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개시 시각, H-Hour. 서울이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드는 새벽 3시.
‘하데스 볼트’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버려진 지하철 환기구 내부. ‘팀 오디세이’의 전진 기지는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그들의 임시 아지트인 폐쇄된 지하철역보다 훨씬 더 좁고, 축축했으며, 위험했다. 이강혁이 확보한 최소한의 공간에는, 작전을 위한 장비들이 정갈하게 도열해 있었다.
이강혁은 방탄복의 결속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며, 소음기를 장착한 K7 기관단총의 노리쇠를 소리 없이 당겼다 놓았다. 그의 손길에는 군인의 냉정함이 배어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평소보다 무겁게 뛰고 있었다. ‘오퍼레이션 그리핀’. 이름은 거창했지만, 이것은 자살 특공과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 너머로, 낡은 전술 헬멧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는 김서연을 바라보았다.
김서연은 전투를 앞둔 군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복잡한 교향곡을 연주하기 직전의 지휘자처럼, 모든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조율하고 있었다. 그녀의 뇌와 직접 연결된 ‘루멘’ 시스템이 헬멧 바이저 안쪽에 희미한 빛을 뿌렸다. 도시의 전력망, 통신망, 교통망의 흐름이 거대한 강물처럼 그녀의 시야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 도시의 디지털 맥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거대한 거미처럼 도사리고 있는 ‘오라클’의 존재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시간 됐어.”
이강혁이 낮게 말했다.
김서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텅 빈 것 같기도, 혹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귀에 꽂힌 초소형 이어피스를 가볍게 두드렸다.
“제로. 당신 무대야. 연막을 올려.”
[ H-Hour: 03:00:00 ]
그 순간, 서울은 디지털 지진을 맞았다.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를 ‘제로’의 아지트. 수십 개의 모니터가 암흑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단 한 사람, 제로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차별적인 디도스 공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향곡 1악장이었다.
첫 번째 타격은 강남의 금융 허브였다. ‘아키텍츠’의 자금 세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시중 은행 네 곳의 메인 프레임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주식 시장의 알고리즘 거래가 마비되고, 해외 송금 시스템이 멈춰 섰다. 시스템은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단지 0.1초의 지연(Latency)이 발생했을 뿐. 하지만 현대 금융에서 0.1초의 지연은 곧 영원한 정지나 다름없었다.
[ H-Hour: 03:00:15 ]
두 번째 타격은 서울시청의 교통 관제 센터 ‘TOPIS’였다. 제로는 관제 시스템을 해킹해 도시의 모든 신호를 빨간불로 바꾼 것이 아니었다. 그는 훨씬 더 악랄하고 교묘한 방식을 택했다. 그는 강남대로와 마포대로의 모든 신호등을 동시에 녹색불로 바꿔버렸다.
새벽의 한적한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교차로 한복판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차들. 굉음과 함께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도시의 정적을 갈랐다. 112와 119 신고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키텍츠’의 펜트하우스, 아르콘 권석열의 집무실. 거대한 홀로그램 창에 도시 전역의 데이터가 붉은색 경고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경고의 중심에, 초지능 ‘오라클’의 분석이 떠올랐다.
[ 분석: 동시다발적, 고도화된 사이버 테러 발생. 목표: 불명확. 요구 조건(랜섬웨어): 없음. ]
[ 추론: 금융 및 교통망 동시 타격. 사회 기반 시설의 취약성 테스트 혹은 대규모 혼란 유발 목적. ]
[ 대응: ‘오라클’의 수도권 관제 리소스 80%를 테러 대응 및 시스템 안정화에 투입. ‘하데스 볼트’의 연산력 30%를 백업으로 전환. ]
‘오라클’은 제로의 공격을 완벽하게 분석했다. 하지만 그것은 제로가 의도한 그대로의 분석이었다. 신의 거대한 눈이, 도시 전체에 피어오른 거대한 불길에 쏠린 순간이었다. 제로의 채팅창에 짧은 메시지가 떴다.
[ Zero ]: 1막 끝. 다음 광대, 입장해. (Act 1 is over. Next clown, on stage.)
[ H-Hour: 03:05:00 ]
‘하데스 볼트’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거대한 경기장 주변은 K-Pop 콘서트 무대 설치를 위한 대형 트럭들과 자재들로 어수선했다.
최진아는 낡은 통신사 점검 차량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러 개의 버너폰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제로의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도시 반대편에서 울려 퍼지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그녀의 타이밍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첫 번째 버너폰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음성 변조기 너머로, 그녀는 겁에 질린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저… 저기요! 월드컵 경기장인데요! 무대 설치하는데… 동료 두 명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숨을 못 쉬어요! 으악, 이 냄새…! 가스 냄새가…!”
그녀는 전화를 끊고, 즉시 두 번째 버너폰으로 경찰청에 연결했다. 이번에는 더 낮고 다급한, 내부고발자의 목소리였다.
“경기장 북문 환기구 C-3 구역이다. 정체불명의 드럼통들이 쌓여있다. 사린가스라는 말이 들렸다. 콘서트를 노린 테러다. 막지 못하면 수만 명이 죽는다.”
‘가스 누출’과 ‘화학 테러’. 두 개의 키워드는 달랐지만, 가리키는 장소는 하나였다. 그것은 단순한 장난 전화가 아니었다. ‘아키텍츠’의 비리를 추적하며 알아냈던, 실제 재난 대응 매뉴얼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찌른, 고도로 계산된 정보 주입이었다.
[ H-Hour: 03:08:00 ]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도시 반대편에서 금융과 교통 대란을 수습하던 ‘오라클’의 시스템에, 새로운 최우선 순위 경고가 떠올랐다.
[ 위협 감지: ‘하데스 볼트’ 인접 구역(월드컵 경기장) 내 화학 테러(Sarin) 의심 신고. 신뢰도 75%. ]
[ 대응: ‘아에타스 프로젝트’의 민간 협력 프로토콜 발동. ‘하데스 볼트’의 물리적 보안 인력 60%를 즉각 현장에 투입하여, 사태 수습 및 민간 구조 활동 지원. ]
‘아키텍츠’가 자신들의 완벽한 통제 사회를 선전하기 위해 심어놓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프로토콜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된 순간이었다.
‘하데스 볼트’의 견고한 철문이 열리고, 중무장한 ‘새니테이션’ 팀의 일부가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달려 나갔다. 완벽했던 요새의 정문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렸다.
최진아는 밴의 사이드미러로 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이어피스에 낮게 속삭였다.
“김서연 씨. 무대가 준비됐어. 당신의 주인공들이 입장할 차례야.”
[ H-Hour: 03:10:00 ]
“움직인다.”
김서연의 헬멧 바이저에 ‘하데스 볼트’의 보안 병력 이동 상황이 붉은 점으로 표시되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연막이 완벽하게 펼쳐졌다. 지금부터 단 20분. ‘오라클’이 이 모든 혼란이 하나의 작전을 위한 기만임을 깨닫기 전까지, 그들이 가진 유일한 시간이었다.
“강혁 씨. 지금부터 당신의 방패가 필요해.”
“진작에 준비 끝났어.”
이강혁이 어깨에 맨 가방에서 육중한 장비를 꺼냈다. 소형 플라스마 절단기였다. 그는 등에 산소통과 배터리 팩을 결합하고, 얼굴에 용접용 보안경을 착용했다.
두 사람은 환기구를 나와, 도시의 가장 깊은 동맥, 메인 하수도 트렁크 라인으로 향했다. 맨홀 뚜껑을 열자, 역겨운 악취와 함께 도시의 배설물이 거대한 강물처럼 흐르는 소리가 그들을 덮쳤다. 이강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먼저 뛰어내렸다. 김서연도 주저 없이 그 뒤를 따랐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차갑고 더러운 물. 그들은 물살을 거슬러, ‘하데스 볼트’의 지하 구조물과 연결된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김서연은 ‘루멘’ 시스템을 통해 낡은 하수도 지도와 자신이 분석한 설계도를 겹쳐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경로를 안내했다.
[ H-Hour: 03:17:00 ]
마침내 그들의 앞이 막혔다. 하수도의 거친 콘크리트 벽과는 이질적인,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의 벽. ‘하데스 볼트’의 SMR 냉각수 비상 배출구이자, 그들의 유일한 침투로인 티타늄 합금 수문이었다. ‘아에타스’의 문양이 어둠 속에서도 오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작하지.”
이강혁이 플라스마 절단기의 전원을 켰다. ‘위이이잉-’ 하는 고주파음과 함께, 절단기 끝에서 태양처럼 눈부신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가 불꽃을 티타늄 표면에 가져다 대자, 굉음과 함께 주황색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것은 작전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절단기의 고열과 소음, 진동은 ‘하데스 볼트’ 내부에 설치된 센서가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김서연은 수문 옆의 단말기에 ‘루멘’을 연결했다. 그녀의 뇌가 ‘하데스’의 내부 시스템과 직접 접속했다.
[ 경고: 비인가 접근 시도 감지. ]
[ 경고: 수문 압력 센서 이상. 온도 급상승 감지. ]
‘오라클’이 아니었다. ‘하데스 볼트’의 하위 AI가 그들의 침입을 감지했다.
“제로!”
김서연이 이어피스에 다급하게 외쳤다.
[ Zero ]: 시끄럽게 구네, 정말. (So noisy.)
그 순간, ‘하데스’의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었다. 제로가 도시의 혼란을 틈타, ‘하데스’의 방화벽을 우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Zero ]: ‘하데스’의 AI한테 가짜 데이터를 퍼붓는 중이야. 지금 녀석의 눈에는, 네가 낸 소음이 아니라 상암동 전력구 전체가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일걸. 10분 벌었어. 그 안에 끝내.
이강혁은 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플라스마 불꽃이 티타늄을 두부처럼 가르며 나아갔다. 수문의 두께는 상상 이상이었다. 30센티미터가 넘는 합금을 잘라내는 동안, 하수도의 공기는 절단기의 열기와 수증기, 오존 냄새로 가득 찼다. 이강혁의 방탄복이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 H-Hour: 03:25:00 ]
‘쿠구궁-’
마침내 거대한 원형의 티타늄 조각이 안쪽으로 떨어져 나가며, 어두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혁이 절단기의 전원을 껐다. 지옥 같던 소음이 멎고, 다시 하수도의 물소리만이 남았다.
“먼저 들어간다.”
이강혁이 총을 앞세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서연이 그 뒤를 따랐다.
통로 내부는 하수도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SMR에서 흘러나오는 미지근한 냉각수가 발목을 적셨고, 벽면은 온통 복잡한 파이프와 케이블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김서연은 다시 한번 그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파이프의 배치. 이 케이블 트레이의 각도. 너무나 익숙했다.
[ Zero ]: 조심해. ‘오라클’이 날 따돌렸어. 놈이 너희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어. 5분. 아니, 3분 안에 서버실에 도착해야 해.
제로의 다급한 경고가 그들을 재촉했다.
“강혁 씨, 서둘러요!”
두 사람은 차가운 냉각수를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강혁은 전술 전문가였지만,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는 김서연이 그의 눈이었다.
“왼쪽! 저 환기구 아래, 동작 감지 센서 있어요. 레일 위로!”
“다음 코너, 적외선 트랩! 30cm 아래로 포복해야 해요!”
김서연은 센서의 위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뇌가,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이, 이 건물의 설계도를 본능적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끔찍한 미로를 설계한 자들과 한때 동료였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을 애써 억누르며, 이강혁을 이끌었다.
“어떻게 아는 거야, 대체!”
“몰라요! 그냥… 보여요! 빨리!”
그녀의 혼란스러운 외침과 함께, 그들은 마침내 미로의 끝에 도달했다.
[ H-Hour: 03:28:00 ]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그들의 여정이 시작된 수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완벽하고 거대한 벽이었다.
‘하데스 볼트’ 지하 7층, 서버실의 정문.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이음새 하나 없는 매끄러운 금속의 벽. 손잡이도, 열쇠 구멍도, 심지어 카드 리더기조차 없었다. 오직 벽의 중앙에, ‘아에타스’의 문양이 차가운 푸른빛을 내뿜는 홍채 인식 센서만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이강혁이 낮게 욕설을 뱉었다. “이건 플라스마로도 안 돼. 건드리는 순간 경보가 울릴 거야.”
[ Zero ]: 나도 막혔어. (I’m locked out.) 이 문,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지도 않아. 완벽한 에어 갭(Air-gap)이야. 물리적으로 열어야 해.
[ Choi Jin-ah (Earpiece) ]: …상황 최악. 경기장으로 나갔던 ‘새니테이션’ 팀이 복귀 중이야. 테러가 가짜였다는 걸 눈치챘어. 3분. 3분 안에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너희 층에 도착할 거야.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강혁은 플라스마 절단기를 다시 들었다. 경보가 울리든 말든, 문을 지져버릴 기세였다.
“안 돼요!”
김서연이 그를 막아섰다. 그녀는 홍채 인식 센서가 아닌, 그 옆의 매끄러운 벽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혔던 기억의 파편이 번개처럼 스쳤다.
‘…완벽한 보안이란 존재하지 않아, 권석열 씨. 모든 시스템에는 만일을 대비한 물리적 백도어가 필요하지. 관리자조차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한… 엔지니어의 마지막 열쇠 말이야.’
누군가의 목소리. 아니, 그건…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홀린 듯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센서에서 정확히 오른쪽으로 세 뼘, 위로 한 뼘 떨어진, 아무것도 없는 벽면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잊고 있었던 매뉴얼대로, 특정 지점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그러나 일정한 압력으로 밀어 넣었다.
클릭.
이강혁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벽의 일부가 미끄러지듯 열리며, 붉은색 비상등이 깜빡이는 작은 패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동 오버라이드. 이 건물의 설계자가 숨겨둔, ‘오라클’조차 모르는 마지막 비상구였다.
“당신… 대체…”
이강혁이 경악하는 사이, 김서연은 이미 패널을 열고 복잡한 회로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중무장한 ‘새니테이션’ 팀의 군홧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