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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건 나의 정답이다

by 규란

캐나다에 산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좋겠다’라고 한다.

캐나다는 미세먼지도 없고 날씨도 좋다지. 그리고 어쨌든, 외국이잖아.


정작 나는 창밖의 풍경에 매일 감탄하면서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생각해서인지 한국보다 여기가 특별히 좋다는 생각은 없다. 물론 드넓게 펼쳐진 풍경들은 어찌나 멋진지, 감탄이 나오는 순간이 많다. 그 대신 나는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기회를 잃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일을 마음껏 할 수도 없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어서 얻는 것 이상으로 잃는 것도 많은 내 생활이 딱히 좋다고 할 수만은 없다. 또 여기 사는 이상, 여기가 외국도 아니다. 그냥 사는 곳이다. 솔직히 풍경이야,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널렸는걸.

누군가의 부러워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조금 다른 곳에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대전과 서울이 다르듯이, 합정동과 행신동이 다르듯이 말이다.


밴쿠버는 많은 부분이 한국과도, 몬트리올과도 다르다. 여기저기서 프랑스어가 들리고, 맛있는 빵집이 즐비하고, 골목 구석구석에 감성적인 벽화가 많던 몬트리올은 힙한 분위기였다. 올드시티 부근을 걷고 있을 땐, 유럽에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반면, 밴쿠버는 조금 더 한적하고 자연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뭐랄까, 몬트리올에서 청춘을 즐기다 노년을 보내려 오는 곳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사는 집은 몬트리올에서 살던 곳과는 달리, 창 너머로 하늘이 가득하지도, 공원이 펼쳐져 있지도 않다. 그 대신, 테라스 앞으로 큰 나무가 뻗어 있다. 날씨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나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이런저런 새들이 날아 앉는 것을 관찰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큰 매가 앉아 그날의 사냥감을 뜯어 먹기도 했다. 가끔씩은 딱따구리가 테라스 윗부분을 쪼아대는 바람에 층간소음에 시달리기도 한다. 내 고양이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새와 곤충들을 보는 게 처음이어서 그 눈에 신기함이 가득 담긴다. 나는 고양이들의 그 눈을 보는 게 즐겁다.


집에서 5분을 걸어가면 큰 공터가 나온다. 가든 시티 랜드Garden City Land라는 이름인데, 정원이라고 하기에도 공원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하다. 여러 식생이 구획 별로 잘 관리되어 있지도 않고, 벤치도 하나 없다. 들풀이 가득 자란 넓은 땅을 둘러싼 산책길이 있을 뿐이다. 한 바퀴 걷는 데에만 40분 정도가 걸리니 큰 공터라는 말이 적당하다.


나와 남편은 거의 매일같이 그곳을 걷는다. 그러다 보면 계절과 날씨에 따라 피고 지는 들꽃들을 볼 수 있고 꽃들에 따라 바뀌는 새들과 곤충도 알 수 있다. 우리 집 테라스의 나무와 그곳에 몰려드는 새들, 공터의 자연들, 그리고 낮은 집들 위로 드넓게 펼쳐진 하늘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자연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러고 보면 어떤 감정들은 뒤늦게 찾아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방학 때면 숙제로 받았던 ‘탐구생활’이 그렇게 귀찮고 재미없고 싫었는데 그때 필요했던 탐구력이 이제야 나를 뒤덮는다.


조류공포증이 심한 주제에 새의 이름을 알겠다며 조류도감을 샀고, 나무에 관한 책도 읽고 있다. 봄에는 벌에 관한 책을 읽었다. 궁금하니 알고 싶었고, 알게 되니 더 다양한 감정들에 휩싸였다. 그 대부분은 긍정적인 죄책감과 예민함 같은 것들이다.

자연에 가깝게 살며, 그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며 나는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에 더 미안해졌고 일회용을 쓰는 것에 더 까다롭게 되었고 인간이 지구에 하는 일들에 대해 더 민감하게 되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걸 조금도 손상하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캐나다에 와서, 이 자연 속에 있어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안 갈 거라고, 내 삶의 터전은 한국이라고 말한 사람치고 이곳에 너무 몰입하는 것 같아서 좀 머쓱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단지 그것이 이유가 아님을 알았다. 이 마음은 주변에 관심을 가진 후 생겨난 것이었다.


이전의 나는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50대의 선배를 찾기 힘든 업계에서 어떻게든 가늘고 길게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길을 걸을 때도 내일 해야 할 일과 모레 해야 할 일을 생각했고, 휴가지에 가서도 업무 메일을 확인했었다.

자연은 한국에도, 여기도, 그 어디에도 있었는데 내가 시선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보려고 하자 보였고 마음이 쓰였고 방법을 알아보게 됐다.


지금의 나는 주변의 자연과 약속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가능한 한 쓰레기를 적게 배출할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사지 않을게. 분리수거를 꼼꼼하게 할게. 될 수 있으면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의 물품을 쓸게. 물론 이 약속들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내가 실천하는 일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더 알려고 한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가 감정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환경에 접근하기란 아직 멀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계속 살피고, 실천하고, 조사하면서 수정과 보안을 해나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나만의 일인칭 정답지를 만들고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 이게 지금까지 내가 내린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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