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전하는 말
이것으로 "숨은 얕아졌지만 담담합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새벽에 비몽사몽한 채 글을 쓰다가 이 브런치북을 선택하지 않고 발행했던 글들도 몇 편 있어 아쉽네요.
비록 부족했지만, 글을 쓰며 저 자신을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시고 즐독 해주신 여러 작가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환한 빛 아래서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쉰다. 예전처럼 편히 들이마시지는 못하지만, 이 작은 들숨 하나에도 빛과 공기와 아직 남은 시간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낀다. 암 진단은 내게 시간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중'이나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현재만이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늦은 밤, 창가에 기대어 바라본 미약한 별빛 속에서 나는 아직도 내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꾼다. 글쓰기라는 새로운 길을 시작한 나는, 나의 고통마저도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나의 고통을, 두려움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작은 희망들을 문장으로 옮긴다. 이 문장들 속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기쁨과 희열을 발견한다. 어쩌면 암은 내게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고, 영혼을 정화하는 선택을 강요한 축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건강했을 때 나는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았다. 매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며 다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갔다. 그러다 숨이 벅차오를 때가 되어서야 숨을 골랐다.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함을 안다. 한 모금의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조차 의식해야 하는 지금, 역설적이게도 나는 더 깊이 살고 있음을 느낀다. 커피 한 잔의 온기, 베개에 스며든 햇살의 따스함, 나를 만나러 온 친구의 따뜻한 눈빛과 손길—이 모든 것들이 이전과는 다른 무게로 내게 다가온다.
고통이라는 단어는 한때 나를 짓누르는 가혹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길고 험난한 여정을 지나온 지금, 고통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압축적으로 알려준 스승이었음을 고백한다. 처음 암 수술과 함께 찾아온 고통은 잔인했다. 폐 속으로 드나드는 호흡 하나하나가 전처럼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숨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얕고 가쁜 숨일지라도, 그 안에는 깊은 성찰과 살고자 하는 뜨거운 실존의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 고통을 통과하며 나는 삶의 본질에 가까이 갔다. 건강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픈 몸으로 겨우 걷는 복도에서, 숨이 차오르는 계단에서, 발걸음 하나하나가 기적임을 배웠다. 숨 쉴 때마다 찾아오는 통증 속에서, 고통마저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깨달은 밀도다.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얼마나 온전히 살아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암이 당신에게 무엇을 앗아갔느냐고. 나는 대답한다.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을 주었다고. 암은 내게 현재라는 선물을 주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길을 잃던 나를,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왔다. 창밖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 그 떨림을—이 모든 찰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더 이상 깊게 숨 쉴 수 없는 이 폐로, 나는 역설적이게도 삶을 더 깊이 들이마시고 있다. 우리의 호흡이 얕아졌다고 해서 우리의 삶까지 얕아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가장 작은 숨결 속에 더 커진 우주가 담길 수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호흡의 양은 줄었을지 몰라도, 삶의 깊이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더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닌 존재를 위해 희생했던 과거의 나에게, 이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쉰다. 하지만 이 얕은 숨 하나하나가 모여 이 문장이 되고, 이 문장들이 모여 내 삶의 이야기가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으로 충만해진다. 가장 하고 싶은 글을 써 내려간다.
삶은 길이가 아니라 밀도로 측정된다. 그리고 그 밀도는, 우리가 얼마나 깊이 숨 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지금을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나를 기쁘게 그리고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하라고.
그림이든 글이든 세상 사람과의 소통이든, 무엇이든 좋다.
그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함께 건강하게 만들라고.
잠깐의 명상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내 호흡을 사랑하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라고 전하고 싶다.
당신들의 헌신과 사랑이 얼마나 큰 빛인지, 우리는 안다고.
때로는 당신들도 쉬어가도 괜찮다고.
완벽한 보호자가 되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당신들이 지치지 않고 건강해야,
우리도 더 평온하게 이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고.
우리를 돌보는 것만큼, 당신 자신도 돌보아 달라고.
그것이 우리가 당신들에게 바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이제 수술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1년 뒤, 5년 뒤, 그리고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다. 그 어느 시간에 다시 암이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두렵지 않다. 이미 나는 고통 속에서 삶의 밀도를 배웠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지금처럼 의연하게, 그리고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계속 얕은 숨으로 깊게 살아가며, 이 여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세상에 글로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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