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로 이사 가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몬트리올에서 알게 된 사람 중 대다수가 이렇게 말했다.
“따뜻한 곳으로 가네. 여름에도 안 덥고 겨울에도 안 춥고, 거긴 내내 따뜻할 거야.”
10월,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5월. 여덟 달이 지나는 동안 밴쿠버는 정말 그랬다. 몬트리올에서 산 방한용품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공원, 심지어 거리에도 캐나다구스라 불리는 기러기가 똥을 싸고 있지만, 겨울에도 그 새의 이름을 딴 점퍼는 필요 없었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한여름은 딱 2주 정도고 그마저도 무덥지 않다고 했다.
우리의 첫 여름. 밴쿠버의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갔다.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일부 지역은 40도까지 기온이 치솟아서 한국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워낙 선선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선풍기나 에어컨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온라인에선 중고 에어컨에 경매가 붙었고, 얼마나 오래된 것이든 팔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현금으로 2만 달러 주고 가져가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나는 집의 에어컨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이 더위를 참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2만 달러가 생길 수도 있는데! 하지만 내 고양이들의 코가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고, 남편이 더위를 먹었다. 2만 달러를 벌 수 있는 절호의 찬스는 그렇게 날아갔다.
이 더위는 열돔 때문이었고, 뉴스나 기사에 의하면 결국 우리가 환경을 험하게 쓰고 있는 탓이었다. 하늘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마치 지구 종말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모두가 ‘이상기후’라는 말로 이 날씨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정확한 문제가 보이지 않았고 그저 가벼운, 내일이면 괜찮아질 일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치솟은 기온 때문에 여기저기서 산불이 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이상기후’라는 말이 너무나 이상하다.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고 내일이 와도 괜찮아지지 않는데, 정말 이게 그냥 이상해?
몬트리올에서 지내는 1년 동안에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이번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네. 원래 몬트리올 겨울은 더 추워.”
“몬트리올의 봄과 가을 날씨는 원래 정말 좋아. 이렇게 덥지 않다고. 올해 날씨가 좀 이상해.”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다. 언젠가부터 해가 지날수록 더워지고, 비도 오지 않고, 장마철도 빨라지거나 늦어지거나 길어졌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올해가 이상하다고 했다.
이상한 시기가 계속되면, 오히려 안 이상한 게 이상한 거고 이상한 게 평범해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날씨가 좀 이상한 거야"라는 말로 지금의 사태를 너무 축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인간으로 인해 지구가 엄청나게 고통받았고, 고통받는 중이라 이제야 그걸 표현하는데, 그마저도 외면하는 건 아니고?
그런 이상한 날들이 (맑은 공기 하나 빼면 볼 거 없다는) 여기 캐나다에서도 계속됐다. 아마 내년에도 올해가 특히 이상하다는 말은 나올 것이고, 이곳이 아닌 한국에서도, 그리고 어쩌면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럴 것이다.
5년 전 6월. 나는 노르웨이에 있었다. 오슬로부터 트롬쇠까지 갈 예정이었다. 북유럽은 기후가 서늘하다지만, 그래도 6월인데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그곳의 날씨를 우습게 본 풋내기는 결혼식을 위해 피부 관리한 것을 제대로 뽐내기 위해 어깨와 다리를 잔뜩 드러내는 옷만 챙겼고, 결국 급하게 옷가게에 들어가 점퍼를 샀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기도 했지만, 직사광선을 받지 못하는 곳에선 반팔이나 얇은 긴팔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곳의 올해 6월엔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말 ‘이상기후’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무엇이 이상한 게 아니라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아니,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되게 만든 것이다.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에어컨부터 끄는 거다. 하지만 집 안에는 이미 뜨거운 공기가 가득하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도 숨이 막힌다. 남편은 더위를 먹어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고 고양이들은 코가 빨개질 대로 빨개져서 헐떡거린다. 그 모습을 보면 도리가 없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에어컨을 켜는 수밖에.
비록 나는 2만 달러에 현혹되어 에어컨을 팔지 않은 자신을 기특해했지만, 그러면서도 모두가 동시에 에어컨을 끄는 날을 상상한다. 전 세계에 기후 위기가 ‘심각하게’ 공포되고, 모두 하나 되어 지구를 살려보자는 취지로 에어컨을 끄는 날을. 전 세계가 에어컨을 끈다면 아주 미세하게 덜 더워질 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또 미세하게 덜 더워질 거고, 그렇게 조금씩 지구의 기온이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당장 필요한 건 이런 사소한, 하지만 실천하기는 겁나 어려운 노력과 의지인 셈이다.
분명 내년은 올해보다 더 더울 거다. 그리고 내후년은 내년보다 더 덥겠지. 그렇다면 에어컨을 끄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지금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저 전원 버튼을 누르지 못한 걸까.
저기 어딘가에 각국의 정상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을 거다. 여름의 그곳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로 에어컨이 돌고 있을 거다. 겨울이라면 히터가 돌고 있겠지.
그런 장면들을 상상하면 정말 우리에겐 찌는 듯한 미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물건에 열을 계속 가하면 터지는 것처럼, 이러다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은 이 지구도 펑하고 터져버릴까 봐 무섭다.
이상기후라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전 세계가 에어컨을 끄는 날을 상상하던 나는, 올여름 폭염으로 노약자들의 사망이 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쉴 수 있었다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내년 여름에는 취약계층의 노약자 사망률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딜레마 앞에서 점점 무력하고 참담해진다. 그렇다고 방관하다가는 우리가 모두 펑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나는 올해 딱 3일 간만, 하루에 세네 시간만 에어컨을 켰다. 나머지 날들은 선풍기로 더위를 버텼다. 내 앞에서 절대 옷을 갈아입지 않던 부끄럼쟁이 남편은 결혼 후 처음으로 윗옷을 벗고 생활했다. 고양이들은 타일 위로, 침대 밑으로, 그나마 시원한 곳을 알아서 찾아냈다. 이렇게 조금씩 버티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년엔 에어컨을 팔고 2만 달러를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보다는 지구가 괜찮아지길 바라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