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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친애하는 일론 머스크 님께

저는 환경을 아끼고 싶습니다만, 전기차는 너무 비싸요

by 규란

결혼하기 전, 나와 남편은 가능한 한 차를 사지 않기로 합의했다. 돈의 문제는 아니었다. 돈이 없기도 했지만, 차는 할부로 사면 되는 것이고 할부 값은 미래의 내가 갚는 것이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부터 배기가스를 좀 줄이자는 마음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딱히 차를 살 이유가 없었다. 나는 길에서 운전하는 상상만으로도 겁을 내는 사람이고, 언제 어디서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는 남편은 러시아워 동안 차 안에 있느니 지하철에서 모자란 잠을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토가 넓다는 캐나다에 와서도 우리는 차를 사지 않았다.

몬트리올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고, 우리의 집은 다운타운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지하철과 버스, 약간의 다리 근육, 그리고 우버 어플과 우버 비용만 있으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밴쿠버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게다가 우리는 다운타운이 아닌, 광역 밴쿠버 중 한 곳인 리치몬드에 집을 구했다. 코로나로 인해 웬만하면 집에만 있었는데도 나갈 일은 생겼고 어지간한 곳은 다 멀었다. 편도 한 시간 안팎은 걸어 다녔고 스카이트레인과 버스도 탔지만, 그것들로는 못 가는 길이 더 많았다. 렌터카 가게의 직원과 친해졌고,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우버를 이용했다. 교통비가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러다 첫째 고양이가 당뇨 확진을 받았다. 한국에서 10년간 내 고양이들을 봐주시던 수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정성 들여 키우는데 얘는 아프면 반칙”이라고 했는데……. 나의 이 작고 하찮으면서도 사랑스러우며 레드카드 반칙을 하는 고양이의 병은 우리가 동물병원에 자주 가야 한다는 뜻이었고, 이곳에서 우리가 다니는 병원은 차로 40~50분 거리였다. 병원을 가까운 곳으로 옮길 수도 있었지만, 마침 이 낯선 곳에서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상냥한 선생님을 만나는 천운이 따른 참이었다. (캐나다에 와서 내 영어 실력은 지금의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 동물병원을 전전하며 늘었다.)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차를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결론이 났다.


이제 나와 남편은 그동안의 신념을 버려야 했다. 그 대신 어떤 차를 사야 그나마 경제적이고 환경에 덜 해로울까를 고민했다. 뭐, 답은 뻔했다. 전기차.

캐나다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의 보급을 위해 애쓰고 있고 그만큼 혜택도 많다. 차알못인 우리는 가장 유명한 테슬라부터 살펴보았다. 아니, 뭐가 이렇게 비싸? 차가 이렇게 비싼데 이걸 보급하려고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천지개벽할 소리인가.

한국이었다면 당연히 할부를 끌어왔겠지만, 악명 높은 밴쿠버 월세를 지불하는 우리에게 할부는 헤어진 옛 연인과도 같은 거였다. 그러니까 가능한 안 만나는 게 좋은 상대.

다른 전기차를 찾아보았다. 그나마 테슬라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이 역시 비싼 건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전기차는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말로 우리의 귀여운 통장 잔고를 위로했고 경유 차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의 예산으로는 중저가 세단 정도를 새 차로 살 수 있었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우리의 취향에서 세단은 너무 안 예뻤고, 새 차를 산다고 해도 즐거울 거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중고차다.


중고차를 사게 된 이유를 더 그럴듯하게 말할 수도 있다.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해, 혹은 더 경제적인 소비를 위해. 하지만 우리는 이왕 사는 거 취향에 맞는 차를 사고 싶었고, 가능한 일시불로 사고 싶었다. 중고차는 우리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차를 사게 됐지만,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전기차를 사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저 거대 기업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은 무시하지 못할 요소 중 하나인데 환경을 위하는 마음에도 너무 큰 비용을 요구하는 회사들은 각성하라! 뭐, 이런 마음이랄까.

아직 전기차는 비싸다. 마트에만 가도 일반 제품보다는 친환경 제품이 더 비싸다. 환경을 지키는 데도 돈, 돈, 돈이 든다. 그 돈을 아낌없이 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상황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마다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억울하다.

캐나다 정부는 전기차에 대해 여러 지원을 하고 있다. 문제는, 전기차 자체가 아직은 비싸므로 지원을 받아도 비싸다는 거다. 어디에나 시장의 원리는 존재하고, 수요가 많으면 공급이 많거나 자재의 값을 올리는 건 당연하다. 비싼 걸 갖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심리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가격을 높일수록 소장가치도 올라간다는 건 알지만,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많을 거다. 비싼 거보다는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걸 원하는 사람들.


친환경 용기 제품을 사는 것,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쓰는 것, 동물복지도 생각하며 식료품을 고르는 것. 이런 일에 들어가는 약간의 추가 비용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큰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선 답이 없다. 나는 답이 있는 환경을 위한 길을 좀 더 많이 걷고 싶다.

우린 종종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말을 한다. 맞다. 가난한 내가 아무리 애쓴다고 한들, 티도 안 날 거다. 그래서 기업들이 길을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친애하는 일론 머스크 님이여, 우주여행도 좋지만, 여행이란 건 돌아올 곳이 있는 떠남 아니겠습니까.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우주여행이 아닌 우주 미아가 될 뿐입니다. 아, 그러니 일단 전기차 가격을 좀 내려주면 안 될까요? 일론 님께만 이런 부탁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부디 제일 유명한 탓이라고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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