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에 대화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상대방이 예민하게 반응해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내년에 아이 초등학교입학을시키고 9월에 복직을 앞둔 상황이다. 복직하기전1학기 동안 학원 세팅을 하고 아이 혼자 집으로 오는 연습을 시키려고 한다는 말에 남편이언성을 높였다.
"아이 혼자 집에 걸어오게 하는 게 말이 돼? 나는 불안해서 그건 용납할 수가 없어. 그리고 휴직기간 동안은 애랑 시간을 더 보내야지 왜 바로 학원 뺑뺑이 돌릴 생각을 해"
"아니, 나도 바로 그러겠다는 게 아니고 애가 혼자 할 수 있는지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고~"
아이에 관한 건 다 나에게 위임하고 내 의견을 지지해 주는 편이라 예상치 못한 남편의 반응에 나도 꼬리를 내렸지만 밤새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2학기땐 복직을 해야 하고 학원도 내가 다 알아볼 텐데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지. 1학년까지는 교대로 육아휴직을 쓴다고 해도 2학년이 되면 결국 학원의 도움을 받거나 아이 혼자 다녀야 할 텐데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날 오랜만에 만난아이 친구엄마와 남편과의 일을 이야기하니 본인도 우리 남편의 입장과 같다는 의견이었다. 아이 혼자 집에 보내는 건 불안해서 절대 안 되고, 자기는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었기때문에 내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데리러 오고 집에서 반겨주는 걸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제야 그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남편은 어린 시절 집 문이 잠겨있어서 문 앞에서 기다린 기억이 많다고 했다.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문이 잠겨있어서 운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 기억 때문에 우리 아이에게는 다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거구나. 나는 부모님께서 항상 집에 계시는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엄마가 없다는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시골이라 학교가 멀리 있어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게 당연했기에 아이 혼자 단지 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자기 부모와 비슷한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받으려고 한다고 들었다. 남편은 나에게 엄마의 존재를 느끼고 싶어 하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구나 깨달았다.나 역시도 남편에게서 우리 아빠의 모습을 보곤 한다. 가족을 1순위로 여기며사신 아빠는 초중고 12년 내내 등교를 시켜주셨고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하셨다. 독단적이고 통제적인 모습도 있었지만, 가족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우리 가족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 아빠의 단점이라면 술을 좋아하시고 쉬는 날은 종일 누워서 TV를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아빠처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자를 찾았으면서도가끔 욱하는 모습과누워서 TV를 보는 모습이 아빠와 오버랩될 때는 '왜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이 고생이야!'라며 화가 올라오면서도, 남편이 청소하고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아차, 남편은 우리 아빠랑은 다른 사람이야.. 아버님께 청소하나는 참 잘 배워 온 신랑이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요즘 남편에게 유난히 거슬리는 부분이 보인다면 과거 내 부모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길 바란다. 어린 시절의 내가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은 아닌지 살펴보길 바란다. 남편은 우리 아빠가 아니다.나 또한 우리 엄마와는 다르기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와의 결혼생활이 나를 치유해 줄 수도 있다.
결혼이란 남녀 둘이 하는 게 아니고 두 가족이 만나는 일이다. 나와 다른 가정의 문화를 깊이 경험해 보는 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닥 걸레질과 분리수거를 하시는 아버님을 보며 모든 집안일은 혼자 다 해내느라 분주한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고, 감정표현에 서툰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저렇게 표현을 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아 적용하다 보면 우리는 부모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성장해서 큰 그릇이 되면 남편도 부모의 단점도 다 품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