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유행에 민감하고 뒤처지기 싫어했다. 하지만 뭔가 이유 없는 자존심 때문에 이 ‘내가’ 남들과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다는 건 인정하기 싫었고 그래서인지 흐름에 대한 거부도 심했다. 한때 나는 ‘미니멀리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욜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등의 트렌드에 대한 반발 기획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저런 말들이 너무 듣기 싫었으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의 삶은 대략 이런 모습일 거다.
하얀 벽과 대리석 바닥으로 된 꽤 넓은 집.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가전들. 전선 하나도 밖으로 노출할 수 없다는 듯 가전에 맞춰 추가된 마감재. 나무의 느낌이 살아있는 수납 기능 좋은 붙박이 가구들. 거기에 하나 더한다면, 넓은 집에 활기를 불어넣는 대형 열대 식물.
예술에서 미니멀리즘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물의 근본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이런 유행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지금 열거한 것들을 갖추는 데 얼마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지. 결국, 지금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은 겁나 비싼 거다. 돈 없으면 쉽게 흉내도 못 내는 거.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비싼 비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머릿속에 심어진 이 이미지를 위해서는 기존에 쓰던 멀쩡한 것들을 뜯어내고 부수고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예쁘게 채우기 위해 다시 사야 한다.
가끔 인터넷으로 ‘이렇게 집을 고쳤어요’라고 올라오는 글들을 본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큼 예쁘고 세련된 인테리어. 그걸 보며 저걸 위해 얼마나 많은 걸 버리고 새로 샀을까, 생각하면 저런 집에는 평생 살지 못하겠다는 한숨이 나온다.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꾸밀 돈을 벌 수나 있을까 싶지만 그건 자존심이 상하므로 말하지 않는다.
또 그 집들을 뜯어보다 보면, 가전제품들에 가구나 실내 장식을 꼭 맞춰놓았기 때문에 무언가 하나 틀어지면 저긴 다시 뜯어내야 하는 게 된다. 가전제품들의 수명을 10년 정도로 추산할 때, 저 공간이 유지되는 건 그 기간뿐이다.
물론, 이왕 내가 사는 집을 예쁘게 꾸미고자 하는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굳이 저렇게 싹 뜯어내야 하는지 궁금한 것뿐이다.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살려서, 깔끔하게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인테리어가 되지 않는 건지 의문이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이란 무언가를 새로 들이기 위해 버리는 것이 아닌, 지금 있는 것들로 더 간소해져서 우리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이 유행한 것처럼, 지금 우리는 너무 많아서 문제가 아닌가.
더욱더 간소하게 살아도 된다는 걸, 나는 캐나다에 오는 이삿짐을 싸며 깨달았다.
책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늘 책을 이고 지고 살았다. 종이책이 손에 착 감기며 차르륵 넘어가는 그 느낌을 사랑했다. 평생 책을 손에서 놓을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읽지도 않을 책을 사들였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순간을 위안하며 쌓인 책은 거실 한편을 가득 메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방을 점령했다. 책장을 살짝 걸쳐 사진을 찍고 SNS에 포스팅하면, 왠지 지적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책은 아무리 쌓여도 부족했다.
해외 이사를 준비하며 제일 먼저 처분해야 했던 것이 바로 그 책이었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책들이 중고로 팔려나갔고, 지인들에게 나눔을 했고, 오래된 책들은 폐지가 되었다. 그 책들을 떠나보내며, 나는 ‘언젠가’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읽을 책, 살 빼면 입을 옷, 있으면 먹을 것들…… 이런 것들이 결국 ‘언젠가는’ 버려지는 것들임을 인지하기로 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종이책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쌓아두는 책은 딱 100권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한 번 읽고 더는 안 읽을 것 같은 책은 즉시 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주고, 100권이 넘으면 제일 안 읽을 것 같은 것을 골라 주변에 나눈다. 여기에선 당연히 한국 책이 비싸서, 다행히 내 책들은 다 인기가 있다. 재미로 쓱 읽고 싶은 책은 전자책으로 해결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알 것 같다. 인생에 꼭 필요한 물건은 정말 얼마 되지 않고, ‘언젠가’를 위해 쌓아두는 건 결국 짐만 될 뿐이라는 걸. 절판될까 봐 사두었던 책들은 여전히 팔리며 더 예쁜 표지로 나오고 있고, 살이 빠지면 입으려던 옷들은 유행이 지난 지 오래고, 있으면 먹는다는 음식들은 내 살만 만든다. 삶의 짐들은 어느 순간 쓰레기가 됐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지 않으면 버릴 것도 없다. 사람이 산다는 건, 어차피 꾸준히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적게 만들고 싶다. 미니멀리즘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정말 미니멈하게 삶을 꾸려가는 방법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