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부 절망속에서

by 닥터 F

[ 서울 구도심, 폐쇄된 지하철역 아지트 - H-Hour + 06:10 ]


폭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상의 입구가 폭파된 직후, 지하의 공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수십 년간 고여 있던 눅눅한 곰팡이 냄새 대신, 매캐한 화약 냄새와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 냄새가 환기구를 타고 밀려 들어왔다.


“콜록! 콜록!”


최진아가 낡은 옷소매로 입을 막으며 기침을 토해냈다. 그녀의 눈앞,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탈출구로 삼으려 했던 북쪽 환기구에서 희뿌연 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최루 가스... 아니야.”


이강혁이 고글을 착용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옆구리를 움켜쥐면서도, 반사적으로 방독면을 꺼내 김서연에게 던졌다.


“신경 가스다. 마시면 30초 안에 근육이 마비돼. 써!”


김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방독면을 받아 썼다. ‘루멘’의 환경 분석 센서가 붉은색 경고를 띄웠다.


[ WARNING: VX-7 (변종 신경 작용제) 감지. 농도 15ppm. 치사량 도달까지 120초. ]


그들은 단순히 숨어있는 쥐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쥐구멍 전체를 독으로 채워 질식시키려는 것이었다. ‘새니테이션’ 팀의 방식은 무자비했다.


“이쪽이야! 차단벽을 내려야 해!”


김서연이 소리쳤다. 그녀는 이강혁과 최진아를 이끌고 아지트의 가장 안쪽, 옛날 역무원들이 사용하던 방공 대피소 구역으로 달렸다.


그들이 육중한 철문을 닫고 핸들을 돌려 잠그자마자, 문밖에서 가스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익-’ 하는 소리가 마치 수천 마리의 뱀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듯 섬뜩했다.


“밀폐 완료.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이에요. 산소 발생기도 없고, 이 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20분...”


김서연이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그녀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헬멧 바이저 안쪽에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루멘’을 조작하고 있었다.


“Lumen, 건물 도면 재스캔. 숨겨진 통로, 배수관, 뭐라도 찾아봐. 확률 0.1%라도 좋아.”


[ 분석 중... 분석 불가. 외부 센서 응답 없음. 지상 관통 레이더(GPR) 신호 감지됨. 적이 지하 구조를 실시간으로 매핑하고 있음. ]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그녀가 길을 찾기도 전에, 적은 이미 투시력을 가진 신(神)의 눈으로 그들의 위치를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라클’의 힘이었다.


[ 지상 작전 지휘 통제실 - 이동형 커맨드 센터 ]


수십 개의 모니터로 둘러싸인 차가운 공간. ‘보안의 아르콘’ 랑정훈은 팔짱을 낀 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열상 카메라 화면 속, 지하 깊은 곳에 웅크린 세 개의 붉은 점이 보였다.


“독 안에 든 쥐들이군. 쉘터로 숨었나.”


랑정훈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는 옆에 선 전술 오퍼레이터에게 손짓했다.


“‘오라클’의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는?”


오퍼레이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타겟의 생존 확률 0%. 현재 쉘터의 산소량과 그들의 심박수를 고려할 때, 23분 후 자발적 질식사 또는 항복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하지만?”


“타겟 ‘김서연’의 행동 패턴 분석 결과, 자폭 또는 동반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42%로 상승했습니다. 그녀는 ‘하데스 볼트’에서도 예측 불가능한 파괴 공작을 수행했습니다.”


랑정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뇌는 남겨야 한다. 그것이 권석열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기다릴 필요 없겠군. 놈들이 딴생각하기 전에 끝낸다. 브리칭(Breaching) 팀 투입해. ‘벙커 버스터’ 드론 사용 승인한다.”


“알겠습니다. 작전명 ‘딥 임팩트’ 개시.”


[ 지하 쉘터 내부 - H-Hour + 06:30 ]


‘쿵... 쿵...’


지반을 울리는 규칙적인 진동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발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땅을 파고 들어오는 소리였다.


“들려요?” 최진아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드릴링이야.” 이강혁이 샷건의 탄약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의 안색은 과다출혈로 인해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천장을 뚫고 내려올 생각인 거야. 놈들은 우리가 어디에 숨든 정확히 알고 있어.”


김서연은 그 말을 들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장기인 ‘설계’와 ‘계산’이 철저하게 무력화되고 있었다.


‘내가 변수를 만들면, 오라클은 상수를 바꿔버려.’


그녀가 탈출로를 계산하면, 오라클은 그 길목에 병력을 배치했다. 그녀가 해킹을 시도하면, 오라클은 통신망 자체를 차단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벌이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제로... 제로, 응답해 봐.”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익명 채널을 호출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름 끼치는 정적뿐이었다. 아이슬란드 서버가 파괴된 이후, 제로는 완전히 침묵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쉘터의 강철 문이 안쪽으로 휘어지며 폭발했다. 문틈으로 들어온 가스가 아니라, 이번엔 고성능 폭약이었다.

폭풍과 함께 먼지 구름이 쉘터 안을 덮쳤다.


“엎드려!”


이강혁이 김서연과 최진아를 바닥으로 밀어 넘어뜨리고, 엎어진 테이블 뒤로 몸을 날렸다.


‘투두두두두!’


문이 날아간 자욱한 연기 속에서 소형 드론들이 벌 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드론 하단에 장착된 기관단총들이 무차별 사격을 퍼부었다.


“젠장!”


이강혁이 샷건을 들어 드론을 향해 발사했다.


‘탕! 탕!’


드론 두 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며 떨어졌다. 하지만 뒤이어 진입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네 발로 걷는 기계, ‘헌터 킬러’ 로봇들이 붉은색 눈을 번뜩이며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포세이돈’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된, 살상을 목적으로 개조된 경비 로봇들이었다.


“로봇이야! 저건 총으로 안 돼!”


김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로봇의 장갑은 소구경 탄환 따위는 튕겨낼 만큼 단단했다.


이강혁은 욕설을 내뱉으며 허리춤에서 마지막 남은 수류탄을 꺼냈다.


“서연 씨, 최 기자! 뒤쪽 환풍구 덮개를 뜯어! 거기로 나가!”


“거긴 막혀있다고 했잖아요!”


“여기서 죽는 것보단 나아! 가라니까!”


이강혁이 안전핀을 뽑아 로봇들을 향해 던졌다.


‘쾅!’


폭발과 함께 로봇 한 대가 뒤집혔지만, 나머지 로봇들은 잔해를 밟고 넘어오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김서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최진아와 함께 구석에 있는 낡은 환풍구 덮개를 뜯어냈다. 녹슨 나사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빨리! 빨리요!”


최진아가 먼저 몸을 밀어 넣었다. 김서연이 뒤를 따르려는 순간,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강혁은 피를 흘리는 옆구리를 벽에 기댄 채, 몰려오는 로봇 군단을 향해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샷건이 불을 뿜을 때마다 로봇들이 비틀거렸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강혁 씨! 빨리 와요!”


“먼저 가, 곧 따라 붙을테니.”


이강혁이 씩 웃었다. 피 묻은 치아 사이로 붉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빈 샷건을 내던지고, 품에서 권총과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기계 짐승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망설이는 김서연을 최진아가 재촉했다.


“가야 해요! 그가 시간을 벌어준 거라고요!”


두 여자는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 찬 좁은 통로를 기어갔다. 등 뒤에서 들려오던 이강혁의 고함 소리와 금속이 부딪히는 소음은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완전히 끊겼다.


그 정적은 그 어떤 비명보다도 끔찍했다.


[ 지하 3층 배수로 - H-Hour + 07:00 ]


김서연과 최진아는 정처 없이 기어갔다. 무릎이 까지고 손톱이 뒤집혔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속이 너무나 큰 구멍으로 뚫려버려 육체의 고통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환풍구의 끝은 30평 남짓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끝은 다시 거대한 지하 저수조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는 이미 오래전에 부식되어 끊겨 있었다. 아래는 까마득한 어둠이었다.


“이제... 어쩌죠?”


최진아의 목소리는 다 갈라져 있었다.


김서연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헬멧의 배터리 경고등이 깜빡거렸다.


[ BATTERY LOW: 5% ]


그녀는 헬멧을 벗어던졌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없어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계산이... 안 나와요. 변수가 없어요. 탈출 확률 0%. 생존 확률 0%. 그냥... 끝이에요.”


그녀는 천재였다. 지하 18미터에서도 살아남았고, 불가능하다던 ‘하데스 볼트’도 뚫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아키텍츠’가 쳐놓은 그물은 너무나 촘촘했다.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한, 이 포위망을 뚫을 방법은 없었다.


“우린... 여기서 죽는 건가요? 이 데이터와 함께?”


최진아가 품에 안고 있는 데이터 모듈을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 값. 이강혁의 목숨 값.


“그들은 데이터를 원해요.”


김서연이 공허한 눈으로 말했다.


“제 뇌를 원하죠. 제가 어떻게 시스템을 뚫었는지 알고 싶어 하니까. 그래서 우릴 생포하려 할 거예요.”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날카로운 파이프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들에게 원하는 걸 주지 않을 거예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설계예요.”


그녀의 눈빛에 서린 것은 삶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지워서라도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겠다는 지독한 파괴 본능이었다.


‘위이이잉-’


그때, 공간의 왼쪽 벽이 터져 나가며 드론들이 튀어나와 김서연과 최진아를 포위했다. 이어서 검은색 슈트를 입은 ‘새니테이션’ 요원들이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요원들 중 하나에 의해 짐짝처럼 끌려온 이강혁은 벽쪽으로 던져졌다. 벽에 부딪히고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고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레이저 포인트가 김서연과 최진아의 가슴팍을 겨눴다.


“찾았다.”


기계적인 음성이 울렸다.


“타겟 확보. 저항 시 사지 절단 허용. 뇌는 보존한다.”


수십 명의 요원들이 그들을 반원형으로 포위했다. 도망칠 곳은 뒤쪽의 낭떠러지뿐이었다.


김서연은 파이프 조각을 목에 겨눴다. 최진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지 마! 다가오면 죽어버릴 거야!”


김서연의 외침은 처절했다. 하지만 요원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감정이 없는 기계였다.


“자살 확률 89%. 테이저 건 준비.”


요원 중 하나가 비살상 제압 무기를 꺼내 들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태양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렸다. 김서연은 눈을 감고, 파이프를 목에 찔러 넣으려 힘을 주었다.


‘...죄송해요, 강혁 씨. 미안해요, 제로...’


그 순간이었다.


‘팟-’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과 함께, 저수조를 비추던 요원들의 전술 조명, 로봇들의 붉은 안광, 그리고 저 멀리 도심에서 새어 들어오던 미약한 가로등 불빛까지.


모든 빛이 동시에 사라졌다.


암흑.


완벽하고 절대적인 암흑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위잉... 툭.’


요원들의 슈트에서 들리던 미세한 구동음이 멈췄다. 공중에 떠 있던 드론들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뭐... 뭐지?”


당황한 요원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그들의 야간 투시경조차 먹통이 된 듯했다.


김서연은 멈칫했다. 목에 닿은 차가운 파이프의 감촉만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침묵과 어둠 속에서, 최진아의 품에 있던, 전원이 꺼진 줄 알았던 낡은 구형 아날로그 무전기만이 유일하게, 미약하지만 또렷한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 ...치지직... 하수도... B-7... 낡은 나선계단... ]


그것은 디지털의 신 ‘오라클’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아날로그의 구원이었다.


김서연의 눈이 어둠 속에서 크게 떠졌다.


절망의 끝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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