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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Oct 17. 2021

공동육아가 최고의 육아 템

겪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

둘째 출산을 앞둔 직장 선배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를 낳기 전 남편이 알아두면 좋은 게 있을까요. 


아직 아빠라는 단어조차 낯간지러웠던 신혼 초, 궁금하긴 했지만 절박하지 않았던 질문이 무심코 나왔다.


아내가 출산하면 반년 정도 휴직하고 애를 함께 키우는 건 어때요. 

그때는 엄마도 아무것도 모를 때라 남편이 정말 필요하거든. 


한 번도 생각 못한 신선한 대답이었다. 아내 역시 흥미로운 생각 같다고 했다. 

하지만 모아둔 돈도 물려받은 재산도 많지 않은 우리는 그저 좋은 아이디어라고만 여기다 금세 잊었다.




기억에서 지워졌던 '공동육아'가 우리 삶에 다시 등장한 건 몇 년 후, 아내의 복직일이 내 휴직 시작 두 달 뒤로 정해지면서였다. 자신 있는 척했지만 사실은 겁이 났던 초보 아빠로선 천금 같은 기회였다. 급할 필요 없이 차근차근 필요한 육아 지식과 기술을 배워나갈 수 있을 터였다. 


아내 역시 들뜬 기분인 건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어른의 대화'가 고팠던 아내는 아침부터 할 말이 많았다. 지금 와서 딱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는 걸 보니 시시껄렁한 농담과 가벼운 신변잡기 정도가 대부분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라디오 대고 혼잣말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며 웃음 짓는 아내의 얼굴에 비로소 우울감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한결 가벼워진 집안 분위기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할 일들을 배워나갔다. 설거지, 기저귀 갈기, 동화책 읽어주기 등. 휴직 전에도 육아시간을 사용해 집안일과 육아에 참여했기에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아내에게 조금 양해를 구하면 늦잠을 자고, 밀린 책을 읽고, 게임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쉽다니, 육아휴직은 축복이구나. 슬슬 다른 욕심이 날 지경이었다. 

다이어리를 꺼내 신년 계획을 세웠다. 

글을 쓰자. 몸무게를 10kg 정도 감량해 볼까. 한낮에 카페에서 멍 때리는 것도 좋겠는데. 


아내를 위한답시고 휴직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치유되던 시간이었다.




브로콜리 두부무침은 냉장고에 뒀어. 안 먹으면 계란찜 만들어 주고. 급한 일 생기면 연락해. 


칼바람이 잦아들고 봄이 올 때쯤 아내는 목 늘어진 티셔츠 대신 제법 빳빳한 셔츠를 입고 숄더백을 두른 채 이른 출근길에 나섰다. 아내를 배웅하고 문을 닫자 집은 무서울 정도로 적막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엄마, 엄마 거리며 낑낑거리는 아이의 잠투정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 집에 나와 아이 단 둘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토닥토닥 다독이며 겨우 다시 잠드나 싶던 아이는 이내 오줌이 가득 차 불편한 기저귀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며 일어났다. 

곧이어 칭얼거림과 서툰 단어 몇 개를 섞어가며 기저귀를 치워달라, 맘마를 달라, 놀아달라고 명령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속 타는 맘은 몰라주고 아직 엄마만큼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아빠가 미덥지 않은 아이는 야속하게도 엄마만 찾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아이는 낮잠에 들고, 나는 소파에 늘어진 채 퇴근한 아내를 맞았다. 

오늘 어땠냐는 질문으로 서로의 전쟁 같던 하루를 복기하며.




툭하면 '해봐서 안다'라고 말하는 꼰대들은 사절이나, '해봐야 알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집에서, 아내는 회사에서 역할을 바꾸고 나서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지난날의 서로를 헤아리게 됐다. 가끔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아내는 회사일, 나는 집안일이 더 어렵지 않냐며 엄살을 떨다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두 달 내내 붙어있던 전우애(?)로 위기를 극복했다. 


각자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알아서 상대방을 배려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퇴근 후 미리 해두면 다음 날 편해지는 일들을 찾아서 했고 나는 출근한 아내에게 전화로 귀찮게 하는 걸 자제하며 퇴근 전까지의 집안일은 최대한 내 손에서 끝내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게 집안이 안정을 찾아가며 아내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총기를 되찾아 주변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나는 퇴근한 엄마를 두고도 아빠랑 놀 거라며 다리 한쪽에 찰싹 붙은 아이를 달래 가며 제법 능숙하게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올 줄 몰랐던 공동육아의 기회는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아내의 재택근무가 결정되면서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물론 예전과 달리 아내는 집에 있을 뿐이지 엄연히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아내 도움 없이 어지간한 집안일과 육아는 해낼 수 있는 경력자가 되어 큰 도움은 필요 없었지만 다시 한 공간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뻤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가 온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인간으로서 최소한 해야 하는 씻을 권리와 먹을 권리 그리고 쌀 권리가 포함된다. 곁눈질로 아이를 끊임없이 살피며 번갯불에 콩 볶듯 치러내야(?)했던 일들을 그저 옆에서 잠시 지켜봐 줄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훨씬 느긋하고 차분하게 할 수 있었다. 


첫 공동육아 시절, 부족한 능력으로 딱히 하는 일 없어 보였던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고마워하던 아내의 의아한 반응이 이제야 이해가 됐고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게 그 어떤 육아법이나 육아 템보다 도움이 된다.

 

두 차례의 공동육아 끝에 우리 부부가 내린 결론이다. 늘어난 시간은 줄어든 수입을 상쇄할 만큼 가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함께 휴직하고 아이를 키워보는 건 어때? 


어느새 자연스레 아이를 계획하는 지인들에게 권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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