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각 Oct 22. 2021

딸바보가 아니라
그냥 바보였어

가족 사이에도 필요한 거리두기

 어쩜 이리 귀엽게 생겼을까. 커다란 얼굴, 톡 튀어나온 이마, 납작한 코, 탱탱한 볼, 보들보들 피부까지. 몸은 또 어떤가. 완벽한 4등신을 빈틈없이 꽉 채운 살들이 마치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처럼 빵빵했다. 짧은 몸으로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면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벅차올랐다. 한동안 이 조그만 요정과 온종일 지낼 수 있다니. 육아 휴직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이도 엄마와 교대한 아빠를 반겼다. 오랜 육아로 기력이 달려 자신의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주지 못하는 엄마보다는 서툴러도 활력 있는 아빠가 반가웠을 것이다. 번쩍 들어 목마도 태우고 재밌는 TV도 보여주고 공놀이도 함께 하는 아빠를 아이는 아주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나는 아빠가 좋아요.

아빠도 우리 딸 사랑해.


살갑게 인사를 건네며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친구 같은 아빠라는 목표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저쪽 가서 게임이나 해!


반찬이 마음에 안 들었나 틀어준 TV가 재미가 없었나. 아이는 아침부터 짜증을 냈다. 아빠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혼을 내려다 맘을 접었다. 벌써 몇 주째 반복된 일상인데 혼내봤자 뭐가 달라질까. 아니, 혼낼 의욕조차 사라진 상태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했다. 못 이긴 척 방에 들어가 게임기를 켰다. 이제 집중 좀 하려나 싶을 때 무료함을 못 버틴 아이가 심심했는지 다시 나오라고 불렀다. 들어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또 나오라는 건 뭐람. 예전 같으면 웃으며 달려갔을 텐데 지금은 찌푸린 미간을 감추지 않았다. 


코로나 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어린이집 휴원 공고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2주만 버티면 될 줄 알았는데 계속 연장되더니 어느덧 몇 달이 흘렀다. 이미 지난 1년간 충분히 오랫동안 붙어있던 부녀지간이었다. 볼만큼 봤고 놀만큼 놀고 싸울 만큼 싸운 사이. 질릴 대로 질려버린 이 영겁의 시간을 끊어준 것은 대기 명단에 오른 지 몇 년 만에 등원하라고 연락을 준 어린이집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자유시간을 가지며 숨통 좀 틔나 싶었는데 얼마나 다녔다고 휴원이라니. 야속한 코로나 19 때문에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함께한 시간이 누적될수록 가족의 관계는 화목해진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상을 배반하는 법이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아이를 향한 애정과 관심은 줄었고 짜증과 지루함은 늘었다. 귀한 시간을 온통 예측 불가능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바치다 보면 아빠인가 비서인가 헷갈렸다. 그런 노력을 몰라주고 칭얼거리는 녀석을 볼 때면 자식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대가족이 모여 살던 예전 같으면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 사촌들이 조금씩 시간을 쪼개 아이를 돌봤을 것이다. 그동안 부모는 힘을 충전하고 돌아와 남은 시간을 책임지면 됐다. 교대할 인원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아이를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핵가족인 요즘은 이런 육아를 할 수 없다.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명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아이에게 할애해야 했고 그 시간의 대부분은 혹독한 감정노동으로 채워졌다.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아이와의 불화를 해소한 것은 예상치 못했던 어린이집 원장님의 전화였다.


아버님, 이제 어린이집 보내셔도 될 것 같아요. 너무 오래 안 나오면 적응을 못 할 수 있어요.


무슨 전화냐고 묻는 아이에게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딸은 자기도 얼른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긴 너도 좁은 집에서 맨날 보는 아빠와 같은 방식으로 노는데 지겨웠겠지. 어린이집 가겠다고 들뜬 아이 옆에서 나 역시 마음이 설렜다. 참 오랜만에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며 쉴 수 있겠구나, 하고.


서랍 속에 고이 모셔 뒀던 외출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멘 아이의 뒷모습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줄이야. '재밌게 놀고 오세요'하고 말했더니 '아빠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데 눈물이 울컥 나올 뻔했다. 드디어 떼어 놓을 수 있어서.




딸이 '아빠 껌딱지'이길 바랐던 딸바보 아빠는 알고 보니 그냥 바보였다. 아무리 가족이고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서로가 숨 돌릴 시간은 있어야 하고 딴짓할 공간은 남겨둬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데 딸이 손을 꼭 잡더니 얘기한다.


아빠, 오늘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정말? 아빠도 우리 딸 생각 엄청 엄청 많이 했지.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아이가 다리를 감싸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머리를 쓰다듬고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는 조금씩만 보자, 라는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속으로 삼킨 채.

이전 09화 얻어 키운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