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eun Mar 10. 2023

일주일에 네 번 수영장에 가는 사람

아가미가 생길 때까지

'타임시커'라는 사이트가 있다. 특정 웹사이트의 서버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경쟁이 치열한 티켓팅을 할 때, 오픈시간을 정확히 파악하여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다. 특별히 티켓팅에 대한 재주나 열정이 없는 내가 최근 이 사이트를 알게 된 덕에 성공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동네 수영장의 신규 강습 등록이다.


수영강습의 신규 회원 등록은 대개 기존 회원의 재등록 후 잔여석에 대해 접수하기 때문에 항상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달에는 결국 접수에 실패하면서, 한겨울에도 꺾이지 않는 동네 수영인들의 마음과 애초에 자랐던 적 없는 나의 순발력을 다시 확인했다.


작년 여름에 처음 문을 연 동네 수영장은 처음엔 제비 뽑기로 회원을 받았다(접수 희망자가 수업 정원을 항상 넘긴다는 걸 수영인들은 알고 있다). 순발력보다는 운이 조금 더 좋았던 덕에 나도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후 매달 연장을 해오고 있었는데, 어쩌다 한 번 재등록을 놓치는 바람에 치열한 선착순의 세계에 놓이고 말았다. 수영인은 갈수록 늘어가는 듯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수영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질 텐데, 이번 달에도 등록에 실패하면 다른 운동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서버 시간이라는 변수와 타임시커라는 사이트의 존재를.


드디어 3월 신규 회원을 접수하던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접수를 시작하는 오전 7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홈페이지 로그인도 해두었고 클릭 연습도 했다. 원하는 반이 마감되었을 때를 대비해 등록을 원하는 시간대 순위를 정해두었다. 최악의 경우엔 새벽 첫 시간에라도 할까? 사실 거기까지 마음먹지는 못한 채, 따로 띄워둔 창에서는 타임시커가 수영장 홈페이지의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수영장 홈페이지의 시간은 컴퓨터의 시간보다 2초쯤 늦었다. 마침내 7시(7시 2초)가 되었고, 연습했던 대로 부지런히 마우스를 클릭했다. 내 손은 약간 허둥거렸지만, 정확한 시간에 접속한 덕에 다행히 세 번째 지망했던 반에 등록할 수 있었다. 그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랑하고 싶었다. "저, 수영 등록 성공했어요."


수영을 처음 배운 건 초등학생 때. 강습보다는 물에서 게임을 하고 노는 시간이 좋아서 열심히 다녔다. 영법을 배우긴 했던 건지 모르겠다. 엉망이었겠지만 그래도 무척 재밌었다. 강습이 끝나고 나면 일단 200원짜리 떡꼬치를 사 먹고 셔틀버스에 탔다. 다른 기억들은 희미하지만, 코 끝에 남은 락스냄새와 함께 입가에 맴도는 떡꼬치 양념 냄새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귀에 자꾸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결국 수영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 속상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성인이 된 후, 이런저런 운동에 접근해 봤다. 헬스, 테니스, 필라테스, 플라잉요가, 크로스핏, 러닝, 유튜브의 구루들을 따라 홈트레이닝까지… 하지만 근처에 수영장만 있다면, 역시 수영이 최고다.

온몸이 땀에 푹 젖는 느낌도 나쁘지 않지만, 처음부터 물에 담긴 채 시작해서 달아오른 얼굴을 바로 차가운 물에 담가 열기를 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두 발을 딛고 서거나 엉덩이를 깔고 앉는 게 아니라 물에 몸을 띄우고 팔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오직 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좋다. 몸을 쭉 뻗고 팔로 물을 당겨올 때, 온몸으로 속도감이 느껴지는 게 좋다. 운동이 끝나면 바로 샤워실을 거쳐 뽀송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좋다.


주말에는 핀수영을 하러 간다. 두 발을 하나의 커다란 핀에 넣은 다음 하체를 지느러미처럼 써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물안경 끈을 꽉 조이지 않으면 뒤집어 벗겨질 정도의 속도가 난다. 물속에서 스스로의 동력으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작년 가을쯤 친구와 함께 시작했는데, 아침 일찍 한 시간을 달려가서 두 시간 강습을 받고, 인근의 맛있는 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게 코스다. 돌아오는 길은 늘 막혀서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집에 도착하면 서쪽 베란다에서 뒤늦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나른하게 낮잠을 잔다. 수영을 마치고 떡꼬치를 먹던 날들처럼, 즐거운 루틴이다.


언젠가는 어느 친구의 시어머니처럼 대회에도 나가고 싶고, 세상의 아름다운 수영장을 찾아다니는 투어도 다니고 싶다. 투명한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하면 마음은 벌써 평화로워진다.

수영, 오래오래 하고 싶다.




고마워요, 타임시커 https://timecker.com/

(Photo from SportsEngine)


매거진의 이전글 재미없는 장바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