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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텀블러와 에코백을 사지 않는다

by 규란

스타벅스에선 뭘 매년 그렇게 예쁜 걸 만드는지 모르겠다. 소장 욕구가 절로 드는 제품들을 볼 때마다, 텀블러를 모으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처음 텀블러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뭘 사도 사은품이 플라스틱 텀블러였다. 집에 텀블러가 쌓였고, 있으니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몇 개는 사용했다. 쓰다 보니, 세척이 문제였다. 통은 좁고 길어서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구조였다. 제대로 씻으려고 하니 솔을 사야 했다. 부지런한 자들에게는 설거지가 기분 좋은 의식 같은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절대 아니다. 가뜩이나 설거지도 하기 싫은데, 솔질까지 해야 하다니. 그렇게 해서 잘 닦이면 모르겠다. 아무리 깨끗이 씻으려고 해도 안 닦이는 부분이 보였다. 결국, 새 텀블러로 교체했다. 아니, 이게 환경 보호에 도움은 되는 거야?


텀블러를 생산하는 과정을 찾아보니, 플라스틱 컵을 만드는 몇백 배의 오염이 이뤄진다고 했다. 이걸로 환경을 보호하려면 최소 천 번은 하나의 텀블러를 사용해야 한단다. 그때부터 플라스틱 텀블러는 절대로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스테인리스 제품을 두 개 샀다. 내 것은 텀블러가 아니라 밀폐 뚜껑이 있는 캠핑용 컵이다. 물과 커피를 대용량으로 마시는 남편을 위해서는 30온스짜리 텀블러를 샀다. 내 주먹이 컵 바닥에 닿을 정도로 넓다. 이 두 제품 모두 씻기 편하다.


오래 사용하기 위해선 관리가 힘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태만한 종족들의 게으름은 환경을 향한 양심을 빈번하게 이긴다.

이 두 개의 스테인리스 제품을 사용한 지 2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1천 번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다. 앞으로도 3년은 더 써야 하려나. 아니, 망가져서 못 쓰게 될 때까지는 우리 집에 새로운 텀블러를 위한 자리는 없을 것이다.


텀블러만큼이나 자중하고 조심하는 게 에코백이다. 아무래도 이름을 잘못 지은 것 같다. ‘에코’백이라고 하니, 괜히 환경을 위한 것 같은지 뭐만 하면 다 에코백 증정이다. 가방치곤 싸니까 여러 개를 막 사도 큰 부담이 아니라서 그런지, 주변을 보면 에코백 장사를 해도 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고백한다. 나 역시 그런 인간이었다. 여기저기서 받은 에코백이 잔뜩이었는데,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것저것 사곤 했다. 그게 쌓여 산더미를 이룰 것 같았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다섯 개의 에코백만 가지고 있다. 그중 제일 큰 건 말랑 언니가 선물로 준 거다. 동물병원에 갈 때 동물용 기저귀와 패드, 혹시 몰라 수건까지 가지고 다녀야 해서 이 가방이 딱 알맞다. 장을 많이 봐야 할 때도 이것만 한 게 없다. 가볍게 장을 볼 때 가지고 다니는 건, 6년 전에 다이소에서 3천 원 주고 산 빨간 가방이다. 여행 갈 때도 꼭 캐리어에 넣고 다녀서 이 가방은 해외여행도 좀 다녔다. 종종 가방을 향해 “너 출세했다?”라고 농담도 날린다. 좀 차려입었을 때는 초록색 가방을 든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가방인데, 디자인도 색도 마음에 들고 어떤 차림에도 잘 어울린다. 시집 전문 서점인 위트앤시니컬에서 산 가방도 애용한다. 이 가방은 손잡이가 길어서 조금 무게 있는 걸 넣고 크로스로 매기에 좋다. 집 앞에 나갈 때 휘뚜루마뚜루 들고 다니는 하얀 가방도 있다. 크기도 끈 길이도 다 적당해서 자주 가지고 다니는 만큼 대모 언니가 만들어준 장식품을 걸어 두었다.


이렇게 자기 역할이 있는 다섯 개의 에코백 외에는 공짜로 주는 것도 받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생긴 것들은 캐나다에 오기 전, 모두 주변에 나누어줬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가방들이 해지기 전엔 다른 걸 사지 않을 생각이다.

에코백 외의 다른 가방도 사지 않는다. 안 갖고 싶다면 거짓말이다. 브랜드의 룩북을 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내 눈에 예쁜 것들은 계속 나온다. 그래도 살 생각은 없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도 아주 가끔, 제대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만 들고 다닌다.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20년은 거뜬할 것이다.


환경을 위한 제품들을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요즘엔 예쁘기까지 해서 시선을 빼앗기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친환경이란 버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덜 버리려면, 결국 덜 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지난 2년간 규모가 큰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한 번은 서울에서 열일곱 시간의 비행 끝에 캐나다 몬트리올로 갔고, 그다음에는 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밴쿠버로 왔다. 이때마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짐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 또 멀리 떠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예쁜 것이라도 집에 쌓이는 순간 짐이 된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꼭 필요한 것들로만, 오래 쓸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도 어느새 물건은 넘쳤다. 의외로 살아가는 데에는 엄청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나 같은 게으름뱅이들은 편의를 위해 더 많은 것들에 눈이 가게 돼 있다.


물론, 누군가는 지금 발을 내린 곳에서 오래 살 거고 그러니까 짐이 좀 쌓이는 건 괜찮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랬다니까? 내가 캐나다로 올 거라곤, 몬트리올을 찍고 밴쿠버로 넘어와서 또 언제 어디로 이사를 갈지 모르는 보부상 삶을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것이고, 그 안에서 가장 친환경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소비의 욕망을 줄여가는 것밖엔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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