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청력을 아예 잃을 수도 있다고?

by 전민교

첫 책을 낸 지 세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내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결혼·가족 치료사(MFT) 자격에 이어 전문 임상 상담사(PCC) 자격까지, 미국 심리상담사 자격증 두 개를 모두 갖춘 듀얼 라이선스 상담사가 되었고, 입사 3년 만에 회사에서 최연소 슈퍼바이저로 초고속 승진했다. 감사하게도 두둑한 보너스까지 받았다.


책을 통해 만난 독자들 덕분에 라디오, 팟캐스트, 잡지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다. 그 여세를 몰아 부모님을 초대해 추석 연휴에 미국 서부를 횡단하는 2주간의 로드트립도 다녀왔다. 평생 처음 부모님께 효도여행이라는 걸 해드렸다. 그 모든 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반짝였다. 어깨가 으쓱했고, 내가 조금은 ‘성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청력 검사를 더 늦췄는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매년 받아야 했지만, ‘요즘 너무 바빠서’를 핑계로 2년이나 미뤘다. 솔직히 말하자면 병원 가는 게 무서웠다. 평소보다 유난히 소리가 덜 들렸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비인후과, 반갑게 웃는 의사 선생님. 하지만 검사 결과지를 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2년 전보다 청력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특히 오른쪽 귀는 어음 명료도(word recognition)가 60%밖에 안 됩니다. 아직은 왼쪽 귀가 도와주고 있지만, 둘 다 50%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올 거예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청력은 더 떨어지니까요.”


결과지를 보았다.
오른쪽 귀의 청력역치(AC PTA)는 85dB, 왼쪽 귀는 95dB.
지난 검사보다 10dB 이상 더 나빠졌다. 어음 명료도도 확 떨어졌고, 나는 그렇게 공식적으로 ‘고도 난청’ 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보청기로 버티고 있지만, 이마저 안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상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보청기를 착용하면 사회생활이 가능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 위에서 살았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의사는 말했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인공와우 수술을 고려하셔야 해요.”


인공와우란 고도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청각보조장치이다. 두개골을 절개해 내부 전극을 달팽이관(와우)에 직접 삽입하여 소리를 전기 신호로 청신경에 전달해 들을 수 있게 하는, 실상 매우 큰 수술이다.


인공와우.jpg 인공와우 이미지 (출처: 경기메디뉴스)


사실 6–7년 전,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인공와우 수술을 처음으로 권유받았었다.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꽃다운 20대 나이에 머리에 철을 박는 수술이라니. 머리카락으로 가릴 수도 없잖아. 나는 그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줬다.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아직은 보청기로도 들을 수 있으니까, 우선 지켜보자.”
그 말에 위로받으며 나는 버텨왔고, 심리상담사가 되었다.


그런데 30대가 된 지금, 여전히 꽃다운 나이지만 이번엔 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되면, 나는 상담을 못 하게 되는 걸까?’
‘이 일이 불가능해지면, 나는 뭘 하며 살아가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다른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20대의 인공와우는 내 ‘외모’와 관련된 공포였다면,
30대의 인공와우는 나의 ‘정체성과 생존’에 대한 공포였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
매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마음의 퍼즐을 맞춰가는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
그런데 그 일을 가능케 한 ‘듣는 능력’이 아예 사라진다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언젠가 청력을 다 잃는다 해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심리 상담사 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