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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Oct 17. 2021

사막의 전원을 켜라


3학기가 되자 한국에 대한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정확히는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점이 달라져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동시에  기대가  막연하다는 것도 알았다. 검은 땅으로의 여정을 '도피'라고 스스로 명명한 것부터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던가. 발이 푹푹 빠져서 제대로 걷기 조차도 힘든  곳의 모래땅을 이제 발이  빠지지 않을 만큼 요령껏 걸을  있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이들이 말하는 대로 느긋하고 여유로운 정신적 행복과 삶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  것일까? 하지만 절대적 빈곤과 싸우는 이들에게서 정신적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철저히 이방인의 판타지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단지 그것 하나만을 위해 이 먼 곳까지 왔던가.


그런 생각이 오갈 때 3학기가 시작되었고 그 덕분에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부장 발리끼가 손수 인쇄해준 교육청 공문을 읽어보니 전국 학생 컴퓨터 경진대회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런 대회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실습할 컴퓨터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그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차마 하기 힘들었다. 학교엔 컴퓨터도 없는데 컴퓨터 경진대회의 세부 종목은 참 프로페셔널했다. 웹 디자인, 프로그래밍 같은 엄두도 안 나는 분야를 보며 몸서리를 치다가 ‘소셜 미디어’를 발견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소셜 미디어 부문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발리끼는 씩 웃더니 그 자리에서 대회에 나갈 두 학생을 바로 지명했다. 6C반에서 똑똑하기로 정평이 난 두 여학생, 떼뽀와 마틀라였다.


떼뽀와 마틀라는 무엇때문에 뽑혀 온 것인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소녀들에게 우리가 컴퓨터 경진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는 것과 소셜 미디어 부문에 참가할 것을 알렸다. 소셜 미디어가 무엇인지 아느냐는 내 질문에 마틀라는 모른다고 말했고, 떼뽀는 들어는 봤으나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 이제부터 같이 배워보자는 나의 말에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당혹스러운 눈길을 서로에게 보냈다.



"미스킴, 저희 집엔 컴퓨터가 없는데요."


"저희 집도 대학생 오빠만 노트북이 있어요. 오빠는 같이 안 살아요."



떼뽀와 마틀라의 말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가난이라는 이미지에 부합하지도 않았고, 정신적 여유로움이나 행복함이라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말도 아니었다. 이는 내가 이 곳 학생들과 함께 아주 실존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환경적 한계 때문에 배움의 기회조차도 갖지 못하고 있음을 그들의 입으로 직접 호소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이 곳의 여건이 열악한 것도 맞고, 그럼에도 이 곳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는 행복하게 사는 것도 맞으나, 이 사회에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황무지에서 처음으로 전원을 켜기 위해 안간힘쓰는 이들이.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는 학교에서 내가 소셜 미디어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란 하나밖에 없었다. 떼뽀와 마틀라를 다시 만나기로 한 날, 출근 가방 안에 내 노트북과 우리집 와이파이 공유기가 담겼다.


소녀들에게 소셜 미디어의 개념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먼저 켠 것은 인스타그램이었다. 떼뽀와 마틀라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검색해  그들의 피드를 구경시켜주고, 팔로우 기능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사진, 영상, 글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여 굳이 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고, 어디서나 인터넷을 쓸 수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 자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거야.”


그 말을 듣는 두 소녀의 눈은 반질반질한 피부처럼 빛났지만 그들은 일상에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정말 그런 세상이 올 지 의구심을 가지는 듯 했다. 나는 소녀들에게 다른 사회가 그랬듯 이 곳도 틀림없이 차차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덧붙였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다고 가정하고 발표를 하는 거야. 이걸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영특한 두 소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그들이 인스타그램을 가지고 한동안 놀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버튼을 눌러보면서 여러 기능을 사용해보고 질문을 먼저 하기도 했다. 경진대회는 ‘교육적 혁신’이 주제였기에 이제 다음으로는 일상적 용도의 소셜 미디어 말고 교육적 활용에 적합한 소셜 미디어를 실습해볼 차례가 왔다. 일상용 소셜 미디어는 단지 그들에게 그것을 가지고 놀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교실에서 활용하기 위해 사용된 소셜 미디어는 약간의 설명이 더 필요했다. 이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도 하나 없었지만 단 한번의 인스타그램 체험만으로도 이미 소셜 미디어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자체적으로 기능을 시도해보더니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대강 알아차렸다.


그 후 함께 발표 내용을 정하고 정리했으며 발표 연습을 시작했다. 전국 각 지에서 학교 대표들이 모인다는 전국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새로운 것을 알고 즐기기 시작하는 떼뽀와 마틀라만으로도 맨 땅에 헤딩은 가치가 있었다.


전국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떼뽀(좌)와 마틀라(우)


소녀들은 무려 대상을 받고 말았는데, 두 학생이 이미 훌륭한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데다 타마포가 발표 연습까지 단단히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떼뽀와 마틀라를 불러 물으니, 발표 후에 두 학생이 지원 분야를 실제로 활용해 보이는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3학기의 첫 교직원 회의에서 발리끼는 영예의 대상 수상을 첫 안건으로 발표하고, 내게 개인적으로 찾아와 덕분에 이렇게 큰 성과를 올렸다며 따로 악수를 청했다. 얼마 안 있어 발리끼는 전할 말이 있다며 나를 다시 찾아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번 교육청 마스터가 간지에서 전국 컴퓨터 경진대회 우승을 했다고 아주 만족스러워 했는데, 누가 기획한 거냐고 묻더라고."


처음엔 그 말을 칭찬 정도로만 생각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모두들 컴퓨터 교육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컴퓨터가 없는 데다 컴퓨터 수업이 정규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청은 간지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사실에 너무 고무가 되었는지 그런 희망사항을 우리 학교의 교장에게도 전달했다. 얼마 후엔 교장이 나를 불러 3학기에 컴퓨터 수업을 맡아줄 것을 직접 부탁했다.


수학보다 더욱 막막할 컴퓨터 수업을 시작하자니 고민이 되었다. 내가 가진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의 얼굴을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들은 스마트 기기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마는데서 그쳐야 하는가? 막상 해보면 별 것도 아니라는 것을 떼뽀와 마틀라가 이미 보여주었다. 내가 많은 것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은 기회를 제공한 정도이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열의로 차 있었기에 예상치 못한 결과까지 이룬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컴퓨터 수업을 승낙해 버렸다. 남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시기에 대대적인 맨 땅에 헤딩을 감행하기로 한 내 앞에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놓여 있었으나 이것을 해야만 한다는 믿음만이 나를 이끌었다. 막막한 것과 별개로 인생에 다시 없을 이 한 해를 후회없이 반추하겠다는 열망이 생긴 것이다.






결심의 낭만은 잠시 뿐이고 얼마 안 가 기댈 곳 없는 현실이 닥쳐왔다.


알고보니 학교는 컴퓨터 대신 태블릿 50대 가량을 가지고 있었다. 컴퓨터를 구비시키지 못한 교육부 나름의 차선책이었으나 그마저도 실제로 사용되지 못하고 공간만 크게 차지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태블릿을 충전함에서 꺼내드는 순간부터 첫번째 위기를 맞았다. 모든 계획은 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막상 닥치면 그 때 생각하라는 전 년도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며 이런 것도 태블릿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아해졌다. 무릇 태블릿이라 하면 스마트하고 슬림해서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모빌리티가 생명 아니던가? 학교가 교육부로부터 받았다는 태블릿은 사람을 내리치면 전치 4주 정도는 거뜬해 보일 정도로 무겁고 둔탁했다.


이 벽돌 태블릿은 들면 정말 손목에 무리가 갈 정도로 무거운 데다 전원 버튼은 또 얼마나 굳센지 엄지로 찍어 눌러도 여간해선 꿈쩍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곳에 나를 위한 전용 교실이란 없으므로 이 벽돌 태블릿을 '매 수업시간마다' '매번 다른 반'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반의 평균 인원은 약 40명이다. 이 첫번째 위기 때 사실 내 결정을 아주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하나만 집어 들어도 손목이 나갈 것 같은데, 한 반의 분량인 45개를 매번 이동시켜야 하다니. 하지만 이것이 첫번째 위기인 이유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후의 위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해결이 아주 쉬웠다. 매번 학생들에게 태블릿을 다음 반으로 옮겨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두번째 위기부터는 내가 살던 사회와 이 사회의 환경적 차이로부터 생겨나 첫번째 위기처럼 단순히 물리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었다. 벽돌 태블릿은 학생들의 수고로움을 담보로 어떻게 해결되었다고 치자. 하지만 태블릿의 전원을 처음 켜는 순간 상상도 해보지 못한 두번째 위기를 맞았다. 사실 정보화 교육의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 컴퓨터만 있고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대체 무엇으로 배움이 일어난단 말인가?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태블릿의 클린한 기본 배경화면을 보며 한국에서 스마트 기기를 살 때 기본이라고 생각한 소프트웨어들이 사실은 기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실 이 문제는 소프트웨어를 깔면 그냥 해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그 옛날의 한국처럼 소프트웨어를 정식으로 구매해서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며—태블릿 자체를 가진 사람이 이 곳에 전무했기에 이들은 소프트웨어가 없어서 큰일이라는 나의 고민을 이해하지도 못했다—내가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려고 해도 이 곳엔 인터넷이 없기에 다운로드를 할 수도 없었다(...).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가 안된다면 아주 구식 방법인 usb를 통해 직접 ‘일일히’ 옮기는 수고를 감행해야 한다. 난 여기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소프트웨어를 깔아야 하는 대상은 컴퓨터가 아니라 '태블릿'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컴퓨터용인) 내 usb는 태블릿에 들어가지 않았다….


태블릿에 usb를 끼우려면 태블릿 포트에 맞는 전환 단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동네 사정상 그런 것이 이 마을에 있을리가 없었다. 얼리어답터를 자부하는 타마포에게도 묻고 온 동네 상점을 다 뒤져봤지만 역시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산 데이터로 저 벽돌 45개를 일일히 집으로 가져가서 프로그램을 깔아와야 할까? 어느 세월에!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병원 신세를 질 것 같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보였던 이 방법을 실행하기 전에 나는 우연히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신 선생님이 그 귀한 태블릿용 usb 단자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격한 나머지 나는 다른 사소한 문제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해치워 나갔다. 이를테면 정식 소프트웨어 구매가 안되니 무료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던가, usb 하나로 45개에 해당하는 태블릿에 일일히 파일 복사를 다 하는 번거로움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세번째 위기는 복합적이기에 해결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정보화 시대라는 말이 구닥다리가 된 지 오래다. 우리가 가상 현실과 인공지능을 논하고 있을 동안에도 이 땅은 아직도 ‘정보화 시대’라는 단어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가장 큰 괴리가 발생한다. 한국의 학교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이란 파워포인트 만들기, 문서 편집하기, 동영상 만들기 등의 컴퓨터 ‘활용’ 기능을 포함한다. 그래서 수업을 준비할 때 먼저 상상한 장면도 그런 것들이었다. 보기 좋은 문서를 만들고, 발표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보는, 그런 스마트해보이는 시간 말이다.


한국에선 학생들이 스마트 기기를 아주 어릴 적부터 즐기며 살아가기에 아주 기본적인 조작 방법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적인 조작 방법이란 정말 전원 켜기, 클릭하기와 같이 컴퓨터 활용 기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그것은 방금 말했듯이 스마트 기기를 아주 어릴 적부터 사용하며 살아가기에 가능한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내 학생들은 스마트 기기를 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들이었다. 그 말인 즉슨, 내 수업은 마이크로 워드도, 피피티도 아니요, 단지 ‘전원 버튼’을 누르는 데서 시작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일단 전원을 켰다면 그 후엔 마우스 패드 클릭, 폴더 만들기, 드래그 앤 드롭의 아주 당연해서 교육의 대상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우리는 함께 해나갔다. 첫번째와 두번째 위기를 넘긴 보람이 있다고 느낄만큼 특히 고학년 학생들은 빠른 속도르 그 모든 것을 단숨에 배워나갔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시작 전에는 생각지 못한 다른 애로사항이 생겼다. 한국의 컴퓨터실에서처럼 스크린을 통해 조작 방법을 손쉽게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에 선생님이 일일히 돌아다니면서 설명해주고 보여주어야만 했다. 각 반의 영특한 아이들이 항상 일정 비율 존재하고 그들이 주변 친구에게 알려주기도 하지만, 각 반의 학생 수가 40명에 육박했기 때문에 한가지씩 개인적으로 일일히 가르쳐주다 보면 수업시간 동안 진도를 나가기는 매우 빠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세번째 위기가 끝난다면 이것은 위기 축에도 속하지 못할 것이다. 큰 아이들 말고 진짜 과제는 어린 아이들에게 있었다. 사실 교장은 내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수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의사를 다시 한번 물었다.


"1, 2학년은 수업하기 힘들텐데.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요."


하지만 1-2학년을 수업에서 배제한다면 내가 굳이 이 모든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일의 의미는 퇴색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비록 벽돌 태블릿에 좋은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만져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미래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시작한 일이었다. 단지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배울 이 땅의 미래를 위해서. 이들에겐 다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선진국의 애들이 특별히 똑똑해서 전자기기를 잘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의 대다수에게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마음껏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타블렛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졸업반을 제외한 모든 학년, 모든 반으로 이동되었다.


하지만 어린 친구들과의 배움엔 상상한 그 이상의 장벽이 있었다. 일단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1학년은 단지 ‘전원을 켜고 끄는 것’만 2주 동안 했다. 이들이 전원 온오프의 늪에서 간신히 벗어나 이제 수업다운 수업을 해보려고 할 때였다. 1학년들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말을 담임선생님께서 토착어로 번역을 해주셨다.


"자, 키보드에서 a를 눌러보세요!"

"... ...?”


그러니까 이 어린 친구들은, 아직 알파벳조차도 떼지 못했음을 내가 간과해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이해하든 말든 따라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곳 언어로 말하는 아이들, 이들은 사실상 컴맹일뿐만 아니라 문맹이나 다름없었다. 담임선생님의 통역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a’를 아는 학생은 반에서 몇 없었다. 이들을 데리고 영어로, 그것도 이 땅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들도 능숙하지 못한 컴퓨터를 가르치고 있으니,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현기증이 수업 초반엔 여러번 나타났다. 한여름 사막의 태양 아래에  노출되었을 때의 혼미함이었다.


컴퓨터 응용 능력 말고, 온전히 ‘기본 조작’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목표를 재조정한 나는 학생들과 타자 연습 하나만은 어떻게든 마쳐보겠다는 마음으로 매진했다. 물론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폴더를 찾아 들어가 그 프로그램을 더블 클릭하여 실행하는 것까지만 해도 몇 주가 걸렸다. 알파벳을 잘 몰라 헤매는 1학년 학생들을 위해선 첫 수업 후 약간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다음 수업부터는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과 보통인 학생을 짝지어 2인 1조로 연습을 진행했다.


사전 지식이라곤 하나도 없어 도무지 어찌해야 할 지 감도 안 잡히는 전원 온앤오프의 시기를 넘어가니, 어쨌든 모두가—영어 알파벳을 알든 알지 못하든—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원래 맨 처음이 가장 두렵고 막막한 법이지 한번 그 문턱을 넘어버리면 그 이후는 그 기세를 몰아 계속 나아간다. 떼뽀와 마틀라가 그랬듯이.



이들이 그 첫 문턱을 넘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한 두달 후 보이기 시작했다. 거북이와 같은 속도로 독수리 타자법을 보여 나를 놀래키던 학생들은 이제 다른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고학년의 경우, 엄청난 타자 속도로 긴 문단 전체를 타이핑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우리의 시작이 전원 온오프에서 알파벳 하나씩을 타이핑했던 것임을 감안한다면 정말 눈부신 성장이었다. 내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던 1학년 학생들의 경우도 이젠 더이상 2인 1조로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알파벳을 잘 모르던 보통 수준의 학생도 계속된 연습 끝에 타이핑의 매커니즘을 이해해버린 것이다.


이 이후엔 내가 한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지만 카메라를 몰래 켜서 사진을 찍고 놀던 학생, 기본으로 깔려 있는 카드 게임을 몰래 하던 학생, 그림판에서 그림을 그리던 학생들이 적발되었다. 나는 이들에게 형식적으로 핀잔을 주었지만 속으로는 이들을 격려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언가 사소한 시행착오라도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이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3학기가 끝나갈 즈음이 되자 여전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1학년 학생들조차도 일사불란하게 태블릿을 착착 가져가 전원을 켜고 알파벳을 넘어 단어, 문장으로 연습을 알아서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무언가 되지 않으면 예전엔 눈치를 보며 잠자코 있었지만 이젠 나에게 먼저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자기 자리로 끌고 가기도 했다. 그 쯤 되니 우리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더이상 문젯거리도 될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이 나라의 공교육에서 컴퓨터는 중학교에서나 그것도 아주 가끔씩 실습할 기회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 곳은 한국처럼 모든 학생이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한다.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당수의 학생은 정보화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갈 기회를 평생 아예 갖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이 태블릿의 전원을 켜고 모든 기능을 다 경험해보는 모습을 마지막 학기의 마지막 달에 지켜보며, 나는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큰 변화를 내가 분명히 만들어냈음을 확신했다. 황량한 사막 땅에서 전원을 켜기란 그토록 어려웠지만 전원을 켰기에 이들은 더 많은 시도를 할 것이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데 걸린 시간을 되짚어 보았다. 곧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전원을 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단지 전원을 켜는 것에. 경험할 기회가 있다면 어찌 됐든 더 알게 될테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 믿음은 정말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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