도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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