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와 개인사업자 그 기로에 서서
얼마 전 지인이자 클라이언트이기도 한 그가 카페를 오픈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카페라니 의아할 법도 하지만 그간 그의 행적을 빗대어 보면 충분히 잘 해낼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래저래 카페로 초대받은 나는 축하도 할 겸 카페에 어울릴만한 화분을 사들고 찾아갔다.
‘실장님 실장님’ 하며 나를 있는 힘껏(?) 존중을 표하며 대해주는 클라이언트는 사실 나와 나이가 같다. 그래서 더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여태 만나본 클라이언트 중에 디자이너를 가장 존중해주는 사람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는 당연히 갑이 위에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상대방에게 존중이 몸에 밴 사람.
카페이자 본인의 사무실이기도 하면서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을 위해 넓게 꾸민 공간은 독특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면모가 있었다. 이런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며 지난번 미팅 때 보여주었던 스케치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위해 계속해서 함께 잘해보자는 말을 건네는 클라이언트는 급기야 한 공간을 보여주며 내게 말했다. “실장님 나중에라도 괜찮으시면 이 공간에 그냥 오셔서 사무실로 얼마든지 쓰셔도 됩니다. 필요하신 인테리어도 다 해드릴게요.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라 어안이 벙벙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내심 기분은 좋더라.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원래 저 정도로 선심을 쓰나? 의아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한 채로 그날 나는 식사까지 대접을 받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프리랜서에게 계획이라는 건 사실 제약이 많은 일이다. 일정은 어디까지나 클라이언트에 의해 움직여야 하고, 무언가 스스로 계획해서 성과를 내려면 사실 프리랜서가 아닌 개인사업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당장 다음 달 매출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프리랜서에게 계획이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나는 사업자 등록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프리랜서는 클라이언트와 일을 할 때 클라이언트 쪽에서 ‘외주 인력’으로 구분하고 세금을 일정 부분(3.3%) 알아서 떼기 때문에 내 입장에선 그게 더 편했다. 부수적으로 관리해야 할 일들은 그저 잡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업자가 있어야 더 큰 일들을 따올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혹 기업 간의 계약서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일 년에 한 두건뿐이라, 양해를 구하고 거래처를 통해서 계약을 성사시키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형식상의 사업자가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만들지 않고도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이유는 어쩌면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뭔가 분명한 사업 계획이 있고, 치열하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되어야 정식으로 사업자등록도 하고 사업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들.
여전히 내 머릿속엔 그런 생각들이 존재하지만, 그날 이후 처음으로 그동안 묻어두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업자등록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사실 사업자등록은 필요에 의해서도 손쉽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인데, 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단지 규모의 차이일 뿐, 비록 제약은 있더라도 어쩌면 치열하게 준비하고 일을 대하는 건 프리랜서여도 마찬가지일 텐데.
프리랜서와 개인사업자 그 기로에서 언제나 고민하는 나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위해 미리 조금씩 그려봐야겠다. 이름도, 로고도, 제약 없는 미래에 대한 계획도. 나도 세금을 고민해야 할 날이 오긴 오겠지?(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선, 지금 당장 걸린 일부터 좀 마무리 짓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