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에 수확해서 남은 무로 처음으로 동치미를 담갔다.
이제 남은 무는 2개 반 정도. 지난가을, 무 100여 개 가까이 수확하여 일부는 김장할 때 사용하고, 일부는 이웃에 나눠주었는데도 많이 남았다. 100여 개라고 하지만 한자리에 무 씨 두어 개 이상을 뿌린 경우, 일부를 솎아서 70~80여 개였을 수도 있다. 솎아낸 무는 김치를 담갔는데, 무와 무청이 연해서 어찌나 맛있던지, 다음에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더랬다. 다 먹을 때까지 맛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워댔다.
남은 무를 컨테이너 농막에 보관했는데, 날씨가 추워지자 얼기 시작했다. 갈무리를 잘했다고 했는데도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자 견디지 못하고 얼었던 것이다. 멀쩡한 것만 추려서 집으로 가져와 베란다에 보관했다. 아주버님 네랑 나눴는데도 스무 개가 훨씬 넘어서, 열몇 개는 장아찌를 담갔다.
무장아찌를 담그면서 시골에서 농업인으로 사는 걸 여자들이 이래서 싫어하는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할 일이 너무 많거든. 그렇다고 처음 느꼈다는 건 아니고. 철마다 농장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야채들을 처리하는 일은 늘 내 몫이므로 그때마다 느꼈지만 열 개가 넘는 무를 씻고 잘라 설탕을 잔뜩 뿌리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느꼈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농사를 짓는 한, 툭하면 되풀이해서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여름 내내 밭에서 수확한 물러터진 토마토를 버리기가 아까워서 토마토 주스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날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달리는 고추들을 갈무리해서 고추 장아찌를 담그면서 생각했다. 그렇다고 시골살이가 나쁘기만 하다는 건 아니다. 손이 많이 가고 할 일이 많지만, 무농약으로 재배한 싱싱한 야채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니까. 그런 일이 하기 싫어질 때는... 그냥 포기하고 만다. 버린다. 어쩌겠나.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무장아찌를 담아 열 개 이상의 무를 처치했지만, 여전히 무가 10개 이상이 남아 어떻게 처치(?)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무생채를 만들었고, 무나물을 만들었고, 깍두기를 담갔다. 그리고 소망이네서 가을에 얻어둔 배추 두 통과 무 2개로 형님이랑 물김치를 담기도 했다. 대형 김치통 3개가 나오더만. 그러고 나니 처치 곤란이었던 무가 확 줄었다.
남은 무 가운데 가장 큰 녀석 하나로 동치미를 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쪽파를 사 왔다. 물김치나 동치미에는 쪽파가 들어가야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 생강, 마늘, 청양고추 등도 들어가면 좋다.
생강은 지난가을에 밭에서 수확한 게 있다. 작년에 시험삼아 처음 생강을 심었는데, 수확량은 보잘것없었다. 잘 자라지 않아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걸 아주버님이 일일이 깠다. 버리기 아깝잖아, 무농약인데. 그걸 형님이 편으로 썰어서 세 봉지를 가져다 주었다. 냉동실에 넣었다가 김장할 때 일부는 사용하고, 남은 건 겨우내 생강차를 끓여먹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생강청에 생강을 같이 넣고 팔팔 끓이면 알싸한 맛이 일품인 생강차가 된다. 남편이 아주 좋아한다. 감기 예방에 좋고, 맛도 있으니.
청양고추와 홍고추는 지난가을에 수확해서 냉동실에 넣어둔 게 있다. 그걸 넣어서 동치미를 담갔다. 맛은 장담할 수 없다. 익어봐야 알겠지만, 형님과 담근 물김치가 맛있으니 맛있을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