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가는 것
가끔씩 조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걱정하는 글이나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글을 볼 때가 있다. 어떤 불순물 없이 깨끗하고 투명한 애정과 애틋함으로 할머니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손주들이 부럽다. 온전한 사랑으로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손주들이 부럽다. 나는 절대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오랜 시간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했던 나는 결코 나의 조부모님을 죄책감 없이 떠나보내고 그리워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는 멀수록 단순하고 아름답게 기억되지만 가까울수록 온갖 모순과 상처로 얼룩져 오래 흔적을 남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2n 년의 세월이 내게 남긴 것을 생각해 본다. 가물가물하게 기억나는 조부모님과의 짧은 추억들, 엄마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기울어진 가족 시스템에 대한 인지. 노년의 설움과 미래의 나를 엿볼 수 있는 삶의 예습. 그들이 내게 준 것들 사이에는 아련하고 뭉클한 사랑의 추억만이 아닌 저리고 아픈 기억들이 가득하다. 엄마와 할머니가 모종의 이유로 심하게 싸웠던 어느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끼어들어 할머니를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쳤다. 엄마에게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에게 너무 화가 나 다른 말 하나 없이 "할머니!" 딱 한마디를 내지르며 할머니를 노려보았다. 성인이 된 나는 할머니보다 키가 컸다. 나보다 살짝 낮은 시선으로 부딪치던 눈과 당황한 듯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순식간에 수그러들어 방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할머니의 감정만 사그라든 게 아니라 할머니 자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푸시쉬 작아지는 것 같았다.
만약 우리가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볼꼴 못볼꼴을 다 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온전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두 분이 세상을 떠난다고 상상할 때 오롯이 슬퍼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렵고 그래서 두 분께 살갑게 대하지 못한다. 친밀하지 않아 어색해서 불편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고 건조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는 내 일상에 끈적하고 촘촘하게 얽혀있다. 그들이 내게 준 복잡하고 무거운 기억과 감정들은 이미 내 인생의 근육이 되어 내가 세상을 감각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평생 이따금씩 근육통을 남기며 내가 세상을 살아내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라는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알고 있어서 그들이 더 밉고, 미워할수록 죄송해서 그들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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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예쁜 말을 찾아 헤매고선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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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희경, <그렇게 살아가는 것>
스무 살 이후의 나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일상에서 많은 시간은 "상처 같은 말을 내뱉"는 시간이었고,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예쁜 말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이 글을 쓰는 지금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기분이다. 예쁜 말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라기에는 예쁘지 않은 감정이 가득한 글이었지만 나에게 이 글은 조부모님을 향하는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감정들을 계속 직시하고 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었다. 미운 조부모님을 외면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었다. 아마 나는 남은 우리의 시간을 계속 이렇게 보낼 것이다.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오며 점점 정신적으로는 굳어지고 신체적으로는 약해지는 조부모님이 바뀔 리 없고 나도 내가 보고 판단한 것들을 (지금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나는 조부모님을 미워하고 안쓰러워하고 죄스러워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모순적이고 괴로운 이 감정의 가장 밑바닥에는 그들에 대한 애정이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미워해도 계속 바라보게 되는 이 이상한 마음이 사랑의 흔적이라는 것을.
이제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