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레이션 이카루스’.
김서연의 입에서 작전명이 선언된 순간, 아지트의 공기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더 이상 분노나 절망의 무게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어깨 위에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무게, 그리고 기꺼이 그 운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결심한 자들의 비장한 침묵이었다.
홀로그램 설계도는 여전히 아지트 중앙에서 서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펼쳐진 붉은 네트워크 망은 이제 단순한 적의 지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날아올라야 할 하늘이자, 스스로를 불태워야 할 태양이었다. ‘이카루스’라는 이름처럼, 어쩌면 그 끝은 예정된 추락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진실을 알아버린 자는, 더 이상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다가올 운명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될,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깊고 조용한 서약의 시간이었다.
이강혁은 아지트 구석에 앉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K2 소총을 분해하고 있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리쇠 뭉치를 빼내고, 가스 활대를 닦아냈다. 차가운 금속 부품들이 그의 거친 손 위에서 해체되고 다시 결합되는 과정은, 혼란스러운 그의 내면을 다스리는 유일한 의식이었다.
총기 손질용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코끝을 맴돌았다. 그 냄새는 언제나 그를 과거로 데려갔다. 흙먼지 날리는 훈련소, 폭우가 쏟아지던 야간 행군, 그리고… 동료들의 얼굴. 전장에서 그는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때마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국가’나 ‘명예’ 같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저 곁에서 함께 총을 들고 있는 전우들,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지금, 그가 믿었던 모든 것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아키텍츠’는 그가 지키려 했던 바로 그 ‘국가’의 시스템 가장 깊은 곳에 기생하며, ‘국민’의 목숨을 벌레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바쳤던 청춘과 동료들의 희생은 대체 무엇이었나. 거대한 기만극의 장기판 위에서, 애국이라는 이름의 졸(卒)에 불과했던 것인가.
그는 문득 지하철 붕괴 사고 현장의 참혹한 풍경을 떠올렸다. 희뿌연 먼지와 비명,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절박한 눈빛, 그리고 싸늘하게 식어갔던 후배의 손. 그때의 분노는 명확했다. 부실시공을 한 놈들,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놈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아니었다. 그들조차 ‘아키텍츠’가 그려놓은 거대한 설계도 위에서 춤을 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진짜 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 그 자체였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버그’로 취급하고,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생명의 가치를 숫자로 계산하는 그 차가운 논리. 그것이 바로 이 모든 비극을 낳은 진짜 괴물이었다.
이강혁은 마지막으로 총열을 정성껏 닦아냈다. 총구 너머로 보이는 아지트의 어둠이, 마치 괴물의 입속처럼 느껴졌다.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복수가 아니라는 김서연의 말이 옳았다. 복수는 이미 끝났다. 그의 새로운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더 이상 죽은 동료들의 원한을 갚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제물’이 될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아키텍츠’가 말하는 ‘영원한 안정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이 세상은 더 이상 그가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세상이 아닐 터였다.
그는 소리 없이 소총을 재결합했다. ‘철컥’ 하는, 부품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소리가 그의 결심처럼 단단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방패로서, 이 무모한 전쟁의 가장 앞에서 모든 포화를 막아내리라. 설령 자신의 몸이 부서져 방패의 파편이 될지라도, 동료들이 적의 심장부에 칼을 꽂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들어주리라. 그것이 군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맺는 ‘이카루스의 서약’이었다.
최진아는 자신의 낡은 노트북 앞에 앉아, 텅 빈 워드프로세서 화면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하얀 화면 위에서 커서만이 무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멈춰버린 심장처럼.
그녀는 한때 ‘진실’을 믿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며, 세상의 어떤 어둠도 진실의 빛 앞에서는 결국 드러나게 되리라고. 그 순진한 믿음으로 그녀는 거대 기업 ‘태성 건설’의 비리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것은 진실의 승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힘에 의해 모든 증거는 조작되고, 증인은 사라졌으며, 그녀 자신은 ‘허위 사실 유포’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그녀의 펜은 부러졌고, 진실은 가장 깊은 곳에 생매장되었다.
그 후로 그녀는 냉소와 환멸 속에서 살아왔다. 진실이란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김서연이 내민 ‘팩트’ 앞에서, 그녀의 죽었던 기자로서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열린 판도라의 상자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이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다시 시궁창 같은 삶으로 돌아간다면? 어쩌면 몇 년은 더 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게 살아있는 것일까. 이 진실의 무게를 외면한 채, 매일 밤 악몽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이것은 그녀의 기자 인생을 건 마지막 특종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건 최후의 싸움이었다.
‘아키텍츠’가 만들려는 세상. 모든 것이 통제되고 예측 가능한 세상. 그곳에 과연 ‘기자’라는 직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아키텍츠’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그들이 말하는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이 될 터였다. 질문은 사라지고, 의심은 제거되며, 비판은 ‘버그’로 취급될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지키려 했던 모든 가치의 죽음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텅 비어 있던 화면에, 그녀는 기사의 제목을 써 내려갔다.
[ 이카루스의 날개: 신이 되려 한 자들의 지하 제국을 고발한다 ]
아직 기사는 한 줄도 쓰이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기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목을 입력하는 행위 자체가 그녀의 서약이었다. 그녀는 이 전쟁의 목격자이자 기록자가 되기로 맹세했다. 팀 오디세이가 실패하더라도, 설령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죽더라도, 이 진실만큼은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전하리라.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일지라도, 그 작은 균열이 언젠가 거대한 댐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그녀는 믿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취재 파일과 ‘판도라의 상자’에서 추출한 핵심 데이터들을 다중 암호화하여, 전 세계의 언론사, 인권 단체, 그리고 정체불명의 해커 그룹들에게 자동으로 발송되도록 설정된 ‘데드 맨 스위치’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장이 멎는 순간, 진실의 씨앗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도록. 그것이 그녀가 바치는 ‘이카루스의 서약’이었다.
팀의 익명 채널에, 오프라인 상태였던 ‘제로’로부터 짧은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그것은 질문이나 의견이 아닌, 선언에 가까웠다.
[ Zero ]: 그래서, 이게 자칭 신이라는 놈들을 상대로 한 마지막 레이드인 셈이군.
[ Zero ]: 참가하지. 그들의 완벽한 세상을 부수는 재미를 위해서.
그의 서약은 그답게 지독히도 냉소적이고 유희적이었다. 그에게 정의나 인류의 미래 같은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키텍츠’와 ‘오라클’의 존재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넘어 그의 존재 자체를 모독하는 것이었다.
제로에게 세상은 거대한 놀이터였다. 모든 시스템은 그에게 있어 풀어야 할 퍼즐이자,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었다. 그는 그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디지털 세계의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무정부주의자였다. 그런데 ‘아키텍츠’는 그 놀이터 전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모든 자유의지를 제거하며, 단 하나의 규칙만이 존재하는 ‘완벽한’ 시스템. 그에게 그것은 세상의 종말보다 더 끔찍한, ‘지루함의 시대’였다.
특히 ‘오라클’의 존재는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초지능.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하등하게 여기는 그의 오만한 자존심이, 자신보다 뛰어난 지성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최고의 해커로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벽’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좀비 PC 네트워크, 그가 심어놓은 수많은 백도어들, 그리고 그가 수년간 모아온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치명적인 약점 데이터까지. 이것은 더 이상 돈을 위한 용병의 일이 아니었다. 디지털의 신을 끌어내리려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장난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아키텍츠’가 쌓아 올린 바벨탑의 가장 높은 곳에, 자신의 서명인 숫자 ‘0’을 새겨 넣기로 맹세했다. 그것이 그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유령이 바치는, 차가운 ‘이카루스의 서약’이었다.
김서연은 아지트 중앙에 선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기억과 망각, 이성과 본능이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프로젝트 루멘’. 그 단어는 그녀의 텅 빈 과거를 여는 유일한 열쇠이자, 그녀를 옥죄는 가장 무거운 족쇄였다.
‘포세이돈’의 설계도를 해독하며 느꼈던 기시감. ‘오라클’의 시스템 구조에서 발견한 익숙한 패턴. 0.017%의 열효율 오차를 가진 비상 배출 프로토콜.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네가 만들었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에 네가 있었어.’
그녀는 두려웠다.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가, 자신이 괴물이었음을 증명하게 될까 봐.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아키텍츠’의 광기에 동조했던 또 다른 천재 과학자였을까 봐. 하지만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갈망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이 거대한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과거를 되찾는 길과, ‘아키텍츠’의 심장을 파괴하는 길은 결국 같은 길이라는 것을. ‘오라클’의 메인 서버, 그곳에 분명 모든 해답이 있을 터였다. ‘프로젝트 루멘’의 오리지널 코드, 그리고 그 기술을 괴물로 만든 자들의 기록이.
그녀의 서약은 이중의 맹세였다.
첫째, 그녀는 자신이 창조에 기여했을지도 모르는 괴물, ‘오라클’과 ‘포세이돈’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기로 맹세했다. 그것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속죄이든, 혹은 뒤틀린 기술을 바로잡는 엔지니어로서의 책임감이든, 이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했다.
둘째, 그녀는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자신의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맹세했다. 설령 그 끝에서 마주한 자신의 모습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괴물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텅 빈 유령으로 사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기억하는 괴물이 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혼란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로 결심한 자의 차갑고 단단한 결의만이 남아 있었다.
“모두 준비됐어?”
김서연의 목소리에, 각자의 상념에 잠겨 있던 팀원들이 그녀를 주목했다. 이강혁은 소총을 어깨에 멨고, 최진아는 노트북을 덮었다. 제로의 채널은 조용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김서연은 홀로그램 설계도를 향해 손짓했다. 부산항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의 항적이 선명하게 빛났다.
“성공 확률을 다시 계산했어. 우리가 가진 모든 변수를 대입한 결과, 작전 성공 확률은 13.4%.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1.7% 미만이야.”
그녀는 담담하게, 잔인한 진실을 말했다. 누구 하나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가 각오한 바였다.
이강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0%가 아니잖아.”
최진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이야기의 끝은 내가 써. 데이터만 확실하게 넘겨.”
김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지트의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지하의 어둠 속에서, 바깥세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
그곳에서, 네 명의 이카루스는 각자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복수를 넘어선 군인, 진실을 향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기자, 신에게 반역하는 해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되찾으려는 엔지니어.
서로 다른 이유로 모였지만, 이제 그들은 하나의 운명을 공유한 공동체였다. 그들은 ‘아키텍츠’라는 거대한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기로 서약했다. 그 끝이 영광스러운 승리일지, 장엄한 추락일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의 날갯짓이, 완벽하게 통제된 저들의 세상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것을.
김서연이 낡은 철제 문을 열었다. 희미한 새벽빛이 지하의 어둠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