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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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벼락치기. 나는 발등에 불이 붙어야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늘 "미리 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결국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만다.
해야 할 일을 몰라서 미루는 건 아니다.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시작하자는 마음을 먹는 순간이 왠지 부담스럽고 버겁다. 손을 대면 꼭 끝까지 마쳐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모든 과정과 결과가 완벽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다짐을 반복한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해도 괜찮다, 이 영상까지만 보고 시작하자, 딱 정각에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시간을 끌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훅 지나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생각만 했다는 이유로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시작하기 전의 나는 늘 일의 결과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손을 대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다. 차라리 화끈하게 미루고 짧은 시간 집중해서 끝내면 죄책감이라도 덜 느껴질 텐데. 미루면서도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서 머릿속이 복잡하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 부담인 걸까.
이 부담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단순한 귀찮음보다는 큰 기대에 가까운 것 같다. 시작하는 순간, 일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해내야 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간단한 방 청소나 책상 정리 같은 게 대표적인 예시다. 눈에 보이는 짐들만 먼저 정리해도 충분한데 그게 잘 안 된다. 한 번에 끝장을 보려는 성향이 강해서, 모든 방을 뒤엎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어 온다. 뒤엎고 나면 달라지는 분위기를 상상하니, 기대가 안 따라올 수 없다. 이 얄궂은 기대 때문에 대충 끝내도 되는 일임에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마는 것이다.
요즘엔 최대한 기준을 낮춰서 생각한다. 그래야 내게 부담이 덜 와서, 일을 적당히 미루고 시작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하루 만에 모든 걸 완벽하게 바꾸려 하지도 않는다. 하루에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부담을 잘게 쪼개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움직일 수 있는 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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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방법은 찾았다.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한 번에 끝내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구한다. 이런다고 내 부담이 완전히 덜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 크기를 줄이는 건 가능해졌다.
게으름을 낳는 부담이 아닌, 나를 자극하는 건강한 부담으로. 오늘도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만 치우고, 매일 한 줄씩만 써도 만족하려는 연습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