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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b Oct 24. 2024

둘이 만나 그냥 둘로 존재하는 관계 (2)

다시 '우리'의 영역을 찾아서

부모가 된 우리는 나름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중시했던 부부가 육아의 세계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각자의 시간은 확보되지 않은 채 육아도 일도 집안일도 해내야 했으니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런데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접시에 식사를 대접하듯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주었다. 자유시간을 원했던 나는 남편에게 자유시간을 준다며 아이와 친정으로 도피했고, 집밥을 원했던 남편은 나에게 저녁밥을 해주었다. 상대방이 노력은 하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으니 둘 다 본인의 불만과 욕구를 내비치지 못했다. 나는 아빠로서 육아참여를 원했지만 남편이 집안일을 한다며 위안 삼았고, 남편도 아내의 집안일을 원했지만 대신 자유시간을 얻었으니 집안일을 해치웠다.


육아와 집안일이라는 각자의 과제를 끝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잠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졌고, 야행성인 남편은 아이와 내가 잠든 후 티브이를 보며 본인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부부가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고 주말에도 서로 활동하는 시간이 달랐다. 주말이면 아이는 일어났는데도 자고 있는 남편을 보며 나는 화가 났고, 주말인데 늦잠도 못 자게 쿵쾅대는 와이프에게 남편도 불만이 쌓였을 것이다. 



내 시간을 더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을 관리해 보려고 노력하던 중 실제로 내가 보내는 시간을 색깔 블럭으로 표현하는 도구를 만났다. 개인의 시간, 회사에서의 시간, 아이와의 시간, 가족시간 등등.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의 비중은 많았고, 가족시간이나 남편과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남편에게도 자유를 준다며 내가 친정으로 떠날 때 외롭다고 하던 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눈으로 확인하니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그동안의 불평과는 다르게 개인의 시간보다 가족시간, 부부시간이 현저히 적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간의 상황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며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개인시간보다 '우리'의 시간을 갖는 것이구나.






새벽의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우리'의 시간을 위해 금요일 밤은 남편과 보내기로 했다. TV 같이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니 아이를 재우고 남편의 공간으로 갔다. 반가운 듯 남편은 야식을 주문한다. 우리끼리 어른 음식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시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동안 나와 아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 준 남편을 위해 요리를 못하는 나지만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 아침엔 집밥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별로 없어서 매번 같은 메뉴는 지겨울 테니 온라인 마켓에서 밀키트로 맛집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을 주문했다. 밀키트이긴 해도 집에서 조리하니 배달과는 다른 느낌이고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남편의 눈에도 보였으리라.


내가 변하니 남편도 변했다.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신난 내가 일정을 너무 많이 잡아 부담스러워도 했으나 이제는 그도 조심스럽게 표현을 했다. 서운하면서도 그의 의견엔 일리가 있으니 받아들였다.


아이도 조금 크니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엄마, 나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어. 집에서 엄마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


꼭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아빠와 다른 공간에 있더라도(심지어 자고 있더라도) 함께 있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니 본인의 의사를 표현해 주었고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이는 아빠라는 존재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는데 내가 그동안 잘못생각했구나 반성했다. 교대로 육아하며 개인시간도 보내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의 일이라는 건 회사일과는 다르구나. 그래서 다른 부부들이 힘들고 피곤하더라도 주말을 함께 보내는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며 나의 그릇도 '우리'의 영역도 조금은 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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