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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가장 유익했던 브랜딩/마케팅 도서 둘

by 송정훈


책을 제법 읽는 편이다. 매주 새로운 책을 읽는 다독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성인들의 연평균 독서량이라는 6.1권의 두세 배쯤은 읽는다. 연말이 되면 YES 24에서는 한 해 동안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어떤 부류의 책을 많이 샀는지, 또 주문 권수로 줄을 세웠을 때 어디쯤 위치하는지 데이터를 보여주는데, 10% 안쪽이라 뜨는 걸 보니 제법 책에 돈을 쓰는 편이긴 한 것 같다. 먹물 기질이 있는지, 궁금한 주제가 생기거나 어떤 문제나 과제가 닥쳤을 때, 우선 책을 사고 본다. 책을 사고 나면 감당해야 할 문제의 30% 정도는 이미 해결된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건 책 자체라기보다 책을 살 때 느껴지는 유식해질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마케터가 되고 나서 잘하고는 싶은데, 손에 가진 것이 적으니 퍽 답답했고, 그 갈증을 풀어보려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도서 중에 마케팅, 광고, 프로모션, 브랜드와 관련된 게 대충 세어봐도 20권이 넘으니 많이 사기도 했다 싶다. 책장 군데군데 꽂혀 있는 마케팅 서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잘하고픈 열망이 컸던 지난날이 떠올라 괜히 대견스럽기도 하고, 변변치 않은 지금을 생각하며 ‘읽는 행위가 생각보다 사람을 크게 성장시키지는 못하는구나’하는 속상한 깨달음도 얻게 된다.


그래도 그중에는 유익한 책들도 있었는데, 신병철 님이 쓴 <브랜드 인사이트>와 임태수 님이 쓴 <날마다 브랜드>만큼은 정말 알찼다. <브랜드 인사이트>라는 책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어떤 계기로 ‘어머, 이건 읽어야 돼’하는 강한 욕구가 일었고, 2003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을 어찌어찌 중고로 구매했다. 한 번 읽고는 딱 떨어지는 내용이 마음에 들어 초판이 나오고 1년 10개월 뒤에 나왔다는 개정판 <쉽고 강한 브랜드 전략>도 중고로 사서 다시 읽었다. <날마다 브랜드>는 어떤 분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추천 글을 보고 바로 주문해 뜨끈뜨끈한 신간을 읽었고, 북바이북 상암에서 진행됐던 저자의 북 토크에도 참석했을 정도로 책의 메시지가 좋았다.



<브랜드 인사이트>는 브랜딩 기본 교과서 같다. 책의 문체부터 강의 느낌이 듬뿍 나는데, 읽다 보면 이론도 빠삭하고 실제 사례도 다양하게 꿰뚫고 있는 젊고 유능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 책은 근본 없이 마케팅을 시작했던 내게 생각의 기본 뼈대가 되어 주었고, 브랜드가 무엇인지, 브랜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프로모션이 가진 본연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르면서 공감할 수 있는 컨셉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브랜드 확장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은지 같은 지식을 취할 수 있었다. 책은 이론과 통찰을 쉽게 풀어 설명함과 동시에 익숙한 사례를 여럿 덧붙였기에 받아들이기 수월했다.


지금 회사의 영업팀은 자신들의 일을 입점과 회전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으로 구분 짓고 있고, 그 구분은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브랜드 인사이트>를 읽으며 브랜드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는 두 개의 큰 축, 인지와 핵심 연상을 배웠다. 인지는 말 그대로 브랜드의 존재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과 관련된 영역이었고, 핵심 연상은 그 브랜드와 관련된 생각과 선호를 관리하는 영역이었다. 이 두 가지는 영업의 입점-회전처럼 생각의 축이 되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준비하는 일의 방점이 어디인지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날마다 브랜드>는 호텔 업계 마케팅 부서와 브랜드 컨설팅 업계에서 일을 해 온 저자가 쓴 사색적인 에세이집이다. 질감이 느껴지는 회색 톤의 종이와 그 위에 올라간 텍스트 위주의 심플한 표지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딱이겠다 싶을 정도로 예쁘고 정갈하다. 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백 명이 알고 있는 브랜드, 열 명이 좋아하는 브랜드, 한 명이 사랑하는 브랜드.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리고 브랜드가 무엇인지(저자는 약속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올바른 브랜드란 어때야 하는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브랜드를 관리해 나가야 하는지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로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호텔 브랜드 전략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텔이 되기 위해서 그 호텔을 찾을 법한 고객이 읽을 잡지에 광고를 하고 조식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흠결 없고 만족스러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청소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수월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객실을 보다 완벽하게 관리하고, 그들의 표정에 묻어난 친절과 편안함으로 고객에게 더 좋은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제품이 가진 좋은 점을 알리고, 할인이든 판촉물이든 프로모션으로 소비자를 끌고 오는 것이 브랜드 매니저의 주된 역할이라 생각했던 내게 이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브랜드 매니저의 일에는 브랜드 가치를 제대로 다지고 키워 나가는 일도 있음을 깨달았다. 좁았던 시야의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생각의 외연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꽁꽁 아껴두었다가 아끼는 후배로부터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비장의 무기처럼 쓱 꺼내려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회사가 작고 어려운 탓에 후배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기도 하고, 그나마 있는 후배도 책 쪽으로는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이렇게 글로 적어보게 되었다. 혹시 브랜딩과 마케팅의 세계에서 나처럼 방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나름 꾸준히 책을 주문하고, 그중 어떤 책은 읽다 덮고, 또 어떤 책은 두세 번 읽기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오랜 시간을 머금고 있는 책은 그 세월만큼 묵직한 힘도 품고 있다는 것을. 저자가 오랫동안 경험한 일, 오랜 시간 골몰한 주제를 다룬 책은 보통 오래 끓인 국밥처럼 맛이 깊었다. 이번에 소개한 두 권의 책 역시 저자들이 십 년 이상 일하고 공부한 것을 자신들의 언어로 잘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힘은 단단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도 맛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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