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회고록 15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점호가 끝나고 누워 자려하니 잠이 올리가 없다. 상배와 둘이서 담요 한 장 깔고 한 장 덮고 우리는 부대에서 데리러 온다는 것을 모르고 징역살이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어떻게 잠이 들었다. 어쨌든 그날밤은 유치장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 점호를 취하고 주먹밥 한 덩이 얻어먹고 세수도 못하고 앉아있으려니 간수가 문을 열고 우리 두 사람 나오란다. 우리를 조사실로 데려갔다. 들어보니 어제 도망갈 때 만났던 정보과 요원 두 사람이 그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대뜸 어제 그놈들이 아닌가 하고 우리를 노려보는데 기가 팍 죽어버렸다. 고개를 수그리고 그들을 쳐다보지 못했다. 또 그 자리에서 수갑을 채우고 끌려 나왔다. 우리를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정말 차이스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보성에서 순천까지는 꽤 멀다. 버스가 와서 타는데 우리를 수갑을 채운채 끌려가는데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아예 모른 채 눈을 감고 서있었다. 얼마나 왔을까 우리를 끌고 내렸다.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를 뒷자리에 태우고 출발했다. 차라리 버스에 타고 있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았다. 금방 부대에 도착했다. 정문을 통과하고 공장마당 아니 연병장에서 지프차를 세웠다. 부대전원이 집합해 있었다. 대대장과 중대장은 보이지 않고 부관과 기간요원들이 열외에 서 있었다. 우리가 지프차에서 내리니 쳐다보는 눈초리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도저히 눈을 마주 대할 수가 없었다. 부관이라는 자가 우리를 노려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하며 주먹으로 몇 대 때리더니 너희는 전시 부대이탈 탈영자라 즉결처분시킨단다. 중공제 따발총을 허공에 몇 발 쐈다. 그리고 총살을 시키겠단다. 유언이 있으면 하란다. 그리고 우리를 앞으로 가란다.
그리고 따발총을 나의 바로 옆에 갈기는데 진짜로 총살시키는 줄 알았다. 아- 우리는 여기까지 와서 죽는구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멍하니 눈을 감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부관이 다가와서 총대로 몇 번 쥐어박더니 2층 내무반으로 끌려갔다.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죽창으로 내려치는데 사정없이 계속 치는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물통의 물을 퍼붓고 정신을 차리면 또 때리는데 허리, 등, 궁둥이 허벅지 가리지 않고 치는데 정신을 잃으면 또 물을 퍼붓고 반복을 하는 것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니 단단한 죽창이 수없이 부러진 것이 있어 보였다. 온몸이 쓰리고 아팠다. 일어나라고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부축해 주어서 겨우 일어났다. 이놈들 이발소에 가서 삭발하고 영창에 집어넣으라고 했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기간병이 인솔해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고 영창에 들어갔다. 영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공장의 창고인데 6평 정도 될까 세 칸으로 칸막이가 되어있다. 맨 왼쪽은 우리가 입고 와 벗어놓은 사복을 쌓아놓은 곳이고 가운데칸은 대소변을 보는 곳이고 맨 오른쪽이 영창이다. 가마니를 뜯어 바닥을 깔았고 마치 돼지우리 같다. 습기가 차 견디기 어려웠다. 그 위에 누웠으니 옆칸 변소에서 냄새는 지독하고 옷 쌓여있는 곳에서는 땀에 젖은 옷을 그대로 쌓아놓았기에 곰팡이냄새 정말 견디기 어렵다. 거기에다 가마니 속에서 벼룩이 들끓어 깨무는데 그렇다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고 이곳이 지옥인가 싶었다. 서로 부축해서 일어서기도 하고 용변을 보곤 했다. 우리보다 먼저 영창살이 한 사람들이 있었던지 변소 간에 대변이 깔려있어 발을 디딜 데가 없을 정도다. 몸도 가누지 못하니 용변보기가 여간 곤욕스럽지가 않았다. 밥은 주먹밥을 가져다주는데 먹지도 못했다. 한번 누우면 혼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상배는 나보다 덜한 것 같았다. 나를 일으켜 주기도 하고 눕혀주기도 하곤 해주었다. 영창 안에 들어가 있으니 날짜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다. 고통스러워서였을까. 한주일 정도 지났던가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가 있어 혼자서 일어났다 누웠다 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