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많은 탄소 발자국을 만들고 말았다
몬트리올에서 산 기간은 딱 1년이었다. 그런데도 가끔 그 도시의 분위기가 엄청나게 그립다. 첫정이 무섭다고, 캐나다에 와서 산 첫 지역이라 그런 걸까.
쨍한 하늘, 건물 담벼락의 그래비티,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동물로만 구성된 자연 그대로의 동물원. 무릎 위까지 눈이 쌓일 때면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이렇게 감성적인 것만 떠오르면 좋으련만, 그곳은 먹보 레이더가 활개를 치기 너무 좋은 곳이었다. 어느 빵집에 들어가도 실패란 없었고(심지어 지하철 역사 내에 있는 빵집도!), 모든 베이글 가게의 베이글 맛은 환상이었다. 고기밖에 안 들어가는데도 끝내주게 맛있던 샌드위치, 화덕 피자, 감자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생각하게 했던 푸틴까지. 내 구글 맵에는 가보고 싶은 맛집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 중에서도 제일 자주 떠올리는 건 집 근처에 있던 청과물 가게다. (결국 먹는 거다.) 그곳의 진열장은 퀘벡주에서 자란 싱싱한 과일들로 가득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즐거워지는 느낌이었다. 판매하는 빵과 가공육은 근처 전문점에서 납품받은 것이었고, 지역 농장에서 만든 유제품들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대형마트보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식재료를 고를 때면 이유 없는 즐거움이 솟아올랐다.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면, 불필요한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용기가 나오지 않아 좋았다. 낱개 포장된 과일이나 채소는 없었고, 그냥 고객들이 필요한 만큼 덜어가면 계산대에서 무게를 재고 가격을 책정했다. (대부분의 캐나다 마트들에선 이런 방식을 택하지만, 전 제품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는 봉지나 스티로폼 용기에 덜어서 판매한다.) 근교에서 재배되고 만들어진 것들로 채워진 장바구니는 탄소 발생을 최대한 줄이는 느낌이라 뿌듯했다.
생활 속에서 내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어마어마한 탄소를 발생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희망을 여행하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지금 우리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아마도 엄청 많은 탄소가 발생할 것이다. 여행을 가는 것에도, 식사하는 것에도, 외부 온도와 상관없이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내는 데에도, 모두 탄소가 발생한다. 너무 일상적이라 쉽게 인지하지 못할 정도다.
사실, 의식한다고 해도 이미 우리 생활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서 바꾸기 어려운 것도 있다. 축산에서 메탄가스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잘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소고기 소비량을 쉽게 줄이지는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소고기 섭취를 좀 줄여야지 싶지만, 햄버거도, 햄과 소시지가 들어가는 피자도, 편육이 올라가는 냉면도, 어쩌면 MSG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소고기가 포함된다.
조금이나마 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지역 생산품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내가 사는 고장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을 우선으로 섭취하고, 그게 안 된다면 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걸 먹는다. 캐나다는 국토가 너무 넓어서, 그 나라에서 자란 걸 먹는 거나 다른 나라에서 자란 걸 먹는 거나 거리가 비슷할 수도 있으니 가능한 한 같은 주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한다. 여행을 가서도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숙소를 이용하는 등의 지역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부터 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았으면 좋겠어서 이야기하건대, 나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면 기부를 하곤 했다. 내 유흥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량을 상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알아본 후, 그 금액을 환경단체에 보냈다. 그렇게 나의 즐거움이 어느 정도는 지구에게 빚지고 있는 것임을 자각하려고 했다. 거대 기업에서 운영하는 체인식 호텔이나 리조트 대신, 그 지역의 로컬 숙소를 이용하는 편을 택했다. 내가 낸 돈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거라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건을 낭비하지 않았다. 나를 환대해주는 도시의 환경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도 최대한 깨끗하고 알뜰하게 그곳을 이용하고 아끼다 돌아오고자 했다.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느새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국가가 망해도 3년은 나무를 팔아 먹고살 수 있다는 이 나라의 풍족한 천연자원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푸르르길 바란다. 그래서 몬트리올에선 퀘벡주의 것들을, 밴쿠버에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들의 식재료나 제품들을 가급적 사용하려고 한다.
물론, 이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나는 한식이 그립다. 예전엔 일 년 내내 한식을 안 먹고도 지낼 수 있었는데, 그건 20대 젊은 시절 일로 마무리되었다. 점점 아빠의 식성을 닮아가는 나는, 하루에 한 끼는 한식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이 좀 더부룩하고, 먹어도 먹은 거 같지 않다. 먹은 것 같지 않은데 살이 찌는 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그나마 다행인 건, 아빠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었지만 나는 내가 해 먹는다는 점일까.
이러다 보니, 내 밥상에 김치는 꼭 필요하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너무나도 번거롭고 힘들고 까다로우므로, 이건 그냥 사 먹는 쪽을 택했다. 내가 사 먹는 김치는 당연히 한국에서 온 거고, 왜 쌀도 한국 쌀이 더 맛있는 거야……. 떡볶이는 나의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므로 당연히 먹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고추장과 고춧가루는 꼭 필요하다. 그뿐인가. 된장찌개도, 떡국도, 미역국도, 온갖 종류의 밑반찬도.
가끔은 못 먹으면 병이 날 것 같은 음식들이 너무 많다. 다행히 몬트리올보다 밴쿠버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아서인지, 한식 재료를 구하기가 너무나 쉽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항공 혹은 배로 운반될 거고 내 식탁에는 그만큼 많은 탄소 발자국들이 찍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마음엔 늘 빚이 쌓이지만, 한식을 부정하는 건 내 역사를 부인하는 셈이니 이 정도는 환경이 눈감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없는 돈 한 푼 두 푼 모아 환경 단체에 기부하고 그 돈이 나무 한 그루를 더 심는 데, 북극곰을 살리는 데 조금이나 일조하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 생활 속 탄소 발자국 계산하기: 탄소발자국 계산기 (kce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