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시고, 버리고 말았다
또 쌓이고 말았다.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것들 말이다.
그때그때 치우자는 말을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 게으르고, 남편은 너무너무 게으르다. 두 게으름뱅이에게 “그때그때 하자”라는 말은 인사 같은 거다. 안 하면 뭔가 서운한 그런 거.
아무리 분리수거를 잘해도 실제로 재활용이 되는 양은 적다고 들어서 가능한 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어쩜 이렇게 쌓이는지 모르겠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캔류다.
맥주는 왜 이리 맛있는 걸까. 안 마시려고 노력하면 더 마시고 싶어진다. 그나마 한국에서보다, 몬트리올에서보다 음주량이 좀 줄었다. 내가 사는 브리티시콜롬비아주에서는 리큐어 숍에서만 주류를 살 수 있고 대부분의 그 가게는 일찍 문을 닫는다. 특히 명절 같은 때에는 사람들이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게끔, 정부가 폐점 시간을 더 이르게 조절한다. 새벽 한 시에도 맥주를 사러 나가던 한국에서의 삶이 그립다. 물론, 쟁이면 될 일이지만, 그러면 너무 주정뱅이 같잖아……. 아무리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지만 나에게도 사회적 체면이라는 건 있다.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음주량을 줄였음에도, 술꾼 DNA는 어디 가지 않아서 매주 꽤 많은 맥주캔을 버린다. 밤은 너무 길고 나는 쉽게 감상에 젖는 인간이라서 맥주 없이는 조금 외로워진다. 금주령의 시대에 살았다면 몰래 술을 빚다가 잡혀가고도 남았을 게, 나란 사람이다.
한국과 달리 여기는 진열장에 붙어 있는 주류 가격과 계산대에서 내는 금액이 다르다. 물건을 고르며 확인한 가격은 세금이 부과되기 전의 것이고, 실제로 돈을 낼 때는 주류세와 재활용 용기 보증금을 포함된 금액이 청구된다. 1리터 이하 보증금은 10센트, 1리터 이상은 20센트로 크지 않은 비용이지만, 영수증을 볼 때마다 이 캔을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 든다.
처음엔 이게 너무 이상하고 도둑놈 심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뭔가 속는 기분이지 않은가. 왜 계산대에서 총 금액이 달라지는 건지, 이 점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 용기 보증금이란 제도는 나쁘지 않다. 이 기후 변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지구가 앓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도 든다.
보증금은 빈 캔이나 병을 가지고 리큐어 숍에 가면 돌려준다. 또 병이나 캔만 전문적으로 받는 곳도 있다. 그럼에도 세상에 게으름뱅이는 많고 많아서 그냥 재활용 통에 버려지는 것들이 더 많다. 나도 환불을 노리며 몇 번이나 캔과 병을 모으려 노력했지만, 쌓이면 냄새도 날뿐더러 그걸 다시 리쿠어 숍이나 환불 센터로 가져가는 게 또 일이라 결국 재활용 통에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마을의 재활용 통을 돌아다니며 이걸 수거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에 나는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게 되었으니, 가슴 깊이 감사의 눈길을 보낸다.
우리 집에서 맥주캔만큼이나 많이 버려지는 건, 어쩔 수 없이 고양이용 통조림 깡통이다. 당뇨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맛과 영양가를 모두 잡은 통조림을 바치기 위해 지갑을 수시로 연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 그만큼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동물 당뇨 역시 당류가 포함되지 않은 식사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분 좋은 (비싸다는 뜻이다) 통조림을 드리는 게 최선이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우는 집사답게 내가 먹는 참치캔보다도 훨씬 비싼 통조림을 하루에 한두 개씩 드리다 보니 오늘도 우리 집에서는 재활용 캔들이 와장창 쏟아진다.
고양이용 통조림은 깨끗이 닦아 라벨을 꼼꼼히 뗀다. 물에 살짝 불리기만 하면 쉽게 떨어져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아니다. 게으름 맥스의 삶이지만, 내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런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번거롭지 않다.
삶에는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나에겐 밤의 맥주가 그런 것이고, 내 고양이의 건강한 묘생을 위해선 통조림이 필요하다. 그걸 위해 오늘도 우리 집에선 캔이 버려진다. 술을 끊지 못하는 주정뱅이 인생과 통조림을 먹어야만 하는 묘생이 공존하는 집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배출되는 모든 걸 제대로 분리하여 배출하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고작 이런 것뿐이다. 쓰레기로 뒤덮여가는 지구를 위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얼마나 환경에 유해한지 새삼 실감하지만, 왠지 오늘 밤에도 맥주를 마실 것만 같고 내 고양이는 지금 통조림을 넣어두는 찬장 앞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